명대신문 창간 71주년, 발자취를 돌아보다 〈11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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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신문 창간 71주년, 발자취를 돌아보다 〈1148호〉
  • 장윤후 대학보도부장, 김소윤 수습기자, 정승원 수습기자
  • 승인 2025.11.10 0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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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우리 명대신문이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로부터 71년 동안 수많은 기자들이 명대신문을 거쳐간 끝에, 2025년 현재 14명의 기자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명대신문의 펜 끝에 담긴 시간만큼 대한민국 사회 역시 수많은 변화의 물결 속을 지나왔다. 정치 · 경제 ·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났고,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도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명대신문은 대학생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 보고, 역사의 순간들을 기록해 왔다.

창간 71주년을 맞아, 본지는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 의 주요 역사적 순간들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기록해 온 명대신문 선배 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사진은 2004년 당시 한미지 기자가 작성한 기사이다.
▲ 사진은 2004년 당시 한미지 기자가 작성한 기사이다.

 

1997년 외환위기

1997년 1월 23일 ‘ 한보철강’의 부도를 시작으로 IMF 사태가 시작됐다. 뒤이어 재계서열 50위권 안에 드는 대기업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결국 11월 21일, 임창렬 부총리가 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신청하며 김영삼 대통령이 대국민 특별 담화문을 발표하게 된다.

이후 정부는 금모으기 운동뿐만 아니라 △공기업 구조조정 △금융기관 통합 △노동시장 개혁 △외자 유치 확대 등 여러 정책을 추진하며 경제의 회복과 재건을 도모했다. IMF 사태는 단순히 한 시기의 경제 위기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와 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전환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명대신문 37기 박진희 기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외환 위기 당시 대학은 어떤 분위기였는지 궁금합니다.

37기 박진희 기자 당시 대학은 도전과 혼란의 연속이 었어요. 문득 학우들의 공무원 선호도가 급증했던 순간 이 기억나네요. 대기업이 구조조정을 이유로 사원들에게 대량 해고 조치를 취하자, 학우들 사이에서 공무원이 안정된 직업으로 떠올랐습니다.

이에 열정을 잃어 휴학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진로를 전향하던 친구들도 있었어요. 당시 상황으로 인해 누군가에게는 꿈을 그리는 것조차 버거운 일이었던 거죠. 갑작스레 엎어진 판에 어떤 학우는 쉼표를 찍었지만, 다른 학우는 마침표를 새기던 기억이 납니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할 때 기자가 지녀야 할 자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37기 박진희 기자 학보사가 존재하는 이유는 학생들의 지지 덕분입니다. 그렇기에 기자는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스스 로의 부족함에 자책하던 순간도 있었지만, 명대신문의 동기들과 선배님들 덕분에 부족함을 대면할 용기를 얻었습니다. 만일 누군가에게 새로운 시각을 안겨줬다면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은 2016년 당시 정수민 기자가 작성한 기사이다.
▲사진은 2016년 당시 정수민 기자가 작성한 기사이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주도한 탄핵소추의 근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열린우리당을 지지함으로써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점이었다. 다만 급작스러운 탄핵소추안 가결은 역풍을 맞았다.

당시 여론조사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는 의견이 60%를 웃돌며 국민 다수가 탄핵에 부정 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어 헌법재판소는 탄핵을 인용하지 않았고, 이러한 흐름은 열린우리당의 총선 대승으로 이어졌다. 민감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명대신문 42기 한미지 기자가 이를 다뤘으며,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당시에 역사의 한 순간임을 느낄 수 있었나요?

42기 한미지 기자 당시에는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순간이 다가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전까지는 탄핵소추안 가결과 대통령 탄핵의 전례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뉴스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의결됐다는 소식을 듣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어요.

저는 학내 사안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까지 보도하는 것이 학보사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사명감을 가진채 학우들에게 사건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고심하며 펜 끝을 써내려갔던 기억이 납니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할 때 기자가 지녀야 할 자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42기 한미지 기자 학보사 기자는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대학과 학생을 잇는 중간다리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학우들의 알 권리를 진정으로 보장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년 정치의 무관심은 이윽고 학보사의 위기와 직결되니까요.

만일 학우들의 열독이 없다면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은 점차 퇴색될 겁니다. 그렇기에 학보사는 국민과 학우 들 그리고 현장의 이야기를 담으며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태도를 함양해야 합니다.

해당 기사를 읽은 학우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42기 한미지 기자 학우들에게 해당 기사에 대한 반응을 묻는 것은 자칫 학보사의 중립성을 해치는 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자제했던 기억이 납니다. 비록 직접적인 반응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제가 쓴 기사가 누군가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기사였습니다.

당시 해당 사건을 다룬 기사를 작성하실 때, 어떠한 마 음가짐으로 작성하셨나요?

42기 한미지 기자 저는 학우들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면서도 여러 시사점을 안겨줄 수 있는 드라이한 기사를 작성하고자 했어요. 자칫 잘못하면 기자의 사견으로 정보가 왜곡될 수 있거든요. 물론 기사를 작성하며 기자의 사견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힘들겠지만, 저는 항상 취재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기사를 작성하자는 신념을 지녔습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린 최초의 사례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사건이 유사한 전례로 거론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과 달리 탄핵이 인용됐기에 유의미한 시사점을 남긴다.

국민은 최순실이 대통령으로서의 의사 결정 권한과 국정 운영 등 광범위한 부분에 개입한 것에 분노했으며, ‘국정 농단’에 대한 심판을 요구했다. 본지는 당시의 상 황을 듣기 위해 55기 정수민 기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에 역사의 한 순간임을 느낄 수 있었나요?

56기 정수민 기자 교내 곳곳에 대자보가 붙고, 시위를 준비하는 학우들의 모습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습 니다. 그 현장을 직접 취재하다 보니 역사의 순간에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우리 대학은 강경대 열사의 모교인지라, 당시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기억해요. 거리로 나가는 학우들을 뒤따라 취재하던 기억이 아직도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선명합니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할 때 기자가 지녀야 할 자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56기 정수민 기자 역동적인 사건일수록 기자 개인도 감정에 휘둘리기 쉬운 것 같아요. 기자가 중립을 유지해야 기사의 본질이 흐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는 학우들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 만큼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시 해당 사건을 다룬 기사를 읽은 학우분들의 반응 은 어땠나요?

56기 정수민 기자 평소 정치에 관심이 없던 학우들 사이에서도 이 사건은 장안의 화제였습니다. 이화여자 대학교, 서강대학교를 필두로 시국 선언 행진이 시작했어요. 이에 반해 우리 대학의 참여가 뒤처진 것이 학우들의 불만을 자아냈습니다. 그렇기에 이 기사가 더 주목 받았던 것 같아요. 이러한 사태를 보도했기에 학우들의 기억 속에 더 큰 의미를 안겨준 것 같아요.

이 사건에 관해 기사를 작성하실 때, 어떠한 마음가짐 으로 작성하셨나요?

56기 정수민 기자 우리 대학의 이념이 ‘구국명지’(救國明知)인 만큼 학우들이 위태로운 나라를 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알리고자 이 사건을 다루었어요. 또한 단순히 상황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필요성과 문제의식을 함께 담아 학우들에게 귀감이 되고자 했습니다.

 

2020년 코로나 시절 학보사 고충

2019년 중국에서 비롯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가 전 세계로 확산됐다. 2023년까지의 국내 누적 확진자는 약 3,400만 명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약 67%가 코로나에 확진된 셈이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전반적인 경제 상황에 큰 타격을 입었고, 코로나 이전의 일상마저 빼앗겼다.

우리 대학도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교육부는 원격수업을 권고하는 등 탄력적 학사운영을 도입했다. 당시 우리 대학의 상황을 명대신문 59기 손정우 편집장과의 이야기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당시 팬데믹이 일어났을 때, 역사의 한 순간임을 느꼈나요?

59기 손정우 편집장 당시에는 바로 체감하지 못했어요. 그저 ‘잠시 학사일정이 미뤄지고,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겠구나’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대면 수업이 무기한으로 연기되고 교육 지침 변화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면서 학사일정이 원상 복귀되는 시점을 예상할 수 없게 됐어요. 3번째호를 발행할 즈음에서야 비로소 역사의 한순간임을 실감했습니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할 때 기자가 지녀야 할 자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59기 손정우 편집장 기자는 우리 대학과 학우들이 겪어온 다양한 사회 · 생활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관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이는 역사적 사건을 다룰 때만이 아니라 ‘대학 기자’라면 항상 가져야 하는 자세라고 생각해요.

미디어센터 서고에 가보면 명대신문의 71년간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이를 처음 마주했을 때, 명대신문은 언론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역사 기록물로서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 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신문사 활동을 하며 겪었던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59기 손정우 편집장 학보사가 늘 그렇듯, 인력 부족 문제가 힘들었어요. 특히 온라인 학사 운영이 지속되면 서 학우들의 관심이 줄었을 때 활동을 포기하는 기자들도 많았습니다. 이에 남은 기자들이 많은 업무를 떠안게 되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어요. 그래도 끝까지 함께해 준 김태민 기획부장, 유근범 기자, 김한백 기자, 박재우 기자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관련 기사를 많이 작성하셨습니다. 학우들에게 어떤 방향으로 정보를 전달하려고 노력하셨나요?

59기 손정우 편집장 코로나 시기에는 허위 정보와 오보가 빠르게 확산되는 인포데믹* 현상이 두드러졌습니다. 그래서 사실에 기반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 했어요. 하지만 이를 지키는 것은 제법 어려웠습니다. 코로나에 대한 정보를 많이 담으면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 처럼 보일 수 있고, 반대로 엄선된 소수의 정보만 담으면 학우들에게 경각심을 안겨줄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건조하지만 정확하게, 그리고 학우들이 특히 궁금해 할 지점을 짚어내는 방식을 고수하고자 했습니다.

*인포데믹 : 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epidemic)의 합성어로, 정확한 정보와 부정확한 정보가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현상이다.

 

창간 71주년을 맞은 명대신문사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42기 한미지 기자 3학년 때 50주년 행사를 기획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71주년을 맞이했네요. 제가 학교를 다닐 당시만 하더라도 학보사 또는 게시판 등 오프라인 방식으로만 대학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요즘은 SNS와 커뮤니티를 통해 대학의 주요사항을 알 수 있기에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학보사의 역할이 중요해진 것 같습니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기 속에서 명대신문이 퇴색되지 않은 이유는 늘 뒤에서 힘써주고 계시는 기자님들의 노고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신문사를 운영한 경험이 미래를 향한 도약의 동력이 되어 앞날을 밝게 비추길 기원 합니다. 언제나 마음속으로 응원하겠습니다.

56기 정수민 기자 저도 학보사 활동을 하면서 늘 ‘내가 진심을 다해 쓴 기사를 과연 누가 읽을까? 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의 후배 기자분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대학신문의 ‘존재 그 자체’가 이미 큰 역할을 한다고 믿습니다. 변화하는 시대를 가장 가까이에서 기록하고 마주하는 사람들, 그게 바로 대학언론이니까요. 거창한 고발이나 거대한 진실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진실을 위해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명지의 역사와 함께 해온 71주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59기 손정우 편집장 명대신문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학우들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에브리타임 지면 소개, 인스타그램 카드 뉴스, 유튜브 콘텐츠 업로드 등은 이에 대한 증거입니다. 이처럼 변화는 계속되겠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자들의 열정입니다. 한 학기 6 개 호를 12면 지면으로 구성해 발행하는 것, 그것도 기자 개인의 학업과 일정을 병행하며 해내는 것은 결코 평범한 노력이 아닙니다. 지면 뒤에는 밤을 새워 마감하는 기자들의 노고가 숨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 열정은 이어질 것입니다. 명대신문의 가치 와 노력, 그리고 열정이 영원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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