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커뮤니티는 관심사나 학교 등 공통된 특성을 공유하는 이들이 모여 정보를 나누고 의견을 주고받는 공간이다. 많은 커뮤니티에서는 이용자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익명성을 활용하고 있으며, 현실에서 말하기 어려운 경험이나 소수의견도 상대적으로 부담 없이 공유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최근 익명성 뒤에 숨어 타인을 향한 비방이나 혐오표현을 쏟아내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본지는 자유로운 표현을 보장하는 동시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익명성의 이면과 그에 따른 책임에 대해 살펴봤다.
온라인 커뮤니티,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과거 온라인 커뮤니티는 특정 관심사나 분야를 중심으로 이용자들이 모여 정보를 나누고 소통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SNS와 뉴미디어의 발달로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커뮤니티의 규모가 확대됐다. 이용자 간 정보 교류도 활발해졌다. 이에 따라 이용자들은 평소 관심이 없던 분야의 게시물도 접하게 되는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얻고 의견을 나누는 범위가 넓어졌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4 소셜미디어 이용자 조사」에 따르면 19∼29세 이용자는 평균 6.95개의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자들은 하나의 커뮤니티에 머무르기보다 여러 플랫폼을 오가며 자신의 의견을 직접 생산하고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용자들의 실제 커뮤니티 이용에서도 나타난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자주 이용하는 우리 대학 A 학우는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관심 분야의 정보를 얻는다”며 “야구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선수들의 계약과 관련한 소식을 공식 발표보다 먼저 접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온라인 커뮤니티는 정보를 얻고 관심사를 공유하는 공간인 동시에 이용자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접하고 특정 사안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 공간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이용자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비교적 자유롭게 표현하고, 다양한 논의를 만들어 간다. 이러한 커뮤니티의 특성을 만든 주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익명성'이다.
익명성의 이중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익명성은 이용자가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의견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관련 연구를 진행한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이애리 교수(이하 이 교수)는 “현실에서는 직위, 나이, 성별, 소속, 사회적 관계 등 여러 요인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며 “익명성은 이러한 단서를 일정 부분 제거함으로써 사회적 평가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상대적으로 권력이 약한 사람이나 소수의견을 가진 사람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B 학우는 “평소 낯을 많이 가려 필요한 정보가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직접 묻기 어렵지만,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고 질문한다”고 말했다.
자유가 보장된 익명성의 이면에는 여러 문제들이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 이용자는 익명성에 숨어 현실과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공격적으로 표현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한국리서치가 2024년 실시한 「우리 국민의 온라인 댓글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9%가 '온라인 악성 댓글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온라인에서 자신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을수록 대면 상황이나 실명 환경에서는 하지 않았을 공격적 표현이나 비난을 보다 쉽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특성은 실제 온라인 공간에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익명성 뒤에서 벌어지는 일
① 에브리타임에서 발생한 악성 댓글 사례
지난 2020년 서울 모 대학에 재학 중이던 C씨는 우울증으로 인한 심적 위안을 얻기 위해 에브리타임에 여러 차례 글을 올렸으나, 일부 이용자들로부터 악성 댓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이용자들은 C씨의 게시물에 비난과 조롱이 담긴 댓글을 반복적으로 작성했고, 이후 C씨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에서 관련 내용을 확인한 유족은 악성 댓글 작성자들을 경찰에 고소해 수사가 진행됐다.
이 사건은 익명 공간에서 작성된 표현이 단순한 온라인상의 말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사람에게 정신적 피해를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한 이용자의 공격적인 표현에 다른 이용자들의 동조가 이어지면서 특정인을 향한 비난이 하나의 분위기로 자리 잡는 상황도 벌어진다. 이에 이 교수는 “이러한 상황이 커뮤니티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많은 구성원으로부터 동조를 얻는다면, 이용자는 이를 '이 커뮤니티에서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표현'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② 스포츠 팬덤에서도 나타나는 온라인 공격
이러한 문제는 대학생 커뮤니티에만 나타나지 않는다. 지난 7월에는 프로야구 LG 트윈스 천성호 선수가 경기 중 승부처에서 한 번에 두 개의 아웃을 추가하는 병살타를 기록한 뒤 가족이 악성 DM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일부 이용자는 선수의 경기력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천성호 선수의 아내가 운영하는 SNS 계정으로 자녀를 언급한 욕설과 저주성 메시지를 보냈다. 『머니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SNS 악성 댓글과 협박 등의 피해 사례를 접수하고 법적 대응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수협의 장동협 사무총장은 “악플러들의 행위는 범죄의 영역을 넘나들 만큼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이 사례들은 온라인에서의 공격적인 표현이 상대방에게 큰 영향을 끼침을 보여준다.
법과 플랫폼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① 국내 법은 익명성 뒤의 행위를 어떻게 규제할까
익명성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책임도 필요하다. 이에 우리나라는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불법행위에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 7항은 정보통신망을 통한 불법정보의 유통을 금지하고 있으며,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허위 사실을 드러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을 규제하고 있다.
다만 실제 처벌 여부는 표현의 내용과 상황 등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판단된다. 특히 익명으로 작성된 게시물은 작성자를 특정하고 실제 행위와 피해의 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해 법적 책임을 묻는 데에도 일정한 한계가 존재한다.
또한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 12항은 대규모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불법정보*와 허위조작정보의 신고·처리 절차를 마련했다. 해당 법안에서는 대규모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를 최근 3개월간 하루 평균 이용자 수가 100만 명 이상인 플랫폼으로 규정한다. 국내 사업자로는 △네이버 △디시인사이드 △카카오 등과 해외 사업자 △구글 △메타 △틱톡 등 총 9개의 대규모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지정됐다. 이용자는 플랫폼에 게시된 불법정보, 허위조작정보 등을 직접 신고할 수 있으며, 플랫폼은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게시자를 접근차단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단 플랫폼은 제재를 당한 이용자에게 그 이유와 이의신청 절차를 통지하여야 한다. 게재자는 플랫폼의 조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며, 분쟁조정도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가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실효성이 있을지는 지켜보아야 한다.
불법정보 : 음란물, 명예훼손, 차별 등의 법에 위배되는 내용을 담은 정보
② 해외에서는 플랫폼에 어떤 책임을 요구하는가
해외에서는 이미 플랫폼에게 관리 의무를 부여하는 법안을 실행하고 있다. 지난 2023년부터 시행된 유럽연합의 「디지털서비스법(Digital Services Act)」(이하 「DSA」)은 온라인 플랫폼이 불법 콘텐츠를 신고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고, 콘텐츠를 삭제하거나 이용을 제한할 경우 그 이유를 이용자에게 명확하게 알리도록 하고 있다. 모든 중개 서비스 제공자들은 연 1회 이상 △불법 콘텐츠 관련 신고 및 대응 현황 등을 담은 투명성보고서 △서비스 내 콘텐츠 관리 방식 △콘텐츠 삭제 이유 및 항의내역 여부를 제출 및 공개 해야 한다. 이용자가 플랫폼의 조치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에는 바로 플랫폼 내부의 이의제기 절차를 이용할 수 있으며, 분쟁조정시스템 구축해 법원에 가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절차도 마련돼 있다. 또한 플랫폼은 민감정보를 활용한 광고의 금지 등 광고에 관한 의무도 존재한다.
특히 대규모 온라인 플랫폼에는 서비스가 불법 콘텐츠의 확산이나 표현의 자유 등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위험을 평가하고 이를 줄이기 위한 조치를 마련하도록 하는 추가 의무가 부과된다. △로블록스 △레딧 △인스타그램 △챗지피티 등 유럽연합 가입국 내 월평균 이용자가 4,500만 명 이상인 대규모 온라인 플랫폼이 법을 위반할 경우 전 세계 연간 매출의 최대 6%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도 있다. 이처럼 「DSA」는 플랫폼 전반에 기본적인 의무를 부과하면서도 규모와 영향력에 따라 책임을 강화해 콘텐츠 관리의 투명성과 이용자 보호를 확보하고자 한다.
익명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책임
익명성을 유지하면서도 이용자의 책임 있는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개인과 플랫폼 모두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용자는 실명이 공개되지 않더라도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의 다른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식하고, 공동체의 규범을 지키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플랫폼 역시 이용자의 책임 있는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 12항은 일부 대규모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적용된다. 비방이나 혐오표현이 플랫폼의 규모와 관계없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기준이 규모가 작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발생하는 문제까지 충분히 포괄하고 있는지는 검토 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의 「DSA」는 플랫폼의 규모와 사회적 영향력에 따라 의무를 달리하면서도 이용자 신고와 콘텐츠 처리 과정의 투명성을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관련 제도를 마련한 만큼, 앞으로는 플랫폼의 규모와 관계없이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어떤 책임을 부여할 것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에서도 이용자의 표현은 다른 사람과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며, 플랫폼 역시 어떤 표현이 반복되고 확산되는지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필요한 것은 익명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익명성이 가진 자유로운 표현과 정보 공유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이용자가 자신의 표현에 책임을 지고, 플랫폼 역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온라인 커뮤니티가 풀어가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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