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취재를 하며 정말 많이 뛴다. 종합관 1층에서 2층으로, 또 금방 행정동으로. 다음 날에는 신문사의 부산스러운 선반에서 줄자를 찾아 경비실 탐방을 떠난다. 이것이 대학보도부 기자의 현실이다. 나만 부지런해진다면 얻을 수 있는 대부분의 정보가 이 캠퍼스 안에 있는 것이다. 이 매력적이고 욕심나는 사실에 필자의 다이어리는 취재 일정으로 가득 채워진다.
걸음을 옮겨 이곳에서 이야기를 듣고, 저곳의 이야기도 듣는다. 물어볼 것이 다시 생겨 갔던 곳에 재차 방문하기도 했고, 팩트체크를 해보겠다고 낯선 곳에 발을 들이기도 했다. 필자는 언제나 무언가를 얻은 채로 신문사에 돌아왔다. 이를테면 미화 반장님이 보여주신 휴게실의 모습들, 경비실 침대의 치수 정보, 팩트가 아니었던 사실들, 또는 팀장님께서 건네주신 박카스같은 것들... 모두 필자에게 없던 것들이었다.
알지 못하는 사실들은 먼저 알려주는 이가 없는 이상, 그리고 내가 질문을 던지지 않는 이상 영원히 알지 못하는 사실로 남는다. 필자는 알지 못하는 사실들을 알고자 이리 저리 뛰어다녔고, 이후 인터뷰 내용을 정리 하며 혼자 생각했다. 인터뷰이 A와 B는 서로 의 입장을 알 계기가 별달리 없을 것이며, 인터뷰이 C와 D는 서로의 입장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리라고.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경비원의 휴게 시간에 창문을 노크해 경비원에게 도움을 구한 학생은 그 경비원이 휴게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경비실에 남아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할 것이다. 경비원의 표지판 통일 요구를 기꺼이 수용한 총무시설팀도 행정동 내 경비실이 ‘수위실’이라고 표기되어있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을 테다.
종합관 경비 본부에서 근무하는 남 소장은 인터뷰에서 “학생과 경비원, 미화원 간에 보이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필자는 소통 또한 상대를 알고자 하는 의지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알고자 하는 마음을 충족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선 본인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나 여의치 않은 상황은 존재하고 그리하여 뛸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알고자 하는 또 다른 이에게 정보를 전달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뛰고 돌아오는 이의 반대편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필자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뛸 것 같다. 목에서 정말 피 맛이 나지만... 얻고 싶고 알고 싶다는 마음을 먹으며 침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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