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30초의 숨막히는 질주 〈11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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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30초의 숨막히는 질주 〈1122호〉
  • 이수아 사회문화부 정기자
  • 승인 2023.11.06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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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이예림(스포츠레저교육 21) 학우를 만나다

지난달 성황리에 막을 내린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우리 대학 학우가 맹활약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롤러스케이트 선수인 이예림(스포츠레저교육 21) 학우.

이예림 학우는 주 종목인 여자 롤러 스피드 스케이팅 1,000m(이하 롤러스케이팅 1,000m)와 여자 스피드 스 케이팅 3,000m 계주(이하 여자 3,000m 계주)에서 각각 동메달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행적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이후 13년 만에 여자 롤러스케이트에서 획득한 메달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롤러스케이트는 아직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비인기종목’이다. 비인기종목 운동을 한다는 것이 때때로 아쉬운 마음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이예림 학우는 아쉬워하는 마음에서 그치지 않고 ‘롤러계의 김연아’를 꿈꾼다. 김연아 선수가 피겨 불모지였던 한국에 피겨 대란을 불러일으켰던 것처럼, 이예림 학우 자신을 통해 롤러스케이트도 그러했으면 하는 염원에서 비롯 된 꿈이다.

이렇듯 누구보다 롤러스케이트를 사랑하는 이예림 선수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 아시안 게임에서 롤러스케이트가 가지는 의미는

Q1. 수많은 국내 대회와 국제 대회에서 입상하셨지만, 아시안 게임에서의 입상은 감회가 남다를 거 같아요. 결승선을 들어오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한국 롤러스케이트는 아시안 게임에서 치르는 경기보다 대표팀으로 선발되는 과정이 더 힘들어요. 선수는 많은데, 선발 과정 자체가 경기들의 점수를 취합하는 점수제가 아니라 단 한 번의 시합에서 1등을 한 선수만을 선발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에요. 제 주 종목인 롤러스케이팅 1,000m에서도 1차 시합과 2차 시합에서 각각 1등만을 대표팀으로 선출했습니다. 장거리 선수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선출됐을 땐 너무 기뻤어요. 1,000m 경기는 1분 30초면 끝이 나는데, 결승선을 통과 했을 때는 시원한 기분과 허무한 기분이 동시에 들더라고요. “내가 이 짧은 시간을 위해 힘들게 훈련했나”하는 생각에요.

Q2. 롤러스케이팅 1,000m 시상식 때는 눈물을 참는 모습을 보였어요.

시상대에 올라갔을 땐 힘들었던 시간들이 스쳐 가서 계속해서 눈물이 났어요. 또 같이 대회 준비하던 언니와 함께 시상대에 올랐으면 좋았을 텐데, 저 혼자 딴 것도 너무 아쉬웠어요. 한편으론 목표했던 바를 다 이루고 끝났다는 생각에서 섭섭함의 의미도 있었던 거 같아요.

Q3.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대표팀으로써 하루 루틴은 어땠나요?

대표팀 훈련도 제 소속팀인 청주시청팀이 해오던 루틴대로 했다면 좋았겠지만, 대표팀 마크를 달고, 다른 감독님과 훈련하게 됐을 때 루틴은 전과 완전히 달랐어요. 기존엔 운동의 양이 절대적으로 많았다면, 대표팀은 짧고 굵게 훈련하는 스타일이더라고요.

5, 6개월 동안 진행된 합숙 훈련은 한 곳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논산과 서울, 제천을 옮겨 다니며 훈련했어요. 특히 서울에서 훈련하던 때 루틴이 생각나는데, 교통체증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 7시부터 훈련을 시작하고 오후 6시에 훈련을 마치는 루틴이었습니다. 쉴 땐 쉬고 놀 땐 신나게 놀았지만, 평일에는 정말 운동만 했어요.

Q4. 이슬, 박민정 선수와의 합이 돋보인 계주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으셨어요. 서로 다른 팀에서 모인 선수들이 어떻게 이토록 훌륭한 합을 만들어 냈나요?

롤러스케이팅 계주는 다음 주자를 힘껏 밀어주는 것으로 육상의 바톤 전달을 대신합니다. 그 때문에 계주는 손발이 정말 잘 맞아야 합니다. 저와 이슬, 박민정 선수는 원래 각 소속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마지막 주자를 맡고있는데, 각기 다른 팀에서 모인 선수들이 한 팀이 되다 보니 각자 너무 다른 개성을 갖고 있었어요. 훈련 초반에는 너무 안 맞아서 놀랐답니다. 그러나 잘되지 않는 부분은 언니들과 상의하면서 훈련 양을 늘렸더니, 늘려갈 수록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됐어요.

Q5. 아시안 게임에서 롤러스케이트가 채택과 제외를 반복하는 험난한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다음 아시안 게임인 2026 아이치 · 나고야 아시안 게임에서는 롤러스케이트가 제외됐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롤러스케이트가 채택됐다가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제외되고, 다시 2018 자카르타 · 팔렘방과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채택됐어요. 다음 아시안 게임인 2026 아이치 · 나고야 아시안 게임에서 롤러스케이트가 제외된 것에 정말 마음이 좋지 않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번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 채택된 것이 대단한 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군다나 4년 전인 2018 자카르타 · 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는 롤러스케이트가 채택됐지만, 정식 경기인 트랙경기*가 아닌 로드경기**로 진행됐기 때문에 아쉬웠거든요. 오히려 저에게 완벽한 타이밍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아시안 게임이 저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트랙경기: 2개의 직선코스와 직경이 같은 대칭인 2개의 굴곡부를 가진 경기코스

**로드경기: 선수가 경기 종목 구간에서 한 번 이상 만나게 되도록 폭이 8m 이상인 비대칭 폐쇄도로로 구성된 코스

 

# 롤러스케이트는 예정된 운명이었다.

Q6. 어떻게 롤러스케이트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사진은 이예림 선수와 아버지 이은상 전 국가대표의 모습이다.
▲ 사진은 이예림 선수와 아버지 이은상 전 국가대표의 모습이다.

제 아버지는 전 롤러스케이트 국가대표이자 현재는 지도자이신 이은상 선수에요. 저희 어머니 또한 육상 선수셨답니다. 저는 4살 때 처음 롤러스케이트를 신었어요. 가끔 아버지께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인라인 시키지 그랬어요”하고 장난을 치곤하는데, 아버지는 정말 아이가 태어나면 인라인을 시킬 계획을 가지고 계셨더라고요.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하긴 했지만, 그 이후엔 온전히 제 의지에요. 부모님께선 제가 인라인스케이트를 처음 탔던 4살 때엔 인라인스케이트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운동 경기복을 입고 자는 걸 말리지 못했다고 하셨어요. 특히 6살 때6km 마라톤에 나가서 최연소 우수상을 탔던 건 제 첫 대회이자 첫 상이었어요.

Q7. 롤러스케이트는 많은 세부 종목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중 1,000m를 주력으로 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맞아요. 이번 아시안 게임에 채택된 종목은 △롤러스케이팅 1,000m △ep*** 10,000m △계주뿐이었지만 사실 롤러스케이팅 종목은 이외에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500m는 너무 빨리 끝난다는 생각이 있었던 반면에 1,000m는 다섯 바퀴라는 거리감과 1분 30초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예전부터 롤러스케이팅 1,000m는 늘 1등을 해와서 자신이 있었는데요, 그 때문에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딱 1,000m가 채택되어서 기뻤던 기억이 있습니다.

***ep: 트랙에서 제외 경기와 포인트 경기를 합친 방식으로, 일정 바퀴에 가장 마지막에 있는 선수를 제외시키고, 1 · 2위 선수가 포인트를 획득한다.

Q8. 롤러스케이팅 1,000m는 1분 30초 안에 결판이 나는데요, 출발선 앞에서 많은 생각이 들 거 같아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롤러스케이트는 평균 속력이 30~40km 정도이고 빠르면 50km까지도 나오는 스피드 스포츠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조마조마하게 하는 게 매력이에요. 0.001초 차이로 순위가 바뀌기 때문에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저는 사실 긴장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 생각하는 것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 사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출발선 앞에서는 어깨를 딱 펴고, ‘경기장 안에서 선후배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다른 선수들보다 땀을 더 많이 흘렸으니 더 잘해도 돼’라고 되뇐답니다. 이 확신은 항상 시합을 위한 준비가 완벽하게 완성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Q9. 롤러스케이트 외에도 여러 스포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어떻게 이렇게 많은 또 생소한 스포츠를 즐기게 되셨나요?

중학생 때까지는 알파인 스키 선수도 겸했고, 인라인 하키는 현재까지도 선수로 활동하고 있어요. 이렇게 많은 스포츠를 배우고 즐기게 된 이유에는 학원을 운영하시는 아버지의 영향이 큰데, “뭐든 해두면 좋다”라시며 이것저것을 모두 시키셨어요.

롤러스케이트와 마찬가지로 알파인 스키와 인라인 하키 모두 제가 너무 좋아서 하는 스포츠들이에요. ‘본업은 힘들지만 취미는 즐겁다’는 것을 아버지께서 가르치시려 하신 건지, 아버지는 저를 롤러스케이트가 힘든 날에는 하키를, 겨울에는 알파인 스키를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셨어요.

Q10. tvN 방송프로그램 <유퀴즈 온더 블록>에서 10월 전국 체전은 전년도 12월부터 준비한다고 하셨잖아요, 전국 체전이 끝난 지금은 휴식기를 맞으셨어요. 어떻게 보낼 예정인가요?

이번 주 진행되는 전국 대회를 마지막으로 몇 주 동안 시간이 나요. 사실 그 몇 주 동안에 쉬면서 개인 운동과 재활에 집중하다 보면 곧 어느새 동계 훈련을 시작해야 해요. 저는 친구들과 만나 노는 것이 제일 신나고 힐링이라
운동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무조건 친구들과 보내는 거 같아요.

 

# 사랑하기 때문에

Q11. ‘롤러계의 희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유망주로 주목받고 있어요. 그만큼 독보적이지만 한편으론 롤러스케이트를 대중화시키기 위한 사명감을 가지고 계실 거 같아요.

맞아요. 저를 알아봐 주시기 보다는 저로 인하여 롤러스케이트 종목이 더 알려지고, 사랑받았으면 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어요. 롤러스케이트가 더 많은 주목을 받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일이 국제 대회에서의 입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특히 잘하고 싶었던 것도, 은메달과 동메달도 좋지만 꼭 금메달을 따고 싶었던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 마음이었습니다.

특히 사명감을 가진 데에는 제 뒤에 운동할 후배들에게 마음이 쓰이기 때문이에요. 비인기종목이라는 인식에 굴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과 운동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마음에,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경기장에서 보여주고 싶어요.

Q12. 개인 인스타그램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 아시안 게임과 아시안 선수권 대회를 연달아 해내시고, 한국에 입국하여 바로 전주월드인라인마라톤대회에 출전 하셨어요. 롤러스케이트에 대한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행보인데요.

입국하자마자 전주월드인라인마라톤대회에 출전한 건, 사실 저희 아버지가 청주에서 롤러스케이트 학원을 하세요. 아버지 학원에 다니는 학원 아이들과 취미로 롤러를 타시는 저희 엄마를 응원하기 위해 같이 타주러 간 것 뿐입니다.

롤러 없는 삶은 상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너무 어렸을 때부터 롤러를 곁에 두었을 뿐 아니라, 롤러스케이트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운동선수 중에는 운동이 그저 좋아서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돈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운동뿐이어서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지만 분명한 게 제가 롤러스케이트를 계속해서 타는 이유는 정말 이 운동을 사랑해서, 오직 그거 하나 때문입니다.

 

이예림 선수의 ‘내가 생각하면 된다’는 절대 허무맹랑한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다. 그간의 엄청난 연습량과, 이미 맛본 승리의 데이터에 기반한 근거있는 자신감이다. 나를 믿고, 내 연습량을 믿고, 내 실력을 믿는 자의 자신감은 늘 아름답다. 이것이 앞으로의 이예림 학우의 행보가 더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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