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11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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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1119호〉
  • 이서하 편집장
  • 승인 2023.09.1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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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하ㅣ편집장
이서하ㅣ편집장

 

선택적으로 공감하고 지적하는 세상이다.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면 늘 “법을 준수하며 조용히 평화적으로” 행동하라는 지 적이 어디선가 들려온다. 노동 현장에서 법이 지켜지지 않으니 평화로울 수가 없어 거리로 나왔는데도. 지난해 11월, 철도노조 및 서울교통공사노조는 안전속도를 유지하며 열차를 운행하는 준법투쟁을 시행했다. 그것이 투쟁이 될 수 있음은 평소 안전 속도가 지켜지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간호법 거부권 행사 이후 준법 투쟁에 나선 대한간호협회는 그간 의사를 대신해 진행하던 처방, 수술, 기록 등에 대 한 업무 지시를 거부했다. 이렇듯 법과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노동 현장을 규탄하는 와중에도 법을 지켜야만 한다 비난받는 아이러니 속, 지난 2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뤄진 교사 집회에 대해 일부 언론은 교사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보다 ‘칼각 질서’나 ‘경찰 공무원들의 인정’에 초점을 맞춰 타 노조의 집회를 깎아내리는데 사용하기 바빴다.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소란’과 ‘불법’ 등의 단어 앞에 다시금 지워진 것이다.

현 정부는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뿐 아니라 노동 전반에 대한 혐오 정서를 가감없이 표출하고 있다. 연일 이어지는 노동자들의 집회와 시위에도 좀처럼 정부와 일부 언론의 반성은 없고, 양극화와 경쟁 구도 속 첨예하게 벼려진 증오와 혐오만이 약자를 향해 밀려가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랬듯 사람이 사람으로 바로 서는 세상에 우리는 반드시 가 닿을 것이다. 다만 그게 언제쯤일지 아득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정론직필이라는 말을 되새긴다. 기자로 일한다 말하면 세간은 으레 필자가 정보를 알리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반만 맞는 말이다. 실상 기자는 정보를 알리기 위하여 자신의 세계를 거듭 깨부숴야 하는 사람이다. 필자는 자료를 찾고 인터뷰를 하는 매 순간 모르던 것을 깨우치고, 인터뷰이의 답변을 통해 배운다. 기사의 방향이 인터뷰 이후 바뀌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번 기획을 쓰면서도 필자의 좁은 세상은 무수히 깨지고 확장되었다. 발 디뎌 본 영역이 좁아 어렴풋 알던 노동 현장의 모습을 직면하고 나니 다시금 되물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인가? 내가 나로서 살 수 있는 세상으로 향하는 길에 언론 역시도 한 계단을 쌓아 올려야 할 것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부서지기를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새 학기, 첫 발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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