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차별로 점철된 노동, 현위치는 어디쯤 〈11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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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차별로 점철된 노동, 현위치는 어디쯤 〈1119호〉
  • 이서하 편집장
  • 승인 2023.09.1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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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에 대한 잘못된 인식 여전해… “인식의 전환 필요”

지난해 6월 △공공운수노조 △민주노동 조합총연맹 △국제공공노련은 국제노동기구의 감독기구인 ‘결사의 자유 위원회’(이하 위원회)에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화물연대 파업권 제한 △건설노조 탄압 △예산운용지침을 통한 공공기관 단체교섭권 무력화 등 4건을 제소했다. 결과는 1년이 지난 6월 17일에 나왔다. 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공공 기관 운영 관련 지침을 만드는 과정에 노동 조합의 참여를 보장하는 등 노 · 정 교섭을 제도화하라고 권고했다. 정부가 2021년 4월 결사의 자유 관련 ILO 핵심 협약(제 87 · 98 호)을 비준한 뒤 처음으로 받은 권고다.

그러나 약 3개월이 지난 오늘까지도 정부의 ‘반노동 정서’는 여전히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 지난 5월 1일, 민주노총 건설 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인 故 양회동씨는 윤석열 정부의 노조 탄압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분신했다. 공직 및 기업 부패와 함께 3대 부패로 ‘노조 부패 척결’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는 집중 압수수색과 함께 건설노조를 ‘건폭’(건설현장 폭력) 세력이라 몰아세웠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은 6월 4일부터 17일까지 총파업대회를 위한 집회 및 행진 신고 약 30여건중 27건이 전체 또는 부분 금지 통고, 제한 통고를 받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노동계는 ‘귀족노조’의 ‘불법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탄압으로 전례 없는 위기에 봉착했다. 국가가 앞장서 노동과 맞서는 오늘, 대한민국 노동의 현주소를 톺아볼 때가 왔다.

 

노동과 근로의 미세한 차이

노동자란 사회의 주체로서 헌법 제33조제1항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노동3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으로, “법 형식상으로는 자본가와 대등한 입장에서 노동 계약을 맺으며, 경제적으로는 생산 수단을 일절 가지는 일 없이 자기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삼는다”라는 설명이 더해진다. 이처럼 ‘노동’에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고용자와 피고용자 관계에서 임금을 받기 위한 행위라는 의미가 포함된다.

이에 비해 ‘근로’는 부지런하게 일한다는 뜻만을 지닌다. 한국 사회에서 ‘근로’라는 단어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쓰이곤 했다. 이승만 정부의 ‘전시근로동원법’ 등이 그 예시로, 노동자성을 약화하려는 목적이라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 그럼에도 근로라는 말이 굳어진 계기는 레드 컴플렉스(Red Complex)*에 있다. 북한이 노동당, 노동신문 등 적극적으로 ‘노 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남한 사회는 해당 단어에 경계심을 가지게 됐다. 근로자라는 표기는 1963년 박정희 정부에서 ‘근로자의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법안을 발의하며 굳어졌다.

2020년 11월 『경향신문』에서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시민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노동 인식 여론조사(이하 여론조사) 중 근로자와 노동자 중 평소 주로 접하는 단어를 묻는 항목에서는 ‘근로자’라는 응답이 71.3%를 차지했다. 뒤이어 ‘노동자 동질감’을 물은 항목에서는 ‘노동자라고 하면 거리감을 느낀다’는 응답이 49.9%로 (노동자라는 단어에)‘동질감을 느낀다’(33.8%)보다 16.1%p 높았다. ‘근로자’에 익숙해진 민심은 노동자라는 단어에 대해 상대적으로 거리감을 느낀다.

*레드 컴플렉스 :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극대화되어, 어떤 사상을 공산주의인 것처럼 지칭하며 그 사상을 거부하는 것

 

같은 노동자, 다른 시선

“좋은 회사 다닌다고 말하면 우러러보지만, 현장에서 일한다고 하면 시시하게 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좀 그런 게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론조사로부터 3년이 지난 오늘날, 노동자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는 늘었지만 모든 노동자가 동등하게 인식되는 것은 아니다. 소위 ‘블루칼라’로 불리는 현장 노동자에 대한 멸시적 시선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여론조사에서 ‘지식노동 · 육체노동 · 감정노동 등 노동의 종류에 따른 직업별 인격 존중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79.9%가 ‘차이가 있다’고 답했다. 건설노동자로 일하는 김 모 씨는 “사무직에서 일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와 건설 노동자로 일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 반응이 다르다”며 아직도 대한민국 사회에 만연한 인식 차이를 지적했다. 또한 김 모 씨는 ‘노가다꾼’이라는 표현을 쓰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이 나아진 것으로, 노동자라는 단어를 적극 사용하며 우리 모두 노동자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자 차별적인 시선도 조금 완화된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직업에 대한 무시는 그 직업이 갖는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적대적으로 대하는 ‘반노동 정서’로 이어지기도 한다. 민주노총 한상진 대변인(이하 한 대변인)은 노동자에 대한 인식 차이를 가리켜 “노동자 간의 다름이 그 본질은 아니”라며 직업의 다름에서 오는 차이는 노동자라는 동질성 안에서 극복할 수 있지만 기득권이 그것을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반대편이 집결하는 것에 위협을 느껴, 작은 틈이라도 확대시키며 소위 ‘갈라치기’를 통해 분열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자 갈라치기’ 역시 그 예시다. 이를테면 우리 사회의 양극화나 빈부 격차의 문제를 제도와 정책의 문제로 보지 않고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조건이 정규직 탓인 양 노동자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조합과 노조법

▲표는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과 노조법 2 · 3조 개정안을 비교 정리한 것이다.
▲표는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과 노조법 2 · 3조 개정안을 비교 정리한 것이다.

노동조합(이하 노조)은 비슷한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모임으로, 보다 효과적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말하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에 의하면 2021년 12월 기준 대한민국 노동조합 조직률은 14.2%에 불과하다.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팀이 지난해 10월 14일부터 사흘 간 전국의 만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노동조합과 파업을 바라보 는 우리 사회의 인식’ 설문조사(이하 설문조사)에서 ‘노동조합에 가입한 적이 있다’는 응답 역시 15%에 그쳤다.

노조에 대한 인식 역시 좋지만은 않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노조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노동조합에 소속된 자신들의 이익만 챙겨서’가 46%로 가장 많았다. 한편 ‘노동자의 인권 보호’ 측면에서의 노조 활동은 긍정적인 평가가 66%로, 노조가 노동자를 보호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국민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 대변인은 이런 인식에 대해 “노조의 필요성이나 긍정적인 측면을 이해하고 있음에도 노조에서 활동할 권리가 심각하게 가로막힌 상황의 결과물”이라고 표현하며 현재 요구 중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노조법 개정안) 역시 노조에서 활동할 권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전했다. 노조법 개정안은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해 △간접고용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등이 사장과 직접 교섭하며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게 하고, 파업 허용범위를 확대해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등 노동권을 보호하는 방향이다.

한편,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한 경제계에서는 노조법 개정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가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월 20일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6단체가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노동조합법 개정안 심의 중단 촉구 경제6단체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노동에 대한 자부심으로

‘노동자 및 노조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한 답변으로 가장 흔히 언급되는 것은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다. 한 대변인은 “직업이 다를 뿐, 모두 노동자”라며 우리 사회가 노동을 협소하게 바라보고,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의견을 전했다. 누군가의 노동이 경중, 상하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를 가져야 하고, 결국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법과 제도가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노동교육 역시 제도의 일환으로, 한국에서도 각종 노동 교육이 진행되고 있지만, 정규 교육 과정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노조법 개정안과 함께 노사자치주의 역시 거론되고 있다. 노조의 활동이 위축되지 않고 노동3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개별 노동자에 대한 보호법은 강화하되 노조 자체를 규제하는 법은 오히려 완화해 노사관계의 문제를 노사 간에서 해결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위원회에서 제안한 대상조치 역시 해결책으로 고려된다. 대상조치란 쟁의행위가 제한 및 금지되는 경우에 이에 대한 보상으로서 제공되며, 파업권의 제한 정도를 최소화해 노동자의 쟁의행위가 보다 자유롭게 이뤄지도록 한다.

 

해외의 노동교육

▲사진은 프랑스의 중학교 4학년 교과서로, 상단 4번 항목에서 파업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출처/ Les Editions Nathan 사이트)
▲사진은 프랑스의 중학교 4학년 교과서로, 상단 4번 항목에서 파업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출처/ Les Editions Nathan 사이트)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어떤 식으로 노동교육이 이뤄지고 있을까. 유럽의 일부 국가는 시민교육이라는 이름 하에서 노동을 다룬다. 프랑스의 초등학생용 시민교육 교과서 중 하나는 노동자와 파업에 대한 내용은 물론, “모든 사람에게는 노동, 자유로운 직업 선택, 적절하고 알맞은 노동 조건, 실업에 대한 보호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세계인권선언 제23조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영국 역시 2002년부터 시민교육을 초등학교에서는 선택, 중학교부터는 의무로 시행하고 있다. 영국노동조합총연맹과 교원노조, 여러 산별노조연맹들이 함께 만든 ‘Unions Into Schools’라는 사이트는 교사들이 노동교육에 참고할 수 있는 자료와 동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독일과 스웨덴은 교과서보다 현장 중심 노동교육이 이뤄진다. 스웨덴의 진로교육 및 직업체험 과정인 ‘프라오(PRAO)’는 학생들이 일터를 경험하고 눈높이에 맞춰 진로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노동에 대해 공부할 수 있게끔 한다.

이처럼 외국의 학생들은 정규 교육 과정 중 자연스레 노동에 대해 배우며, 노동자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학습하게 된다.

 

사업주가 되지 않는 이상, 우리 대다수는 노동자가 된다.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소위 말하는 ‘화이트칼라’에 속하는 직업을 가지더라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노동환경은 다른 많은 분야가 그렇듯 과거의 많은 노동자 당사자들이 권리 보장을 요청한 끝에 얻어낸 결과물이다. 오늘의 우리 역시도 서로의 직업을 보고 우월감이나 혐오감을 가지기보다 노동자가 노동자로서 당당한 세상을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다면 어떨까. 물론 국가 역시도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노동의 뿌리를 자꾸만 자르려 드는 대신 잘 가꾸어 상생하는 방도를 찾아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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