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 지속 가능한 사랑을 위해 〈11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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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 지속 가능한 사랑을 위해 〈1119호〉
  • 김다은 사회문화부장
  • 승인 2023.09.1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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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뻗어나가는 케이팝은 이제 명실상부 우리나라 문화 산업의 핵심이다. 그러나 그 주축을 이루는 케이팝 팬들은 산업이 가진 한계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기록 경신을 위해 듣지 않는 실물 앨범을 사면서,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데이터 센터의 존재를 알고도 음악을 스트리밍하면서, 죄책감을 느끼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이들이 있다. 자발적으로 환경을 가꾸는 데 참여하고, 환경 파괴적인 산업과 이를 방조하는 기업에 맞서 개선을 촉구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지속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사랑이 또 다른 파괴를 낳지 않기를 바라며, 지속 가능한 사랑을 위해 노력한다.

 

노력도 걱정도 팬들의 몫, 모순된 애정

① 처치 곤란 실물 앨범

한국음악콘텐츠협회가 운영하는 대중음악 공인차트 ‘써클차트’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실물 앨범 판매량 상위 400개 앨범의 판매량 합계는 약 1,400만 장에 달한다. 이는 작년 동기 대비 32.1% 증가한 수치로, 차트 집계가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월간 판매량을 기록했다. 스트리밍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케이팝의 인기와 함께 실물 앨범의 판매량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물 앨범의 주 소비층인 케이팝 팬들은 이를 소비 인구 증가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룹 NCT의 팬인 A씨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언론과 업계가 양적 기록을 아이돌의 성공지표로 삼으며 팬들에게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라며, “날이 갈수록 많아지는 앨범 버전과 쏟아지는 굿즈가 환경 파괴적인 것을 알면서도 기록 경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케이팝 산업이 실물 앨범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팬들은 실제로 발매일 기준 일주일간의 판매량을 의미하는 ‘초동’ 기록에 울고 웃는다. 앨범의 총판매량보다 중요한 이 척도는 음악 방송 점수 집계에 활용된다. 또한, 발매 직후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의 앨범 판매량은 팬덤의 구매력과 규모를 보여주는 척도로 사용된다. 일주일 동안 앨범을 많이 살수록 아이돌의 인기를 증명할 수 있으며, 실질적인 기록인 음악 방송 1위에도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소속사와 언론에서도 앞다투어 ‘초동’ 기록을 보도하며 아이돌의 성적을 홍보한다. 성적과 기록 외에도 소속사에서 앨범 소비를 조장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앨범을 종류별로 출시하고, 구성품은 무작위로 제공한다. 팬 사인회에 갈 수 있는 확률 또한 앨범 구매와 비례해 높아진다.

② 눈에 보이는 것만 문제는 아니다, 음원 스트리밍

아무도 듣지 않는 실물 앨범의 판매량 증가만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A씨는 “과거엔 실물 앨범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로 환경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다면, 스트리밍 시 탄소가 발생한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된 이후로 물질적인 구입을 지양하고 온라인 위주의 팬 활동만 한다 해도 환경오염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말을 전했다. 앨범 발매와 함께 공개되는 음원 또한 팬들의 주 공략 대상이다.

음원 공개와 동시에 팬들은 순위를 올리기 위해 총력을 다한다. 차트에 반영되는 재생 횟수를 계산하여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24시간 돌리며 1위를 공략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이와 같은 스트리밍의 환경 파괴적인 특징이 드러나고 있다. 음원이 저장되는 데이터 센터를 가동하기 위한 전력에,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한 냉각 장치의 전력까지 더해져 막대한 양의 탄소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애플뮤직, 스포티파이와 같은 해외 음원 사이트들은 이러한 탄소 배출을 고려해 친환경 스트리밍 환경을 조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애플은 2018년 데이터 센터를 비롯한 43개국 모든 시설을 100% 재생 에너지로 전환했으며, 스포티파이는 매년 기후행동 보고서를 발간해 탄소 발생 현황과 재생 에너지 사용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음원 사이트들은 해외와 달리 전기 공급 규제, 주민 민원 등으로 재생 에너지를 활용한 데이터 센터 건립이 어려운 환경이라며 당장 전환할 수 없다는 입장만 밝히고 있다.

 

팬들의 노력, 스타숲 조성

팬들은 이러한 산업의 환경 파괴적 특성을 우려하면서도 함께 해결할 방법을 찾아나가고 있다. 제법 오랜 역사를 가진 스타숲 조성 문화 또한 그 노력의 일환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팬들 사이에 숲 조성 문화가 퍼지기 시작했다. 사회적 기업 ‘트리플래닛’의 스타숲 조성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팬들이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 비용을 모았고, 지자체가 협업하여 여의도 윤중로, 강남 늘벗 근린공원 등에 ‘소녀시대숲’, ‘샤이니숲’ 등 케이팝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딴 숲이 조성되었다. 이후에도 환경 단체 ‘서울환경연합’ 주도의 도시숲 조성 활동으로 그룹 BTS 멤버들의 이름을 딴 숲이 조성되는 등 스타숲 조성 사업은 꾸준히 지속되어 왔다.

특히 올해 2월,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스타숲 조성 사업이) 환경보전과 기후변화 대응 등 선한 영향력을 실천하는 팬 문화라는 것에 공감하고, 이런 팬 문화가 더욱 확산될 수 있도록 스타숲 조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더해 “그간 한강 전역에 흩어져 조성되던 스타숲을 큰 규모로 조성해 참여도를 높이고 명소로 만들기 위해 난지한강공원에 약 1만㎡ 규모의 부지를 할애하여 식재, 관리 등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라며, “한강사업본부는 앞으로도 스타숲 조성에 필요한 행정절차와 함께 물주기 등 현장관리를 지원하고 풀베기 등 사후관리도 돕는 한편, 스타와 팬클럽이 원한다면 스타의 명패, 풋 · 핸드 프린팅, 등신대 설치 등도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라는 계획을 밝혔다.

한강사업본부의 스타숲 조성 사업 계획 발표 이후 처음으로 조성된 스타숲은 지난 3월 조성된 ‘NCT 도영숲’이다. 팬들은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 782그루의 나무를 기부했고 직접 심기도 했다. 모금에 참여한 A씨는 “그렇게 크지 않은 돈이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적은 돈이라도 참여할 수 있게 만든 점이 좋았다. 며칠 연속 모금하면 소소한 답례품이 있던 것도 참여를 독려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라며, “이 모금으로 올해 3월에 좋아하는 스타의 이름으로 숲이 조성된 걸 보니 뿌듯했다. 앞으로도 이런 실천적인 움직임이 많았으면 한다”라고 참여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기후행동이라는 새로운 이름

스타숲 조성뿐 아니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잦아진 재해에 모금을 통해 스타의 이름으로 기부하는 등 사회에 공헌하는 팬들은 꾸준히 존재해 왔다. 그러나 최근 이에 본격적으로 기후행동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더욱 적극적인 요구를 시작한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했다. 바로 온라인 기후행동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이다.

‘케이팝포플래닛’은 2021년 케이팝 팬들이 모여 조직한 온라인 플랫폼으로, 전 세계 기업 및 산업 관계자들에게 책임감 있는 행동을 촉구하는 다양한 국적의 팬들이 활동하고 있다. 출범 이후 2년간 ‘케이팝포플래닛’은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전자상거래 기업 ‘토코피디아’는 BTS, 블랙핑크 등 케이팝 아이돌들을 홍보대사로 임명하며 빠른 성장을 이룩했다. ‘케이팝포플래닛’은 케이팝의 영향력을 활용하고 있는 ‘토코피디아’가 2030년까지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고 재생 에너지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였고, 2천 명가량의 팬들이 서명에 참여했다. 또한, ‘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 캠페인을 통해 무분별한 앨범 판매를 조장하는 기업에 △앨범 구매 시 팬들에게 친환경 선택지 제공 △앨범 및 굿즈의 플라스틱 패키징 최소화 △디지털 플랫폼 앨범 발매 △탄소배출이 적은 공연 만들기 등 환경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했고, 현재까지 1만 명가량의 참여를 이끌었다. 이외에도 재생 에너지를 활용한 데이터 센터를 운영 중인 해외 음원 사이트들처럼 국내 음원 사이트들의 재생 에너지 전환을 촉구하는 ‘멜론은 탄소맛’ 캠페인에도 약 1만명의 팬들이 서명했다.

 

▲사진은 ‘케이팝포플래닛’에서 진행 중인 캠페인 화면이다. (출처/ ‘케이팝포플래닛’ 홈페이지)
▲사진은 ‘케이팝포플래닛’에서 진행 중인 캠페인 화면이다. (출처/ ‘케이팝포플래닛’ 홈페이지)

 

특히나 최근 ‘케이팝포플래닛’은 ‘명품 언박싱 : 그린워싱 에디션’이라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이 캠페인은 아시아 시장 공략을 위해 케이팝 아이돌을 명품 브랜드의 홍보대사로 기용하는 문화 속에서, 이들의 영향력을 활용하는 명품 브랜드들이 주장하는 지속 가능성이 사실상 그린 워싱*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한다. 특히 모든 멤버들이 명품 브랜드의 홍보대사이자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 홍보대사인 블랙핑크를 예시로 들며 명품 브랜드들이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량과 화석 연료 사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밝히고, 100% 재생 에너지를 사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케이팝포플래닛’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케이팝 산업은 팬들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기에 팬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케이팝 산업에 친환경을 요구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존재하는 만큼 산업 자체가 친환경적으로 변화하고, 더 많은 팬이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케이팝포플래닛’의 최종 목표다”라고 밝혔다. 특히 ‘케이팝포플래닛’의 박진희 캠페이너는 “케이팝 팬들과 함께 지속 가능성을 요구하고 산업이 변화하는 것을 보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에 기후 위기 시대의 당사자로서 많은 효능감을 느끼고 있다”라며, “젊은 세대에게 우울과 절망이 아닌 희망을 전달하고 싶다”라는 활동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린 워싱 : 실제로 친환경적이지 않으나, 친환경을 표방하는 위장 환경주의를 의미한다.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 : 지속가능발전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UN 총회에서 지정한 공동의 목표이다. △인간 △지구 △번영 △평화 △파트너십 5개 영역에서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케이팝의 영향력이 나아가야 할 길

팬들의 노력만큼, 기업 또한 앨범의 구성품은 유지한 채 QR코드를 인식하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 앨범, NFC 기능을 사용해 CD를 없앤 키트 앨범 등 음반의 형태를 다양화하는 방식으로 친환경을 추구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SM 엔터테인먼트는 국내 연예 기획사 최초로 지속 가능하고 책임감 있는 경영을 권장하는 행동 강령인 유엔 글로벌 콤팩트에 가입했고, JYP 엔터테인먼트는 사용 전력 100%를 재생 에너지로 대체하는 RE100 캠페인에 동참했다. ESG* 경영이라는 시대 흐름에 맞게 기업 또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팬들은 친환경 앨범과 친환경 경영을 넘어, 근본적으로 케이팝 산업의 경쟁적인 소비문화가 개선되지 않으면 종류를 달리한 환경 파괴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라 말한다.

그룹 샤이니의 팬 B씨는 “팬들이 구매하지 않고, 소비하지 않으면 된다는 식의 해결책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라며, “이러한 주장은 산업과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납작한 판단이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주체적으로 소비하고 응원하는 팬들은 언뜻 보면 산업이 가진 환경 파괴를 무시한 채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산업 전반의 분위기를 경쟁적으로 몰고 가는 것은 수익 구조의 꼭대기에 있는 기업임이 명백하다. 여느 환경 문제와 다름없이, 케이팝의 환경 문제 또한 개인 차원과 기업 차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팬들의 노력은 언제나 존재해 왔으니, 이제 기업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차례다.


*ESG :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의미하며, 조직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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