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제법 오랫동안 아이돌이라는 존재를 좋아해 왔다. 대상은 변할지언정, 애정만은 꾸준했다. 사실 아이돌을 사랑한다는 것은 퍽 명예롭지 못한 일이다. 이번 기획 기사에서는 케이팝 산업의 환경 파괴에 대해 다뤘으나 이 산업을 둘러싼 명예롭지 못한 일들은 수없이 많고, 팬이라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이에 가담하거나 방조하게 된다. 케이팝 산업의 환경 파괴적인 면모에도 불구하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팬들이 있다는 소재를 선택한 것도, 케이팝 산업 안에서 팬이라는 존재가 떳떳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야였기 때문일지 모른다.
팬들의 사랑이라는 명분은 동시에 명예롭지 못한 일들의 명분이 된다. 팬들이 아이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위로받길 원했다는 이유로 본인들이 원치 않은 일들을 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조차 그런 마음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속죄하고 변명하는 마음으로 이번 기사를 시작했다. 누군가의 사랑이 한 사람을, 그 사람의 마음을, 더 나아가 세계를 파괴하지 않기를 원했다. 사랑이 나아가야 한다면 반드시 좋은 방향, 선한 방향이어야 했다. 그러니 기자수첩의 제목처럼, 불명예스러운 사랑이라는 것이 꼭 오명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은 해명이 필요 없는, 명백하게 불명예스러운 사랑일지 모른다.
이번 기사를 쓰기 위해 팬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거듭 필자도 아이돌의 팬이기에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말을 꺼냈다. 필자 또한 듣지 않을 앨범을 샀고, 그들의 차트 1위를 위해 핸드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음악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인터뷰이였던 팬 분께서 기자님이 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은 기사 작성에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중요한 것은 결국 그 다음에 무엇을 할지 찾는 것이라는 의미였다.
계속해서 죄책감을 느끼며 다소 의기소침한 태도로 인터뷰를 시작한 필자를 위로하기 위한 가벼운 한 마디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말을 곱씹으며 기사를 완성했다. 시작은 죄책감이었을지언정,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모색하는 태도라는 사실을. 어쩌면 되지 않는 해명을 시도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계속해서 사랑해야 한다면, 이 오명을 조금이나마 벗기는 방향으로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