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는 봄바람을 남풍을 뜻하는 우리말인 ‘마파람’이라고 하였다. 판소리 춘향가에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라고 월매가 이몽룡에게 하는 대목이 나온다. 봄바람 중에서도 꽃샘추위 뒤에 만나는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을 고운 우리말로 ‘명지바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춘분과 명지바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춘분(春分, vernal equinox)은 북반구에서 24절기의 네 번째로 낮과 밤이 같아지는 때다. 태양 황경이 0°가 되는 때라서 춘분은 태양 황경과 황도 12궁의 기준점이 된다. 양력으로는 3월 20일이나 21일이며, 황도 12궁에서는 양자리의 시작점이다. 2월 경칩과 4월 청명(식목일) 사이에 있는 3월의 절기이다. 고대 대부분 문화권, 특히 서양에서는 대체로 춘분을 봄의 시작이자 한 해의 시작으로 보았다. 그래서 이집트나 켈트, 유대전통에서 춘분에는 축제를 벌였으며, 기독교에서도 부활절 계산의 기준점이 되기에 역법상 매우 중요한 날이다. 유대 전통달력은 태양태음력으로 첫달인 니산월 14일이 춘분이며 파스카축일(유월절)이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간 예수가 제사장들과 로마 당국의 눈 밖에 나 십자가형을 받았으나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였다. 따라서 부활절은 춘분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서기 325년 제1차 니케아공의회에서는 부활절을 춘분 다음 보름달이 뜨는 첫 일요일(주일)로 정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춘분에 담도 고치고 들나물을 캐어먹으며 흙을 일구고 씨뿌릴 준비를 하였는데, 음력 삼월 삼짇날 전후라서 강남 갔던 제비도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유독 이 무렵 바람도 세차게 많이 불어서 “춘분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 “2월 바람에 김칫독 깨진다”는 속담이 생겨났다. 이처럼 소슬이바람, 잎샘추위, 꽃샘추위란 말처럼 겨울 추위가 남아 있지만, 동시에 봄물결이 일고,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인 명지바람이 봄꽃을 피우는 시기이다. 춘분날 날씨를 보아 한해 농사의 풍흉을 내다보기도 했는데, 『증보산림경제』에는 “춘분에 비가 오면 병자가 드물고, 해가 보이지 않는 것이 좋으며, 구름이 있으면 보리풍년이 들고, 청명하고 구름이 없으면 만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열병이 많다”라고 하였다. 역발상이 흥미롭고, 무릇 삼사월의 거친 비바람은 오월의 푸르름을 준비하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이다.
춘분에 시작된 예수의 고난이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의 복음을 예비했듯이 꽃샘추위 뒤 따스한 명지바람이 모든 생명을 피우는 섭리는 시공간을 넘어 한 가지리라. 이 땅의 생명과 온 누리의 평화를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