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의 길, 홍콩의 길 <1059호 (개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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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의 길, 홍콩의 길 <1059호 (개강호)>
  •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02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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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 3국을 여행했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의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길에서 동판을 보았다. 두 개의 발바닥 부조 밑에 ‘발트의 길 1989.8.23. 탈린 · 리가 · 빌뉴스’라고 적혀 있다.

1989년 8월 23일 오후 7시, 소련 치하에 있던 에스토니아 · 라트비아 · 리투아니아 국민 200만 명은 세 나라를 잇는 주요 간선도로 620㎞를 인간 띠로 잇고 “자유를 달라”고 15분간 외쳤다. 이 날은 1939년 8월 23일 ‘독일과 소련 불가침 조약’ 체결 50주년이었다. 독일과 소련은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면서 북 · 동유럽을 독일과 소련이 분할하기로 하는 비밀의정서를 별도로만들었는데, 여기에는 소련이 폴란드 동부, 핀란드, 발트 3국을 점령하기로 되어 있었다. 조약 체결 후 독일은 9월 1일에 폴란드 서부를 침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소련은 9월 18일에 폴란드 동부를 침공했다. 이어서 소련은 1940년 6월에 발트 3국을 강점했다.

한편 1988년에 ‘독소 비밀의정서’가 처음 공개되자 발트 3국 국민들은 분노했다. 1989년 5월에 에스토니아 인민 전선, 라트비아 인민 전선, 리투아니아의 사유디스와 같은 발트 민족 운동 세력들은 ‘발트 총회’를 창설한 뒤 소련 정부에 불법 점령 사실을 인정하고 독립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6월 15일에는 발트 3국의 민족 운동가들이 연합하여 소집한 페르누 회담에서 ‘발트의 길’이 제안되었고 공식적 합의와 서명이 이루어졌다. 그 서명 장소가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있는 ‘시그니처 하우스’이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준비도 충분하지 않았고 발트 3국 국민이 얼마나 참여할 지도 미지수였다. 더구나 이를 저지하려는 소련의 무력 침공도 걱정이었다. 실제로 행사가 열리기 8일 전인 8월 15일에 러시아 ‘프라우다’ 신문은 ‘이 행사를 금지한다’는 기사를 냈고, 루마니아 차우세스쿠 대통령이 소련에 지원 병력을 약속했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발트의 길’ 행사는 예정대로 실시되었다. 발트 3국 인구 1/3에 달하는 국민들은 주요 도로변에 손에 손을 잡고 국기를 흔들며 ‘자유’를 외쳤다. 하늘에는 민간 비행기가 선회하며 역사적 장면을 촬영했고, 이 행사는 전 세계로 중개되었다. 한국도 8월 24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발트 3국, 소련에 독립 요구하는 인간 사슬 시위’를 보도했다. 자유를 위한 비폭력 저항운동인 '발트의 길'은 그 영향이 컸다. 1989년11월 9일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12월 25일 루마니아 차우세스쿠 대통령이 처형됨으로써 동유럽의 자유화 물결이 몰아닥쳤다. 12월에는 소련도 인민 대의원 총회에서 1939년의 비밀 조항이 무효라고 선언했다. 이어서 1990년 10월 3일에는 독일이 통일되었다. 이런 자유화 물결에 발트 3국은 1991년 8월에 소비에트 연방에서 가장 먼저 독립을 쟁취했고, 결국 소비에트 연방은 1991년 12월 26일에 해체되었다. 이후 ‘발트의 길’은 인간이 만든 가장 긴 띠로 기네스북에 올랐고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또한 발트의길은 자유 · 평화운동의 모델이 되었는데, 2004년에는 대만에서 2.28 학살(1947년 2월 28일 장개석 정부가 대만 현지인 2만여 명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학살한 사건)을 추념하는 인간 띠 행사가 열렸다.

한편 ‘발트의 길 30주년’인 2019년 8월 23일 오후 7시에 홍콩 시민 13만 5천명은 45㎞의 인간 띠를 잇는 ‘홍콩의 길’ 시위를 하였다. 이는 3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의 일환이었다.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라는 미국 워싱턴 DC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새겨진 글처럼 자유를 갈구한 투쟁이었다.

그런데 8월 25일에는 10일간의 평화시위가 다시 격화되어 시위 현장에서 실탄이 발사되고 물대포가 등장했다. 하지만 홍콩 시민들은 패트릭 헨리가 미국 독립전쟁 중에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한 연설(1775년)처럼 ‘죽기를 각오하고 자유를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 홍콩 시위대는 31일에 대규모 집회를 하여 홍콩 장관 직선제를 요구할 예정이다. 안타깝게도 중국과 홍콩 정부는 강경하다. 중국의 무력 개입이 예상되고 있고, 홍콩 행정장관이 계엄령 선포를 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지금 홍콩은 최대 위기이다.

아, 자유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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