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 가는 가을밤, 연극 한 편 어떨까요?
잠깐 과거로 돌아가 봅시다. 때는 1601년 햇살이 더할 나위 없이 따스한 5월의 어느 날 오후 2시경, 장소는 영국의 런던으로 하지요. 많은 사람이 템스 강변 선착장에 모여 배를 타고 남쪽 사우스워크 동네로 가려 하고 있습니다. 런던의 사우스워크 지역은 비만 오면 침수되는 허름한 동네이기는 하지만 로즈극장(Rose Theatre)이니 스완극장(Swan Theatre)이니 하는 당시의 대중극장들이 몰려있는 곳입니다. 그중 이들이 향하는 곳은 템스 강 변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글로브극장(Globe Theatre)입니다. 이곳의 극장들은 보통 원형의 벽이 둘러싸고 있고 가운데는 하늘로 뚫려있는 일종의 노천극장입니다. 그즈음 가장 인기 많은 셰익스피어라는 극작가가 쓴, 그즈음 가장 핫하다고 입소문이 도는 연극 <햄릿>을 보러 가는 길이지요.
오후 3시가 되자 드디어 팡파르가 울리고 <햄릿>이 시작됩니다. 첫 장면, 보초 1과 보초 2가 등장해서 이렇게 대사를 주고받습니다.
보초 1. 거기 누구야? 하도 깜깜해서 한 치 앞도 안 보여. 암호를 대.
보초 2. “폐하 만세.” 됐나?
보초 1. 그래 좋아. 방금 12시 종을 쳤어. 난 이제 자러 가겠네.
보초 2. 그렇게 해. 정말 뼛속까지 에이는 추운 날씨야.
이 장면을 상상해봅시다. 햇볕 따스한 5월의 어느 오후 노천극장 무대 위 보초들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 속이고 뼛속까지 에이는 추운 날씨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곳의 관객들은 한 마디 불평 없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진지하게 연극에 빠져듭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햇볕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환한 대낮에 무슨 한밤중이고 춥다는 이야기야 하면서 엉터리라 항변하시겠습니까? 아니겠지요. 1601년 관객들처럼 마찬가지로 진지하리라 믿습니다. 무엇이 엉터리라 외치는 대신 우리를 진지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대답은 한 마디로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에 대한 믿음이고 그 믿음의 토대는 관객들의 아낌없는 “상상력”입니다.
영화에 비해 연극은 그 표현 방법이 무척이나 제한적입니다. 물리적으로 연극의 무대를 현실처럼 꾸미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십만 대군의 전투장면이라 할 때 어느 무대가 십만 대군을 올릴 수 있겠습니까? 기껏해야 서너 명의 군사들이 나와서 칼 몇 번 부딪히는 게 고작이겠지요. 영화는 컴퓨터 그래픽까지 동원한다면 무궁무진한 표현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연극 관람은 연극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관객들의 믿음과 이를 기꺼이 수용하려는 상상력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연극의 인물들은 관객의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몸뚱이들이지만 영화의 인물들은 스크린에 비친 이미지일 뿐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연극배우들이 던지는 메시지와 스크린에 투영된 이미지들이 던지는 메시지, 어느 쪽이 관객들에게 더 깊은 울림을 전달할까요? 물론, 연극이지요.
바로 이 점이, 이 깊어가는 가을, 그렇지 않아도 우리를 더 센티멘탈하게 만들면서 지적 욕망을 자극하고 사념에 빠져들게 하는 이 계절, 영화보다는 연극 한 편을 권하는 이유입니다. 좋은 연극 한 편 감상하는 일은 몸에 좋은 보약 한 채 달여 먹는 일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말 데이트는 대학로 소극장으로 정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런 계획을 세웠다면 마지막 한 마디 당부의 말을 전하겠습니다. 여기저기 공짜 초대권 구할 생각을 하지 마세요. 인터넷 뒤져서 할인 티켓 찾으려는 일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부디 제값을 주고 티켓을 구매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공연문화가 계속해서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용태(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