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모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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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모르는 것들
  • 방연식
  • 승인 2010.11.07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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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있는 인간이 되고 싶나?

이목구비는 대부분의 시간을 제멋대로 존재하다가

오늘은 나를 위해 제자리로 돌아온다.

(……)
나는 내가 되어가고
나는 나를
좋아하고 싶어지지만
이런 어색한 시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점점 갓 지은 밥 냄새에 미쳐간다.

 내 삶은 나보다 오래 지속될 것만 같다.

-신해욱, 「축, 생일」 부분, (<생물성>, 문지, 2009)

 

<‘시’도 모르는 것들>의 초극세사 소수점 열혈 독자께는 상당히 서운한 말씀이겠으나 <‘시’도 모르는 것들>은 이번 호로 끝이 난다. 겨우 여섯 번 하고 끝이라니. 원래 문학 시장에서 제일 찬밥이 ‘시’라는 장르다. 굳이 증명할 필요는 없겠으나 혹시나 궁금한 분들을 위해서 덧붙인다면, 서울의 종로나 강남의 대형 서점에 나가보라. 그 넓은 매장 안에서도 제일 조명 못 받고 찾기 어려운 구석에 천덕꾸러기처럼 숨어 있는 것이 바로 ‘시 코너’이다. 불과 1ㆍ2년 전의 시집이라도 찾으려고 하면, “잠깐만 기다려보세요”라는 말을 듣고 한 20분은 기다려야 창고에서 꺼내온 시집(그것도 초판본)을 겨우 손에 쥘 수 있는 현실이다. 오히려 창고에라도 있으면 감사할 일이다.

이런 현실이 뒤바뀌려면 일단은 수능이 없어져야 하고(그래야 중ㆍ고등학교 한창 감수성 예민할 때 EBS 수능 모의고사 문제집만 줄친 데 또 쳐가며 암기하는 대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보다가 종국에는 시집이라는 걸 읽어보는, ‘딴 짓’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겠는가), 청년 구직자들의 취업이 원활해야 되고(그래야 도서관에서 돌아와 ‘무한도전’이나 ‘남자의 자격’ 같은 ‘찌질한’ 아저씨들의 실패와 성공담만을 보며 위안을 얻는 대신 이 까다로운 ‘정서 함양’이라는 걸 시도해 볼 여유가 생기지 않겠는가), 대한민국 남자들이 몽땅 여자가 되어버려야 한다(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문학 쪽의 주 구매층은 여전히 ‘여성’이다). 하지만 아무리 곱씹어 봐도 실현 가능한 것이 단 하나도 없다!

가장 기다려지는 방법은 시인들이 ‘마성의 흡인력을 지닌 시’를 떼로 쏟아내는 것이겠다. 하지만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이라는 것이 개인의 ‘천재’도 작용하겠지만, 그것과 함께 ‘시대, 그리고 축적된 전통의 힘’과 연동하는 것이라면 이 척박한 환경에서 대한민국만큼 양질의 시가 나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따라서 여기서 더 잘 하라는 건……. 이제 궁여지책 남은 방법은 <개념 있는 인간이 되고 싶나?- 시를 읽어야 인간이 된다>는 어플을 만들어 스마트폰 사용자들에게 무상 공급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요즘 지하철을 타보면 책을 보는 사람들이 없다. 다들 지친 얼굴로 겨우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 “80년 이후의 시인 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시인을 적어도 다섯 명까지 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네가 바로 개념 만렙이다, 그날까지!” 뭐 이런 어플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이런. 요즘 유행하는 연인위치추적 어플 ‘오빠 믿지?’에 바이러스로 끼워 넣지 않는 이상 자발적으로 다운받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려나.

……미안하다. 이 칼럼으로 얼마간 그런 바이러스의 역할을 대신하고자 하였으나 성과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에 소개하는 마지막 시는 별다른 해설 없이 여러분에게 맡겨보려 한다. 1998년 세계일보로 등단한 신해욱이라는 시인이 있다. 그녀의 두 번째 시집 중 한 편. 시 본문의 행간 여백이 상당하다. 게다가 각 문장의 중층적이고 모호한 의미도 예사롭지 않다. 자칫하다가는 화가 날지도 모른다. 핵심 포인트는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있는 시적 화자의 느낌을 최대한 상상해야 한다는 것. 이 행복한 날에, 행복한 ‘것만 같은’ 날에,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는 슬프고, 쓸쓸하고, 이상한 느낌의 정체는 뭘까. 왜 이 시적 화자는 ‘갓 지은 밥 냄새에 미쳐’가는 것일까. 왜 이 사람은 ‘내 삶은 나보다 오래 지속될 것만 같다’는 이상한 말을 지껄이는 것일까. 이 시에 공명한 사람들의 해석을 기다리겠다. 다들 리포트에 치여 죽어가고 있겠지만 한 번 시도해보는 것도 추억이 될 것이다. 메일 주소는 susangpark@hanmail.net이다. 넌 뭔데 날 그렇게 우습게보냐는 메일도 좋다. 설득력 있는 해석을 보낸 사람에게는 선물이 있다. 당연히 시집이다. 그것도 필자의 시집이다. 영어 공부만 하지 말고 시집도 좀 보라는 말이다. 이 시도 모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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