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페이지를 온전히 책임지는 사람 〈1126호〉
상태바
하나의 페이지를 온전히 책임지는 사람 〈1126호〉
  • 이혁진 대학보도부 정기자
  • 승인 2024.03.2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에디터 김석준(아랍07) 동문
▲에디터 김석준(아랍 07) 동문
▲에디터 김석준(아랍 07) 동문(제공/김석준 동문)

“‘에디터는 하나의 페이지를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어떤 사람을 만날지, 어떤 사진을 쓸지, 배치는 어떻게 할지,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인 거죠."

 

당신은 잡지를 왜 읽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잡지는 하나의 취향을 알아가고 싶을 때 최고의 가이드가 되어준다. 영화를 알고 싶을 때는 영화 잡지를, 건축이 알고 싶을 땐 건축 잡지를, 문학을 알고 싶을 땐 문예지를 읽는다. 그 안에는 그 주제에 대해 깊이 탐구한 사람들의 각기 다른 기록이 있다.

김석준(아랍 07) 동문은 온라인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디 에디트’(THE EDIT)에서 5년째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디 에디트’는 “사는 재미가 없으면, 사는 재미라도”라는 모토에 걸맞게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여러 분야의 콘텐츠를 큐레이팅하고 있다. ‘에디터B’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취향을 에디팅하고 있는 김석준 동문을, 지난 20일 ‘디 에디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에디터의 이름으로 글을 쓰기까지

아랍지역학을 전공하셨지만 현재는 온라인 매거진 ‘디 에디트’에서 글을 쓰고 계십니다. 왜 전공을 살리지 않고 미디어 쪽을 선택하셨나요?

원래 꿈은 PD였어요. 고3 시절 진로를 고민 중일 때,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으면 신문방송학과가 아닌, 평범하지 않은 외국어 학과로 가보는 것도 좋다”는 조언을 듣고 독특한 학과를 찾다 아랍어과를 택했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PD보다는 기자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철학과를 복수 전공했어요. 그래서 전공을 물어보면 보통 철학과라고 말하고 다닙니다. (웃음)

대학생 때 배운 전공 지식이 일을 할 때 도움이 되기도 하나요?

아랍어는 남들 웃길 때 가끔 써요. “나 아랍어 할 줄 안다” 하고. (웃음) 그외에 아랍 지식을 쓸 일은 정말 없어요. 당시 배웠던 프로이트나 스피노자의 철학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 않죠.

그렇지만 제 삶에 있어서 큰 방향을 정해준 것이 철학이에요. 제가 3학년 때 처음으로 철학과 수업을 들었는데,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한 학기 동안 너희들이 여기에서 배워야 하는 건 ‘어떤 철학가가 몇 년도에 뭘 했는지’ 같은 게 아니다. 너희들은 ‘철학함’을 배우면 된다.” ‘철학함’이 뭐냐고 묻는다면 ‘의심해 보는 것’ 같아요. 누군가가 한 말을 바로 수긍하는 것이 아니라, “왜?”라고 질문해보는 거죠.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탐구해 보는 훈련이 에디터 생활에 큰 도움이 됐어요.

졸업 후 7번의 이직을 거쳐 현재 직장에 자리를 잡으셨는데, 이전에는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대부분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했어요. 공연 전문 매거진이나, 인테리어 스타트업의 콘텐츠팀에서도 일했고, 인문학 강연 사이트에서도 잠깐 일했어요. 여러 번 옮기게 된 건 다 다른 이유였어요.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거나, 상사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준 경우도 있었고,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직장을 옮기기도 했죠.

조금 더 오래 다녔어도 배우는 게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버티면서 배우는 것들도 있거든요. 그렇다고 무조건 버티는 게 정답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에는 각자가 잘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본인 문제는 본인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공/김석준 동문)
(제공/김석준 동문)

‘멋진취향’은 ‘나’를 먼저 알아야 만들어진다

‘에디터’라는 직업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는 생소할 것 같아요. 평소 일정이나, 글을 쓰기 위한 과정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보통 에디터라고 하면 기자와 비슷해요. 기자의 업무 중에서 취재가 거의 90%라면, 반대로 에디터는 편집 업무가 더 많아요. 에디터들은 보통 잡지를 만드니까 시각적으로 어떻게 보일지, 글과 사진을 어떻게 배치하는 게 좋을지를 더 고민하는 것 같아요.

‘디 에디트’는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월요일에 회의를 해서 매일매일 올라갈 기사를 결정해요. 이외에는 뉴스레터도 운영 중이라 수요일에 아이템 회의를 통해 소재를 추려서 목요일 저녁에 발행해요. 에디터의 일주일은 보통 이렇게 돌아가는 편입니다.

출연하신 유튜브나 매거진을 보면 ‘멋진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냥 좋다고 소문난 물건이나 비싼 것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걸 알고 탐구하는 ‘좋은 취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정말 좋은 취향을 만들기 위해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아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패션 브랜드를 고를 때도 단순히 비싼 것, 유행하는 것보다는 내가 입었을 때 정말 좋다거나, 브랜드의 철학이 좋다고 느끼는 것처럼 자신을 기준으로 고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의 기준에 의해서 결정하게 되면 죽을 때까지 영원히 내가 좋아하는 걸 모른 채로 죽을 것 같거든요.

평소에 소비할 때 기준이 있나요?

반골 기질이 있어서 남들이 다 사는 물건은 잘 안 사요. 괜찮아 보이는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라면 소개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사는 거죠. 사람들이 많이 아는 ‘무신사’ 같은 곳을 소개하는 건 큰 의미가 없잖아요.

반대로 ‘사이소’라고 경상도 음식만 파는 곳이 있거든요. 이런 재밌고 좋은 곳이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거예요.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발굴하고 소개해 주는 게 에디터의 일이기도 하고, 재미있으니까 하는 것 같아요.

왠지 에디터라고 하면 남들이 잘 모르는데 좋은 것들을 많이 알 것 같아요. 최근 관심 있게 보는 브랜드가 있나요?

‘누깍’이라는 스페인 기반의 업사이클링 브랜드를 소개하고 싶어요. 자전거 바퀴 타이어나 자동차 타이어 같은 것들을 업사이클링 해서 가방이나 지갑을 만드는 브랜드에요. 같은 업사이클링 브랜드인 ‘프라이탁’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고, 가격도 절반 정도로 저렴해요.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가치는 같기 때문에 남들과 좀 다른 걸 추구하고 싶다면 ‘누깍’을 소개해 주고 싶어요.

필사적으로 좋아한다면 잘 해낼 수 있다

20대에는 누구나 도전하고 부딪혀 보라고들 합니다. 대학 졸업 후 현재까지 여러 직장을 옮기고 일을 하며 겪은 뼈저린 실패의 경험이 있었나요?

사실 특별히 ‘실패’라고 생각하는 건 없어요. 어쩌면 7번의 이직이 7번의 실패일 수도 있지만, 이것 또한 저에게 많은 도움을 줬기 때문에 그 경험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후회’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처음으로 인턴 기자를 했던 때인 것 같아요. 그때 6개월을 일했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생각보다 빨리 관뒀어요. 꿈에 그리던 것들을 마침내 이뤄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더 버티고 오래 다녔다면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런데 그걸 그만두면서 배운 것들도 있기 때문에 큰 후회라는 생각이 들진 않아요. 제가 별로 후회를 하지 않는 성격이라 그런 것 같아요. 후회하는 게 없네요. 저는. (웃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신 것 같습니다. 사회를 먼저 경험한 선배로서,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정답은 아니지만, 전 좋아하는 일이라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잘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관심이 없으면 오래 버티지 못해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느껴요. 그래서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면, ‘좋아하는 일을 한번 택해봐. 그러면 어느 정도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해주고 싶어요.

그다음에 잘 안된다 싶으면 현실적으로 포기해야 하겠죠. 그래도 일단은 좋아하는 것부터, 정말 아주 좋아하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제공/김석준 동문)
(제공/김석준 동문)

나를 알기 위한 부딪힘의 과정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생의 가치는 뭔가요?

나를 위한 ‘지속 가능한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게 가장 어려워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건 쉽지 않거든요. 이를테면 연애를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자기가 어떤 사람과 만났을 때 잘 맞는지 바로 알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연애뿐만 아니라 직장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내게 어떤 일이 잘 맞는지를 알 수 있는 거고, 영화도 이런저런 영화를 많이 봐야 자기가 좋아하는 걸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결국에는 직접 부딪혀보고 알려고 하는 게 중요해요. 부딪혀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거든요.

에디터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와, 인간 김석준으로서 이루고 싶은 가장 큰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는 ‘디 에디트’라는 매거진을 한국을 대표하는 로컬 매거진으로 만들고 싶어요. 사람들이 어떤 취향에 대해 궁금하다면 '디 에디트'를 통해 찾아볼 수 있게 만드는 거죠.

김석준으로서의 목표는, 그냥 제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대답하고 나니까 되게 뻔하네요. 전화를 할 때도 ‘행복하세요 고객님’ 이런 말을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말해서 그 말이 닳고 닳은 말이라고 느껴졌는데, 요즘 드는 생각은 몇 번 불행해 본 사람은 행복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걸 잘 아는 것 같다는 거예요.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찾으며, 그걸 오래 하며 살고 싶어요. 거창한 건 아니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목표가 있을까요?

(제공/김석준 동문)
(제공/김석준 동문)

되고 싶은 게 있다면 당장 되어보세요

에디터를 꿈꾸는, 글을 쓰고 싶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만약 에디터가 되고 싶다고 하면 ‘지금 바로 해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에디터가 되기 위해 잡지사 같은 곳에 취업을 해야 됐지만, 지금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인스타그램에 내가 원하는 매거진의 이름을 붙여 계정을 만들면 그 사람은 이제 에디터가 되는 거예요. 수많은 정보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큐레이팅할지 본인의 역량에 따라 매거진을 만들 수 있는 거죠. 제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책들을 보며 열심히 글을 쓴 것처럼, 자신이 원하는 길이라면 필사적으로 스스로가 그 방법을 찾아낸다고 믿어요.

마지막으로, 본인에게 대학 시절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 최종 학점이 3.0 정도였어요. 대기업에 취직하기에는 낮은 점수죠. 그런데도 전 학점을 신경 쓰지 않았어요. ‘행정학개론’ 같이 저에게 쓸모도 없고 학점도 잘 안 주는 수업을 많이 들었는데, 전 그게 너무 즐거웠어요. 어쨌든 나는 대학에 공부하러 왔고, 내가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우겠다는 마인드로 8년을 다녔기 때문에 배우는 일이 너무 즐거웠고, 학점이 잘 안 나와도 괜찮았던 세월이었어요.

누군가는 이걸 실패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성공만 있던 대학 생활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후배들도 본인이 어떤 대학 생활을 보내고 싶은지를 스스로가 정해보면 좋겠어요. 그 사람의 정답은 그 사람만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석준 동문이 직접 촬영한 학교 사진
(제공/김석준 동문)

에디터로서 수많은 분야를 다루는 그가 가장 깊이 탐구하는 분야는, 무엇보다 ‘자신’이었다. 그것을 알아가며 에디터로 일하기 위한 동력을 얻고, 행복하기 위한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찾으며, 그걸 오래 하며 살고 싶어요. 거창한 건 아니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목표가 있을까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인문캠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거북골로 34 (명지대학교) 학생회관 2층
  • 자연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명지로 116 학생회관 2층
  • 대표전화 : 02-300-1750~1(인문캠) 031-330-6111(자연캠)
  • 팩스 : 02-300-175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환
  • 제호 : 명대신문
  • 창간일 : 1954년 11월
  • 발행인 : 유병진
  • 편집인 : 송재일
  • 편집장 : 한지유(정외 21)
  • 디자인·인쇄 : 중앙일보M&P
  • - 명대신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명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jupress@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