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나면 쓸 수 없는 불편한 언어사전 〈11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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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나면 쓸 수 없는 불편한 언어사전 〈1126호〉
  • 이서하 편집장
  • 승인 2024.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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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속에 숨은 혐오, 말하기 전에 한 번은 생각해야 할 것들

우리 사회는 꾸준히 욕설을 문제시해 왔다. 욕설의 어원을 논하며 청소년 언어습관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대표적이다. 욕설이 어휘력 및 인지능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을 통해 자제를 권고하는 경우도 있다. 욕설은 손쉽게 다른 단어를 대체하기에, 결과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줄어들며 적절한 표현 방법을 잃게 된다는 이유다. 한편, 이러한 주장에 맞서 미국의 심리학자 크리스틴 제이와 티모시 제이의 연구를 예로 들어 “욕설을 잘하는 사람이 보다 다양한 어휘를 구사한다”며 욕설의 순기능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아무리 순기능이 있다 해도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 또는 남을 저주하는 말’(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로 규정된 욕설을 권장하기는 어렵다.

욕을 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어원 △개인의 능력 △바른 언어습관 등을 주로 논할 뿐, 욕설이 ‘한 집단을 비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자주 등장하지 않는 듯하다. 욕설의 어원을 톺아보면 그 자체로 누군가를 비하하는 경우가 다수 발견된다. 이러한 사실은 욕설이 ‘나쁜 말’임을 증명하기 위해 다뤄질 뿐, 언어권력의 문제까지 확장되는 일이 드물다.

욕설에는 계층 간의 권력이 작용한다.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을 매개로 성립하는 언어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누군가를 혐오하고 무시하는 뜻을 담아 만들어진 말은 사회가 해당 집단을 그렇게 대해도 되는 대상으로 취급함을 증명한다. 즉, 욕설을 사용하는 것은 청자에 대한 모욕뿐 아니라 단어의 어원이 되는 집단에 대한 모욕을 포함한다.

국어사전에 근거해 욕설의 범위를 특정 단어만이 아니라 문장 형태의 어휘까지 넓혔을 때, 사용을 자제해야 할 표현은 유명한 몇 단어만이 아니다. 본지는 좁은 범위의 욕설인 특정 단어부터 넓은 범위의 욕설인 모욕과 혐오표현까지를 살필 예정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언어 속에 녹아 든 차별을 논하고, 앞으로 언어생활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욕설에 얽힌 역사, 그 순기능

욕설은 저항정신과 연관이 깊다. 대표적으로, 봉산탈춤에 등장하는 ‘말뚝이’의 대사는 모두 양반을 조롱하는 욕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에 불쾌감보다는 유쾌함을 느낀다. 신분 차이로 인해 쉽게 논할 수 없는 대상인 권력층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말들에 대리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이렇듯 풍자와 해학을 담은 욕설을 ‘지배권력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민중들의 언어투쟁’이라 칭한다. 피지배계층이 욕설을 통해 지배계층을 해체, 자신과 같은 위치로 끌어 내림으로써 지배구조에 도전하고자 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지성사ㆍ문화 등을 연구하는 서해성 작 가는 TBS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인용하며 “한국에 욕설이 많은 것도 20세기를 지나오는 동안 고생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감정을 발산할 때 나오는 욕설이 고통을 줄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국 킬 대학교의 리처드 스티븐 박사 팀(이하 연구팀)은 차가운 얼음물에 손을 넣은 후 한 집단은 욕설을, 다른 집단은 평범한 단어를 반복적으로 말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욕설 집단은 2분을, 비-욕설 집단은 1분 15초를 버텼다. 이처럼 고통 속 욕설은 아픈 감정을 발산하는 동시에 주의력을 분산시켜 그 상황을 견딜 수 있도록 한다. 연구팀은 “욕설이 교감신경계를 촉진하기 때문에 진통제 역할을 하게 되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는 진통제와 비슷한 일시적 효과로, 평소 욕을 습관처럼 한다면 해당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분석을 덧붙였다.

국립국어원은 일반 국민의 언어사용 행태와 국어에 대한 관심을 알아보기 위해 2005년부터 5년 주기로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이하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2020년 국립국어원이 전국 만 20~69세 성인 남녀 5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응답자의 46.9%가 욕설을, 48.1%가 비속어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욕설ㆍ비속어를 사용하는 이유로는 △기분 나쁨을 표현하기 위해서(32.6%) △습관적으로(23.1%) △친근감의 표현 (22.0%) 등의 순으로 응답했다. 처음 실시한 2005년의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기분 나쁨을 표현하기 위해서’ 는 23%p 감소했으나, ‘습관적으로’라는 답변은 21.9%p 증가했다.

욕설에도 분명히 그만의 기능이 존재한다. 그러나 순기능으로 여겨지는 이유보다도 단순히 기분이 나빠서, 습관이 되어서 욕설을 쓰는 사람들이 늘어난 오늘날 우리는 욕설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고민할 필요성이 있다.

 

욕설의 주재료, 타자

▲표는 실제 사용되고 있는 욕설 또는 혐오 표현의 일부와 해당 단어가 어떤 대상을 혐오하고 있는지 정리한 것이다.
▲표는 실제 사용되고 있는 욕설 또는 혐오 표현의 일부와 해당 단어가 어떤 대상을 혐오하고 있는지 정리한 것이다.

한국갤럽연구소의 ‘2022년 혐오표현 관련 대국민 인식조사’에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혐오 표현을 접해 본 경험률이 각각 82.4%와 76.7%에 달했다. 해당 조사에서는 △정치적 이념이 다른 사람 △여성 △노년층 △성소수자 등 다양한 집단이 혐오 표현의 대상이 되고 있음 역시 알 수 있다.

▲표는 한국갤럽연구소 ‘2022년 혐오표현 관련 대국민 인식조사’에서 어떤 혐오표을 자주 접했는지를 정리한 것이다. (출처/ 한국갤럽연구소)
▲표는 한국갤럽연구소 ‘2022년 혐오표현 관련 대국민 인식조사’에서 어떤 혐오표을 자주 접했는지를 정리한 것이다. (출처/ 한국갤럽연구소)

한국의 갈등 지수*는 OECD 30개국 중 3~4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인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이동후 교수는 『경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미디어 환경 자체가 세대 갈등을 일으키는 표현을 굉장히 손쉽게 공유할 수 있다”며 “이를 통제할 만한 방어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했다. 혐오표현으로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갈등이 첨예해진 사회에서는 상대 집단을 모욕하고자 혐오표현이 생기기도 한다. 미디어는 이런 혐오표현을 보다 쉽게 전파한다는 것이다.

*갈등 지수: 정치, 경제, 사회의 총 3개 분야 13개 항목을 조사 해 0~100점으로 표준화한 수치.

 

욕설없는 욕설, 미세공격

그러나 이러한 단어들만 제지하면 욕설과 혐오가 사라질까? 직접적인 표현 없이도 상대를 모욕하고 혐오하는 방법은 무수히 존재한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언어표현이지만 듣는 사람은 기분이 나빠지거나, 기분이 나빠야 하는 상황인지 고민하게 되는 말을 ‘미세 공격’이라 칭한다. 미세공격은 미국에서 일상 속 인종차별을 지적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지만, 근래 다양한 차별의 상황까지 확장돼 사용되고 있다.

미세공격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2007년, 당시 상원의 원이었던 조 바이든이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버락 오바마를 묘사한 문장이 있다. “명석하고 전과도 없고 잘생겼으며, 주류 사회에 편입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나타났어요. 동화 같은 이야기죠.” 언뜻 칭찬처럼 보이지만, 흑인에 대한 편견이 담긴 말이다. 조 바이든의 세계관에서 흑인은 무지하고, 범죄를 저지르며, 주류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다. 그에게 이 범주를 벗어난 버락 오바마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보인다.

우리에게 조금 더 가까운 예시로는 “동양인치고는 눈이 크시네요”라는 말이 있다. 외모를 칭찬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동양인은 눈이 작고 찢어져 있다는 외모적 편견을 내재한 표현이다. 이러한 미세공격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사람은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것이 아닌지, 불쾌함을 드러내도 ‘옳은’ 것인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을 거듭하며 △우울감 △자신감 하락 △자존감 상실 등을 겪게 된다.

미세공격은 내면에 내재된 편견에서 기인한다. 화자에게는 비하의 의도 없이 자연스러운 말이었더라도 청자는 불쾌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지적했을 때 으레 듣게 되는 말은 사과나 반성이 아닌 “왜 그렇게 예민해?”다.

 

혐오의 시대에 불편을 깨닫는다는 것

‘친근감을 주기 때문에’ 욕설을 사용한다던 조사 결과처럼, 이제 친구 간의 욕설은 친밀함의 표현이 되었다. 욕설과 비하를 유쾌함으로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또한, 쉽게 양산되는 혐오표현은 그것이 재치 있는 풍자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이런 표현에 불쾌함을 드러내면 ‘진지충’, ‘선비’ 등의 표현으로 즉시 욕설의 청자가 된다. 그러나 기꺼이 ‘선비’가 되기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있다.

A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욕설 사용이 어느 정도 습관이 되었고, 짜증날 때 자주 쓴다”며 “그래도 병신이라는 말은 자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병신’은 명백히 장애인 혐오적인 표현이기에 가급적 사용하지 않고자 한다는 것이다. A씨는 “어쩌다 한 번 뱉는 욕설은 감정 표출일 수 있지만, 습관적으로 말하면 남에게 내뱉기도 쉬워진다고 생각한다”며 욕설의 습관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전했다.

B씨 또한 명확한 혐오 표현도 물론이지만, ‘바보’, ‘문디’ 등 귀엽고 완곡하게 쓰이는 비하 표현에 대해서 특히 주의 중임을 밝혔다. 욕설은 표현의 다양성을 감소시킬 뿐더러 전파력이 강해, 자신이 이런 말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의 언어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이유다. B씨는 “대화할 때 욕을 쓴다면 상대방에 대한 공감, 또는 상황의 부정적이고 심각한 면을 명확히 해야 할 때 쓴다”고 말했다. 얌전해질 수 없는 상황, 즉 사회적 강자가 약자들을 침묵시키고자 할 때 강력한 저항을 위해 욕설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B씨는 “욕설을 아예 사용하지 않기보다, 사용하지 않아야 할 말을 지양하고 대체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바르고 고운 말을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떤 감정이나 현상은 욕설 이외로 표현하기 어렵다. 강한 어휘로 저항 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명백한 혐오 표현에 대해서도 한 번은 고민이 필요하다. 과연 이 말이 아니면 이것을 표현할 수 없을까? 대체할 만한 표현은 없는 것일까?

어떻게 말하는 것이 상대를 존중하는 말하기이며, 어떻게 해야 혐오와 차별을 조금은 줄일 수 있을 것인지. 사회 각계각층에서 서로에 대한 갈등이 물밀듯 흐르는 오늘날은 욕설을 ‘나쁜 말’이라며 간단한 표현으로 뭉뚱그리기보단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이 소수자, 약자에 대한 혐오임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고민해야 할 때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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