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윤의 페미니즘 산책] 성평등 없는‘자유민주주의’슬로건의 함정 〈11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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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윤의 페미니즘 산책] 성평등 없는‘자유민주주의’슬로건의 함정 〈1126호〉
  • 구지윤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 필진
  • 승인 2024.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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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윤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 필진
구지윤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 필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인생 첫 투표를 치르게 될 사람부터 이미 몇 번의 선거를 경험한 사람들까지, 이 글을 읽을 한 명 한 명의 생각이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지지하는 정당이 있는지, 지역구와 전국구(비례 대표)에 투표할 정당이 동일한지, 이번 총선에서 눈여겨보는 주제가 있는지, 어떤 정당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가져가게 될지. 나누고 싶은 질문이 산더미다. 이러한 이야기가 독자들의 사적 · 공적 공동체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이 지면에서는 우리가 치를 총선이 현재 어떤 토양 위에 있는지 거칠게나마 톺아보려 한다.

이번 총선은 집권 3년 차로 들어선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로 일컬어진다. 여러 평가 지표 가운데 현 정부와 여당이 끊임없이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해 온 만큼, 윤 대통령 집권 이후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숙했는지 역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스피커를 독점하지 않고 다른 목소리, 특히 약자의 목소리를 탄압하지 않는 것, 나아가 소수자성과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장려하는 것. 이러한 특징들은 민주주의 국가를 왕정 국가 및 독재 국가와 구분한다. 따라서 국가와 정치가 약자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는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유용한 리트머스지가 된다.

현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에 힘입어 탄생했고, 집권 이후에도 여성은 그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여성 관련 예산은 삭감되고 공공기관들은 전례 없는 통폐합과 축소를 겪었다. 학교와 일터 등 사회 곳곳에서는 ‘페미니즘 사상검증’이 당연한 듯 이루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7일 발표 된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의 ‘민주주의 리포트 2024’는 ‘독재화가 진행 중인 나라’로 한국을 포함하며, 한국의 민주주의가 박근혜 시절 민주주의 수준으로 후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선 국면에서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행보와 사회적 분위기를 돌이켜봤을 때, 한국의 민주주의가 퇴보한다는 분석 결과가 특별히 새롭거나 충격적이지는 않다.

이러한 현상에는 국회도 큰 책임이 있다. 단편적으로 이번 총선을 들어보자. 19일 기준, 거대 양당 공천 후보자의 80% 이상이 남성이다. 선거 때마다 여성 정치인은 ‘구색 맞추기’로, 여성 유권자는 ‘선거 승리’를 위한 전략으로만 동원될 뿐, 이후 정책 추진 과정에서 성평등과 여성은 자취를 감춘다. 정치 집단의 남성 편향과 ‘차악과 최악의 경쟁 정치’는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여성 정치인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성평등 의식과 소수자 감수성을 갖추고 있거나, 더욱 뛰어난 민주 의식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당장 공천을 받은 (몇 안 되는) 여성 후보자들 가운데에도 권력형 성폭력의 2차 가해에 가담하거나, 성폭력 가해자를 변호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피해자다움’을 재판 전략으로 광고했던 후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로 여성과 소수자 집단에 제도 정치의 문턱을 높이고, 중산층 고학력 비장애인 이성애자 중년 남성으로 국회와 정부를 채우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여성 정치인에게 투표하라는 뜻이 아니다. 누가 정치인이 될 것인가, 어떤 정치를 펼쳐나갈 것인가의 기준에 성평등 의식이 중요하게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뜻이다.

성평등이 삭제된 선거와 정치 토양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정부와 국회가 그간 어떤 존재를 배제하고, 누구를 위한 현안만을 주요하게 다루어왔는가의 문제가 적체되어 발생했다. 그렇기에 정치와 총선에 대한 이 모든 이야기가 정치인들이 설정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소외된 누군가에게는 ‘노잼’ 일 수 있다. 시민들이 정치에서 멀어지는 만큼 민주주의는 힘을 잃는다. 그리고 시민들이 정치에서 멀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역설적으로 현재의 정치가 충분히 민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 무관심은 기득권에게는 이익을, 소수자에게는 심화된 차별과 배제를 불러온다.

성평등은 민주주의를 확장한다. 반대로, 성평등 없이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정부와 여당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고 말하고, 야당은 훼손된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평등 없는 현재의 ‘자유민주주의’ 슬로건이 얼마나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또 성숙하게 할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선거 당일까지 우리에겐 부족하게나마 시간이 남아있다. 비관보다는 비판을, 냉소보다는 적극적인 투표 행사가 이루어지는 총선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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