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만 볼 수 없는 여성 노숙인 〈1125호〉
상태바
있지만 볼 수 없는 여성 노숙인 〈1125호〉
  • 명대신문
  • 승인 2024.03.11 14: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달 27일, KBS 시사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시사기획 창〉은 ‘길에서 여자가 살았다’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24시간을 함께하며 취재한 여성 노숙인의 삶은 남성 노숙인의 삶과 달랐다. 주로 실직, 사업 실패 등 경제 문제로 노숙을 하게 된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은 절반 이상이 가정 폭력, 가족 해체와 같은 가정 내 위기로 인해 노숙인이 됐다. 여성 노숙인들이 숨어지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우리는 쉽게 지하철 역사나 공원 등에서 신문지를 깔고 생활하는 노숙인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나 실제 여성 노숙인들은 공중 화장실에 숨어 생활했고 그마저도 밤새 남성들이 드나들며 ‘돈을 주겠다’, ‘방을 잡아주겠다’며 위협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2022년 발표한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노숙인의 30% 가까이를 여성이 차지한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노숙인들은 대다수가 남성이다. 여성 노숙인들은 성폭력이나 폭행 등 범죄 피해에 쉽게 노출돼 △공중화장실 △패스트푸드점 △PC방 등에서 숨어 살기 때문이다. 이에 꾸준히 여성 노숙인을 위한 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지난해 처음 시범사업의 일종으로 ‘여성 거리노숙인 보호 전담조직’을 선정했다. 그러나 올해 다시 관련 예산이 삭감됐고, 여전히 여성 노숙인들은 남성 중심의 일률적인 정책 속에서 더욱 큰 위험에 놓여있다.

지난해 6월, 서울역 인근에서 여성 노숙인 A씨가 술에 취한 남성이 성희롱을 하며 접근하자 흉기를 꺼내 위협했다는 이유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8월에는 서울지하철 9호선 등촌역에서 여성 노숙인 B씨가 일면식 없는 60대 여성을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가해자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여성 노숙인이라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감염으로 평소 복용하던 약을 처방받지 못하고 쉼터에서도 나와야 했던 B씨는 이후 경찰조사에서 “갈 곳이 없어 교도소라도 가고 싶어 그랬다”고 진술했다. 두 사건은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그들의 범죄를 오로지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않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인문캠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거북골로 34 (명지대학교) 학생회관 2층
  • 자연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명지로 116 학생회관 2층
  • 대표전화 : 02-300-1750~1(인문캠) 031-330-6111(자연캠)
  • 팩스 : 02-300-175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환
  • 제호 : 명대신문
  • 창간일 : 1954년 11월
  • 발행인 : 유병진
  • 편집인 : 송재일
  • 편집장 : 한지유(정외 21)
  • 디자인·인쇄 : 중앙일보M&P
  • - 명대신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명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jupress@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