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곳은 있어도 머물 곳은 없는 사람들 〈11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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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곳은 있어도 머물 곳은 없는 사람들 〈1125호〉
  • 김다은 사회문화부장
  • 승인 2024.03.1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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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의 고용허가제를 살펴보다

지난해 9월, 국무조정실은 가사 및 육아돌봄 부담 완화 차원에서 고용허가제(체류자격 E-9)를 통해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도입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당초 가사관리사 100명의 12월 입국을 목표한 것과 달리 국가 간 협의에 차질이 생겨 아직 시행 시기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시범사업 시행 이전부터 정부는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 최저임금 적용이 불가피하다고 밝혔으며, 이에 더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현재 책정된 임금은 월 200만 원이지만, 월 100만 원 정도 되면 정책 효과가 좋겠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고 발언했다. 최저임금 이상을 줄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는 가사 및 돌봄 노동에 대한 국가의 인식과 동시에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저출생, 고령화로 인한 생산인구 감소로 해외인력 유입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고용노동부는 올해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올 이주노동자 수를 역대 최대인 16만 5천 명으로 확정했다. 이는 지난해 12만 명, 그 이전까지는 5~6만 명 수준에서 그치던 것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숫자다. 허용 업종 또한 △임업 △광업 △음식점업 등으로 확대됐다. 이에 정부는 “생산인구 감소 등 구조적 요인이 여전한 상황에서 빈 일자리 비중이 높은 일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외국 인력 요구가 지속되고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래프는 고용허가제 도입 규모의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그래프는 고용허가제 도입 규모의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다가온 현실이자 예정된 미래인 해외인력 유입 증가에도 국가 차원에서 논의되는 고용허가제 중심의 이주노동자 처우는 여전히 열악한 수준이다. 이에 본지는 현행 고용허가제를 분석해 한국이 기존의 제도로 지속 가능한 해외인력 유입을 실현할 수 있을지 가늠하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고용허가제의 운영과 변화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외국인근로자를 위한 고용허가제 안내’에 따르면 고용허가제는 “한국 정부(고용노동부)가 인력을 구하지 못한 한국기업에게 외국인근로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는 제도”이다. 현재는 인력송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17개의 인력 송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오고 있으며, 허용 업종으로는 △중소 제조업 △농 · 축산업 △어업 △건설업 등이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연속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4년 10개월로 최초 계약 시 3년, 이후 고용주가 재고용을 원할 시 1년 10개월을 더 일할 수 있다. 고용허가제를 통한 이주노동자들의 입국은 △한국어능력시험 응시 △외국인 구직자 명부 작성 및 송부 △표준근로계약 체결△사전취업교육 △입국 및 취업교육 △사업장 배치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고용허가제 시행 이전엔 ‘산업연수생 제도’가 있었다. 1993년 도입된 산업연수생 제도는 중소기업협동조합이 해외의 인력송출 기관과 협력하여 연수생 신분의 이주노동자를 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인권침해, 송출비리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네팔 출신 산업연수생들이 기본권 보장을 위한 농성을 펼치는 등 제도 개선 혹은 철폐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산업연수생제도는 심각한 인권침해를 유발하여 국제사회에 인권탄압 국가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었다. 앞으로는 보다 당당하게 외국인력을 고용하고, 합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고용허가제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정부는 2003년 8월, 「외국인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다음 해인 2004년 8월 고용허가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기본권조차 지키지 않는 근무 환경

산업연수생 제도의 문제점 개선을 위해 시행된 고용허가제이지만 열악한 거주 환경 및 근무 환경은 여전히 문제다. 2020년, 한파주의보가 내린 포천의 기숙사에서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기숙사는 비닐하우스 안의 가설건축물로 다섯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세 개의 방을 나누어 쓰고 있었다. 또한, 함께 기숙사를 사용하던 노동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기숙사는 속헹 씨가 사망하기 며칠 전부터 전기와 난방이 들어오지 않아 도저히 지낼 수 없는 환경이었다.

▲사진은 속헹 씨가 거주했던 기숙사이다. (출처/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사건 대책위원회)
▲사진은 속헹 씨가 거주했던 기숙사이다. (출처/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사건 대책위원회)

속헹 씨의 죽음에 이주노동자 인권 단체들은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 대책을 위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국가의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도 고용노동부는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이 동사가 아닌 간경화로 인한 합병증, 즉 개인의 질병이라고 발표했다. 이후 인권 단체들이 모여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사건 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고인의 죽음은 단순히 질병으로 인한 사망으로 설명될 수 없다”며 “한파 경보가 내려질 정도의 추위 속 난방이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기숙사의 문제, 비위생적이고 안전하지 않은 숙식 환경 속에서 고강도 노동을 지속해야 했던 노동 환경의 문제, 질병이 있었다 하더라도 적시에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없었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사망일 가능성이 높다”는 성명문을 발표해 산업 재해 보상을 요구했다.

이주노동자들이 보장받지 못한 기본권은 주거권만이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이주노동자 연도별 임금체불 현황’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신고 건수는 약 15만 회, 체불 임금은 1,3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특히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63조에 따라 근로 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규정에서 제외되고 있다”며 “12시간 이상 일해도 잔업 수당을 받을 수 없고 한 달에 한 번도 채 쉬지 못하고 일하기도 한다”고 이주노동자들이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을 설명했다.


벗어날 수 없는 족쇄, 사업장 이동 제한

그렇다면 이주노동자들은 왜 주거권, 노동권 등 기본적인 권리조차 지켜지지 않는 사업장에서 계속해서 근무할 수밖에 없을까.

고용허가제는 기본적으로 고용주의 동의 없이 사직하거나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다. 체류자격을 잃게 되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인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25조에서 허용하는 사업장 이동의 범위는 다음과 같다.


제25조(사업 또는 사업장 변경의 허용)
① 외국인근로자(제12조제1항에 따른 외국인근로자는 제외한다)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직업안정기관의 장에게 다른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의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 <개정 2010. 6. 4., 2012. 2. 1., 2019. 1. 15.>

1.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로 근로계약기간 중 근로계약을 해지하려고 하거나 근로 계약이 만료된 후 갱신을 거절하려는 경우

2. 휴업, 폐업, 제19조제1항에 따른 고용허가의 취소, 제20조제1항에 따른 고용의 제한, 제22조의2를 위반한 기숙사의 제공,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 또는 부당한 처우 등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인하여 사회통념상 그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근로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인정하여 고용노동부장관이 고시한 경우

3.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발생한 경우


법률상 이주노동자들은 고용 계약 해지와 사업장 이동을 주장할 권리가 없다. 고용주가 고용변동신고를 해 사업장을 이동하는 경우에도 최초 3년의 취업 기간 중 3회를 초과할 수 없으며, 재고용 1년 10개월의 기간 중 2회를 초과할 수 없다. 예외적으로 노동자 본인이 △임금체불 △가설건축물 기숙사 거주 △폭행 등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사업장 변경을 원한다는 것을 입증하면 횟수에 포함하지 않고 고용센터에서 직권으로 사업장 이동을 허용한다. 하지만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이에 대해 “이주노동자들이 겪은 피해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직접 확보하기 어렵다”며 “폭행 등을 입증하기 위해 필요한 CCTV 화면을 사장이 주지 않거나 작업장에 CCTV가 없는 경우도 많다. 임금 체불의 경우도 고용센터에서는 입증 서류를 요구하지만, 임금을 일부는 지급했다는 이유로 체불임금확인서는 발급해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행법상 고용주에게는 노동시간을 기록할 의무가 없고 임금 체불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근로감독관에게 체불임금확인서를 받아야 한다.

이에 더해 정부는 지난해 9월부터 고용허가제를 통해 신규 입국하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일정 권역 내로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존엔 동일 업종 내에서 지역과 관계없이 사업장 변경을 허용했으나, 지역 소멸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이주노동자의 직업 선택과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어, 생활법률 등을 교육하고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과 관련된 고충 상담을 진행해 오던 ‘외국인노동자 지원센터’의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이주노동자들의 자유는 더욱 제한되고 권리 침해를 구제받을 방법은 사라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에 이주노동자가 필요하다면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이동 지역 제한이 발표된 이후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헌법과 국제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조차 쉽게 침해당하는 것에 항의한다”며 오체투지 행진을 벌였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고용허가제는) 사업주와의 근로계약을 전제로 취업비자를 받아 내국인력이 부족한 업 · 직종에서 근로하는 것이므로 해당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며 헌법재판소가 고용허가제의 목적을 고려해 직장선택의 자유 및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또한, 사업장 이동 지역 제한은 원활한 인력 활용을 위한 것이며 저출생, 고령화로 인한 생산인구 감소와 비수도권 지역의 인구 감소세로 지역소멸 위기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범부처적 노력을 기울인 결과라고 설명했다.

국가는 사업장 변경 제한을 포함한 고용허가제의 기본권 침해가 자국민의 이익을 위한 고용허가제의 본질적인 목적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한편, 민주노동연구원에서 발표한 ‘2023 고용 허가제 대안 연구’ 보고서는 “열악한 노동조건과 강제노동, 착취를 방조하는 고용허가제는 더 이상 변화하는 인구구조와 노동시장의 요구에 적합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국적과 체류자격에 따른 차별 금지 △현행법상 보장되어 있는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법적 엄격성과 구속력 강화 △국제 인권 규범의 기준에 부합하도록 이주노동 법제 개정 △미등록 및 비공식 부문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안정적인 체류와 노동권 보장을 전제로 한 고용허가제 대안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내국인이 기피하는 일을 대신하는 대체 인력, 그렇지 않으면 불법 체류자로 전락하는 작금의제도로 한 개인의 삶 전체를 정의내릴 수 없다. 이제는 현재의 고용허가제가 증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을 감당할 자격이 있는 제도인지 고민할 시간이다. 인력이나 일손으로 여기는 데 그치지 않고 이주노동자들을 우리 사회의 진정한 이웃으로 받아들일 더 나은 방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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