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없는 목소리는 흐트러진다 〈1124호(개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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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없는 목소리는 흐트러진다 〈1124호(개강호)〉
  • 명대신문
  • 승인 2024.02.26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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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전공의들의 파업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일 오전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이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을 통하여 밝힌 바에 의하면 19일 밤 11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의 55% 가량인 6,415명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일련의 파업은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등에 반대하는 목적으로 일어났다. 정부는 급격한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를 고려해 의대 증원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나, 의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늘어난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만한 인력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의 기피 현상을 해결하려면 근본적으로는 수가(진료 및 수술비)를 올려야 하기에 단순 의대 정원 증원만으로는 정부가 기대하는 ‘인력 낙수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현재 의료계는 지방의료 및 특정 과 기피 현상으로 한정적 인력 부족을 겪고 있다. 이는 노동환경 등 여러 조건에 영향을 받는 현상인 만큼 단순 증원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의사 파업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냉랭하다. 지금까지 의사 직군이 보여 온 행보 때문이다. 간호법 제정을 요구하며 간호사들이 파업을 감행할 당시 의사협회에서는 “본연의 사명을 저버린 채 거리로 나가는 것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파업을 반대했다. 그러나 필수인력을 남겼던 간호사와 달리 전공의는 전원 사직서를 냈다. 파업을 반대할 때와는 모순되는 행보를 보인 것이다. 또한 수가를 조정하려면 26개 전공별 학회장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 기피과 처우 개선을 논할 때 가장 크게 반대하는 것은 다름 아닌 본인 학과의 이득을 고려한 타 학과라는 점 등에 의해 내부 개선부터 필요하다는 지적 또한 나오고 있다.

모든 노동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의료시스템 개선이 시급한 지금, 의사 직군의 파업 역시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 보지 않은 채로 낸 목소리는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한다.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라는 제목의 시는 타인의 고통을 방관하던 ‘나’가 마침내 박해받게 되었을 때, 나를 위해 목소리를 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논하고 있다. 화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어 줄 사람들은 이미 압제자에 의해 죽거나 갇혔으므로.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땅에는 타인을 위해 목소리를 낼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다.

언제나 처음이 가장 어려운 법이고, 옷의 색과 상관없이 노동자는 모두 노동자다. 한 노동자를 부당하게 대우했다면 다른 노동자를 또다시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니 고작 말로나마 연대하며 살아가자. 연대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비로소 ‘내 편’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마음이 내키는 범위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상호 생존에 대한 이야기다. 의협이 이번 파업을 계기로 민심을 돌아보고 향후의 태도를 보다 좋은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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