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11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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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1121호〉
  • 이혁진 대학보도부 정기자
  • 승인 2023.10.10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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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기사는 다분히 사적인 마음에서 출발했다. 평소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만큼, 흥미로운 여행기를 담고 싶었다.

필자는 여행 예찬론자다. 돈을 모으는 족족 여행비로 쓰고, 바쁜 현실을 잠시 미뤄두고서라도 긴 여행을 계획해 떠났다. 특히 방학이 오면 수십 가지나 되는 ‘여행의 이유’ 를 거론하며 함께 떠나자고 친구들을 꼬드겨 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실패한다. 처음에는 “별로 여행을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왜? 여행을 가면 바다에서 수영도 하고,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고, 공원에서 낮잠도 자고…. 하지만 그 사람 나름의 ‘여행을 가지 못할 이유’를 듣고 나면 말문이 막히곤 한다. 누군간 돈이 없어서, 누군간 시간이 없어서, 누군간 겁이 나서, 누군간 그저 귀찮아서…. 떠나지 못할 이유도 한 트럭이다. 결국 나름의 이유를 듣고 나면 그 사람에겐 그게 우선순위겠거니 하고 납득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사를 쓰며 품은 단 한 가지의 목표가 있었다면, 이 기사를 읽게 될 누군가에게, 적어도 한 명에게라도 떠날 결심을 품게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난여름 필자는 일본 기차역에서 즉흥적으로 표를 끊었고, 한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내려보니 한국인은커녕 사람의 흔적도 하나 없는 곳에서 길을 잃었는데, 우연히 일본 친구를 만났고, 마찬가지로 길을 잃었던 그 친구와 함께 시간표도, 역무원도, 전파도, 인적도 없는 시골 간이역에 앉아 무작정 다음 열차를 기다렸다. 서로의 언어를 몰라 손짓, 발짓으로 꽤 오래 대화를 나누며 나는 나의 여행을 이야기했고, 친구는 자신이 겁이 많아 멀리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헤어진 후, 친구는 번역기에 의지한 한국어로 “나의 가능성을 넓혀주어 고마워”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친구의 눈엔 인적 없는 일본 시골에서 길을 잃은 한국인이 신기하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누군가의 세상을 넓혀준 순간, 그 말을 듣고 나의 세상도 한 뼘 자랐다. 여행은 이렇게, 계획하지 않은 방향에서 소중해진다.

이 미천한 이야기로 당신의 마음에 여행을 떠나고픈 싹을 아주 아주 조금이라도 틔웠다면 필자의 목표는 달성됐다. 이제 그 마음을 잘 가꿨으면 한다. 왜 그런 일을 바라냐고 하면, 나도 당신의 여행을 듣고 싶기 때문이다. 여행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표정엔 항상 설렘이 가득하다. 언젠가 필자의 것보다 더 반짝이는 이야기를 당신이 들려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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