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은 언제 오나 〈11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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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은 언제 오나 〈1120호〉
  • 명대신문
  • 승인 2023.09.2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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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률 감소는 이미 시시해진 화두다. 심각한 주제라지만 대한민국이 사라질 거라는 예측은 이미 지배적이다. 기실 누군가는 차라리 망하라며 박수를 칠지도 모른다. ‘출산율 증가’를 위한 대책을 세우자며 연일 아우성이지만 9시 뉴스에는 이별 후 전 남자친구의 폭행으로 크게 다친 여성과 폭행 강도에 비해 낮은 형량을 받은 전 남자친구가 등장한다.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강간을 당했더라도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폭력적인 언사를 당당히 내뱉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는 말은 유명무실하다. 고개를 들어 세상을 보면 이유를 모를 수 없다. 육아휴직을 하면 ‘꿀 빤다’며 욕을 하고, 휴직 이후 경력이 단절되는 여성은 지금도 많다. 유리천장과 유리절벽 앞에서 생리공결을 쓰기란 일부 사람들의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켜켜이 쌓인 사회적 차별로 여성이 살기 어려운 세상을 만든 다음 마치 여성이 구국의 의무를 짊어진 영웅이라도 된 양 ‘무자녀세 도입 검토’ 를 운운하며 비혼 여성과 기혼 여성 사이의 대립구도를 만든다. 대단한 이이제이다.

낳을 만한 환경이 아니라는 말은 뒤집어 말하자면 살 만한 세상이 아니라는 소리다. 각종 공기업이 민영화 도마에 오르며 시민의 불안과 불편을 가중한다. 사회적 신뢰 역시 소멸의 길을 밟 고 있다. 이를테면 도심 길거리를 걷다 누군가 붙잡으면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던 시절은 옛적이고, 이제는 대다수가 지레 사이비 종교나 불량한 이들이 아닐까 걸음을 빨리하는 사례다. 기저에 무한경쟁을 두고 번아웃 상태로 접어든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냥 쉬었다’는 청년은 두 달 연속 40만 명을 웃돌고, 1년 사이 10만 3천 명이나 줄어든 청년 취업 수치는 심각한 청년실업을 증명한다. 장애인 일자리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18일,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 예산 23억 원이 전액 삭감된 것에 항의하며 발달장애인 활동가 및 장애인 운동 활동가 25명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에서 시위, 경찰이 강제 연행하는 사건이 있었다. 장애인이 일하기 어려운 구조를 방치한 채 취업 실적 저조만을 운운하는 것은 공공과 복지의 가치를 잊었음이 분명하다.

국가는 각 개인의 자연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국가가 국민의 자연권을 온전히 보전하지 못했을 경우 국민과 국가의 계약은 무효화된다. 다음 단계는 저항과 교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취업을 위시한 생활은 물론 추모 하나 온전히 하기 어렵다. 세월호 기억공간과 이태원 분향소 철거 운운이 그 예다. 참사 앞에서 기억도, 반성도 할 줄 모르는 정부임을 증명하는 행보다. 무엇 하나 바로 선 것이 없어 누구라도 버겁게 느낄 시기다. 달리 말해 출생률 이 그리 걱정스럽다면 살만한 세상이어야지 않는가. 내가 비혼이든 기혼이든 저학력자거나 장애인이거나 이외의 무엇이든지 그저 사람이기에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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