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던 ‘승진’인데… 명함과 기자증, 내 몫의 넓은 책상을 얻고 거기에 책임도 더해 얻었다. 격주로 신문이 나오는 매 월요일에, 간편 기획안을 받고 나면 다음 호에 내가 쓰게 될 기사가 확정된다. 부담스럽고, 두렵고, 막막한 시간의 시작인 것이다. 그 시점부터 나의 시간은 그 다음주 목요일, 새 신문의 마감일을 기준으로 흘러간다. 월요일이 월요일이 아니고 화요일이 화요일이 아니다. 마감이 있는 주가 되면 월요일의 이름은 ‘D-day 3’, 화요일은 ‘D-day 2’다. 수시로 메일함을 들어가지만 내게 온 답신은 아무 것도 없다. 꼭 다음메일을 짝사랑하는 것 같다. 확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채로 D-day는 가까워진다. 하지만 어떻게든 기사는 완성된다. 한순간에 우르르 들어온 인터뷰 답신들로 취재의 퍼즐을 맞추며 ‘밤을 샌다’. 진짜로 샌다. 글을 쓰면서 샌다.
학생회관 2층에 위치한 명대신문사에는 벽시계가 두 개나 있다. 약을 다해 멈춘 시계가 두 개나. 두 개 다 다른 시간대에서 멈춰 도통 내가 무슨 시간 속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밤을 새는 마감일에는 시간이 그렇게도 빨리 간다. 부장님의 첫 번째 피드백을 받은 지 15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수정한 기사를 보내는 시간을 확인하면 그로부터 1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신문사의 두 시계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지만, 그 누구도 나서서 건전지를 갈지 않는다. 1학기에는 의아했는데 2학기에는 나 또한 그렇게 하고 있다. 영문을 모르는 이상한 시간 속에서 결국에는 기사를 완성한다.
이렇게 한탄만 하면서, 나는 왜 기자를 할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기사라는 결과물을 위해 빼곡한 과정을 걷는 것이 즐겁다. 그 빽빽하고 숨 막히는 시간에서 나는 매주 무언가를 배운다. 적확한 단어를 찾는 법, 조사와 동사에 따라 오묘히 바뀌는 문장의 기조, 기사의 논조를 얼마든지 달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손끝에 실리는 힘을 느낀다.
학내 사회에서 각자의 사정으로 얽매여 있는 이해관계들을 내 기사 속에서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건 필요한 오지랖, 용기 내야 할 오지랖이다.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게 주어진 책상에 앉아, 책상이 주는 책임을 건네받는다. D-day에 가까워지는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