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그대를 거부하면 몸을 초월해라 (스포츠 05 박철우) 〈1118호(개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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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그대를 거부하면 몸을 초월해라 (스포츠 05 박철우) 〈1118호(개강호)〉
  • 박영주 대학보도부 정기자
  • 승인 2023.08.2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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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박철우 선수)
(제공/ 박철우 선수)

 

 “계속 강해지려고 노력 중이에요. 저는 계속 강해지고 싶거든요.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항상 강해지고 싶어요.”


 단 한 번의 터치. 상대 코트를 향한 단 한 번의 기회. 그 기회를 지켜내야 하는 여섯 명의 선수가 네트의 위아래를 아우른다. 프로 입성 20년 차지만, 박철우에게 배구는 여전히 새롭다. 배구에 녹아든 삶을 이야기하는 그의 눈빛은 순수하면서도 또렷하게 빛난다. 그간 쌓아온 경험의 깊이에도 계속 성장하고자 하는 굳건한 신념이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일까. 20년간 맡아온 포지션을 바꿔 이제는 코트 중앙에서 공격을 준비한다. 세터가 띄워준 기회를 향하여 ‘전력’을 다해 달리는 그는 프로 배구팀 한국전력 빅스톰의 주장이다.


#평생을 위한 공부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현대캐피탈에서 프로 활동을 시작하셨잖아요. 그럼에도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고 싶어 명지대에 진학하셨다고 들었는데, 흔치 않은 결정 같아요.
고등학교 때, 소위 말하는 엘리트 스포츠는 수업 자체가 뒷전이 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래서인지 ‘배우고 싶다’는 제 나름의 갈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들어간 곳은 경기지도학과였어요. 그곳에서 스포츠 분야와 관련한 다양한 수업을 받으며 제가 하는 배구의 폭을 더 넓힐 수 있었어요. 

구단 유튜브에서, 배구가 아니었다면 대학에서 물리학을 배워보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배구를 너무 잘하고 싶다 보니까 신체적인 트레이닝이 필요하거나 정신적으로 부족함을 느꼈을 때 책을 많이 찾아 읽었어요. 책을 읽다 보니까 세상의 정신이나 과학들이 모두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게 되었고요. 어떻게 보면 책 속에서 힌트를 얻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해요. 압박 속에서 어떻게 버텨낼까, 같은 고민을 여러 학문을 통해 풀어내려 했거든요. 관심사가 많지만 결국에는 다 경기로 집결되는 것 같아요.


#나를 깨운 빨간 불빛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셨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으셨잖아요.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어떤가요?
저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일을 해야 두렵고 힘든 일이 생겨도 어려움을 계속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기거든요. 저도 나름의 파도가 많았는데, 배구라는 게 제가 좋아하는 일이라 흐름대로 파도를 잘 타고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회의감이 들고 힘들 때도 있지만 그걸 다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운동 자체를 너무 좋아하고 있어요.

다양한 스포츠 중에서 ‘배구’가 가지는 매력이 뭘까요?
일단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로 이어지는 게 스포츠라는 분야 자체의 매력 같아요. 그리고 배구는 절대 혼자서 공을 여러 번 만질 수 없거든요. 팀원이 있어야 다음을 할 수 있는 종목이기 때문에 한 번의 플레이에 모든 걸 걸게 되는 매력이 있지 않나 싶어요. 스포츠인으로서는 고민이 있었어요. 운동을 한다는 게 저를 위한 목적이지,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는 분께서 제게 “너는 플레이로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지 않느냐”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까 저에 대한 의미를 찾은 느낌이었어요.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경기로 보여주는 게 당연한 마인드라고 여기게 되었죠. 누군가에게 전율을 주고 즐겁게 해줄 수 있으니, 정말 매력적인 직업인 것 같아요.


#ladder로서의 마음가짐


한국전력 빅스톰의 주장도 4년차이신데, 주장의 입장에서 리더의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보스와 리더 중 선택 같아요. 삼성(삼성화재 블루팡스)에 있을 때는 보스도 해봤어요. 어떤 틀 안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게 삼성의 문화였거든요. 그런 분위기에서 오는 응집력은 장점이 되기도 했어요. 한국전력의 분위기는 규율이 있으면서도 부드러웠어요. 하지만 감독과의 소통이 문제였죠. 스펠링이 조금 다르지만, 저는 이곳에서 사다리(ladder)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중간 역할이 되어서 팀이 융화되고 팀워크가 더욱 만들어질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다행히 선수들이 제가 온 후로 3년간 팀이 많이 변했다고 말해주더라고요.

특정 구단을 응원하게 되는 데에는 선수의 역할도 적지 않다고 생각해요. 팬의 입장에서는 트레이드 소식이 들리면 가슴이 철렁하는데요. 선수들에게 이적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프로 선수는 하나의 상품이다’ 정도의 한 문장이 끝인데, 사실 그 뒤의 여백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있죠. 트레이드를 당한 선수 입장에서는 아쉽고, 너무나도 힘든 선택이에요. 떠날 때는 팀에 대한 애정이 더 크게 느껴지고 슬퍼요. 근데 저희 팀이 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다른 팀에서 저를 더 필요로 한 거거든요. 결국은 이적한 팀에 적응해서 잘 지내고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선수 생활에서 크게 두 번의 변화가 있지 않았나 싶어요. 10년간 뛰었던 삼성화재에서 한국전력으로의 이적과 지난 시즌 후반부에 미들 블로커*로 포지션 전향. 변화가 두렵지는 않으셨나요? 
제가 선수 생활을 한 모든 순간에 선택과 두려움이 함께 있었던 것 같아요. 다행인 건 제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거예요. 항상 변화하고 싶어 하고, 더 나은 방향이 있다면 더 나아가려고 노력하거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몸이 그대를 거부하면 몸을 초월해라”인데요. 변화가 그렇게 무서운 일은 아니에요. 아이들은 넘어져서 조금만 피가 나도 우는데, 그 이유가 아이들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라 그래요. 너무 아프고 큰일 났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럼 저는 제 딸들한테 이렇게 얘기해요. 부러지고 찢어지고 끊어진 거 아니면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저를 베테랑으로 불러주시는 건 제가 살면서 어려운 상황도 많이 겪어보고 상처도 많이 받아봐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괜찮아요. 별거 아니라는 감정을 가지면 돼요.
*미들 블로커: 배구에서 중앙에 자리하여 상대편의 공을 막고 속공 공격을 하는 선수

미들 블로커와 아포짓 스파이커*를 둘 다 해보니 어떠세요? 포지션 적응은 잘 되고 있나요? 
아포짓 스파이커는 저한테 적합한 포지션이었어요. 그 포지션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했죠. 그런데 20년 넘게 하던 걸 한순간에 바꿔야 하는 거잖아요. 처음에는 적응이 어려워서 원래 포지션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것도 생각을 한번 바꾸고 나니까 장점이 되기 시작하더라고요. 독특하다는,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편한 점에 집중하기보다 잘할 수 있는 건 그대로 놔두고, 어려운 건 안 하고, 부족한 건 채워나갔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포지션 변경 후 시험 무대였던 KOVO컵**에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어요. 계속 더 노력해봐야 할 것 같아요.
*아포짓 스파이커: 배구에서 주로 코트의 오른편을 맡아 공격하는 선수 
**KOVO컵: 한국배구연맹의 주최로 비시즌에 개최되는 컵 대회


#차근차근, 같이 걷기


계속 목표치를 향해 달리다 보면 번아웃이나 슬럼프가 올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선수님도 그런 적이 있으셨나요?
현재 진행형이에요. 전에도 몇 번 왔다 갔다 했는데, 앞으로도 또 올 거라고 생각해요. 번아웃이라는 게 목표치를 너무 크게 잡아서 오는 실망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저는 원래 야간 운동을 매일 했어요. 그걸 해야지만 좋은 선수가 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피곤해서 본 운동에 집중을 못 하는 악순환이 생기더라고요. 깨달아야 해요. 모든 선수가 마이클 조던이 될 순 없어요. 되고 싶은 마음가짐은 중요하지만 될 수 없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것이 중요해요. 그 후로 휴식할 땐 확실히 휴식을 취하고 할 수 있을 때 충분히 쏟아부었어요. 자존감이 올라갔고 좋은 훈련이 나왔죠. 내가 그 순간에 온전히 집중할 때 가장 행복하고, 그때 오는 성취감이 가장 커요. 자신의 미래를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조금 즐기면서 해요.

배구에서는 승리를 위해 팀워크가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하지만 대학생은 꿈을 이루기 전까지는 ‘혼자’ 해나가야 하는 것 같아요. 대학교라는 소속 외에는 개인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목표를 이루는 데 혼자 가기 힘드니까 서로 돕는 힘을 이용하는 게 팀워크거든요. 같은 목표를 가질 수 있도록 좋은 팀을 만드는 게 중요해요. 절대 혼자 한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주변에서 좋은 팀원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팀의 모습이 가족이 될 수도 있고, 같은 과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좋아하는 교수님이 될 수도 있어요.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몇 명이 되든 그게 팀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혼자 하는 싸움이 아니에요.


#불광불급


프로에 가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명지대 배구부 선수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미친 듯이 하라. 저는 무언가에 미쳐 있는, 몰입되어 있는 상태가 중요한 것 같아요. ‘몰입’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 영어로 ‘flow’가 몰입이라는 뜻을 가지기도 하거든요. flow의 의미를 ‘흐름’으로 많이들 알잖아요. 몰입을 했다면 그 흐름을 탔다는 거예요. 선수들도 본인의 현재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두려움도, 걱정도 사라지고 좋은 경기할 수 있을 거니까 ‘몰입’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V리그가 두 달 정도 남았는데 어떻게 준비하실지 각오 한 말씀 부탁드려요!
부족한 스킬들을 더 다듬어야 할 것 같아요. 블로킹에서는 손 모양이나 스텝을 더 신경 쓰고, 공격적인 부분에서도 저다운 공격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저희 팀의 좋은 센터인 신영석 선수한테 조언도 받는데, 어쩌면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배구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선수들과 더욱 발전해서 이번 시즌에는 저희가 원하는 챔피언의 목표를 꼭 이루고 싶습니다.


 그의 배구 열정은 계속될 것이다. 선수를 넘어, 지도자의 위치까지. 그는 과연 어디까지 날아오를까. 어제보다 오늘 더 단단해졌을 그의 한계를 가늠하는 것은 어쩌면 무모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준비 완료. 박철우가 때리는 공은 어제보다 오늘 더 높이 튀어 오른다. 


 “좋은 선수가 된다는 건 매 순간 제가 노력하고 지켜내는 과정이에요. 지금의 내가 좋은 선수라고 끝이 아니라 계속 그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해요. 죽는 순간에야 평가받게 되지 않을까요. 좋은 선수였고, 좋은 사람이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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