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부원의 우리가 살았던 시간들] 대물림의 욕망과 사회적 업보 〈1118호(개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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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원의 우리가 살았던 시간들] 대물림의 욕망과 사회적 업보 〈1118호(개강호)〉
  • 강부원 인문학협동조합원
  • 승인 2023.08.2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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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원 인문학협동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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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12월 7일에 치러진 서울특별시 지역 전기 중학교 입시 자연 과목 18번 객관식 사지선다 문항은 소위 ‘무즙 파동’이라 불리는 사태를 초래했다. “엿을 만들 때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무엇인가?” 서울시 공동출제위원회가 발표한 정답은 1번 ‘디아스타제’였다. 2번 답안으로 제시된 ‘무즙’을 정답으로 고른 학생도 많았다. 왜냐하면 무즙을 넣어도 엿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역에 따라 엿을 만들 때 무즙을 넣는 경우가 있었다. 실제로 무즙에 디아스타제 성분이 다량 포함돼 있으니 당연히 무즙도 답이 될 수 있었다.

시험 직후부터 논란이 불거졌는데도 불구하고 서울시 교육청은 원안을 고수했다. 1번 디아스타제만 정답으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전부 오답으로 처리한 것이다. 결국 한 문제 때문에 수십 명의 학생이 그토록 선망하던 명문 중학교 입학에 실패했다. 당연히 2번 무즙을 답안으로 골라 오답 처리된 학생들의 엄마들이 들고일어났다. 이들은 무즙을 넣어 직접 만든 엿을 들고 교육청을 찾아가 항의했다. 흥분한 엄마들은 “무즙으로 만든 엿이나 먹어라”며 소리 지르고 엿을 던지는 등 소동을 피웠다. 1960년대 중학교 입시는 엄마들이 치르는 대리전이기도 했다. ‘치맛바람’이라는 말이 처음 나오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무즙 파동’ 이후 중학교 입시는 철폐됐지만, 1970년대와 1980년대에도 고등학교, 대학교 입시 전쟁은 계속 이어졌다. 겉으로만 평준화였지 지역에 따라 학군으로 나뉘면서 강남 8학군 학교들로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강남 지역 아파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강남에 있는 학교를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도 불사하는 사람이 많았다. 부모의 소득 수준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자식들이 받는 교육 혜택이 확연히 달라지게 됐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가고, 사다리는 걷어차졌다. 사회 고위층 자녀들의 입시 비리는 그 후로도 더욱 교묘하게 지속됐다. 부유층 사이에서는 자녀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한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암암리에 공유되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시기에 자녀를 외국 유학 보냈다 특례로 대학에 입학시키기도 하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승마나 하프 따위를 배우게 해 체대나 음대에 편법으로 집어넣기도 했다.

학력고사가 수능으로 바뀌고, 종합생활기록부와 내신이 중요해져도 어떻게든 파고들 빈틈이 있었다. 1980~90년대는 대학들이 뇌물을 받고 자격이 없는 이들을 부정 입학시켰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터져 나왔다. 2000년대 이후로는 로스쿨이 생겨났고 의전원이 개설됐다. 정권 실세 인사의 자녀가 부풀린 성과로 부당하게 얻은 학벌이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모두에 아킬레스건이 되었던 사례를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1960~70년대 KS 마크를 달았던 부모 세대가 자신의 자식들에게 그 증표를 물려주려는 비뚤어진 욕망이 우리 사회를 지속적으로 해롭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런 부모 밑에서 속물로 성장한 80~90년대 학번 세대들도 자기 자식들의 주류 사회 안착을 돕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행태가 여전하다. 우리 사회가 이대로 지속된다면 지금 초중고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어른이 돼도 바뀌는 것이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입시 때만 되면 국가 전체의 사회적 긴장이 높아져, 모든 우선순위를 진학 관련 이슈로 할애하는 등 공동체의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소진하는 일이 많다. 시험 시간에는 나라 전체가 비행기도 띄우지 않는 이런 문화는 좋게 이야기하면 수험생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입시 경쟁을 당연시하거나 부추기는 사회적 병증이기도 하다.

어린 학생들은 입시의 고비를 넘지 못하게 되면 마치 대역죄인이나 된 것처럼 의기소침해지거나, 인생의 낙오자가 되었다는 듯이 좌절하고 만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1960년대 ‘무즙 파동’을 겪은 뒤에도 입시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사회적 안전판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학생들은 ‘사당오락(四當五落)’이니,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같은 상스런 조어들을 삶의 규준으로 삼아야만 했다. 이런 교육 환경에서 자란 세대들에게 ‘공정’과 ‘평등’의 개념은 ‘성과주의’와 등치될 수밖에 없게 된다. 대승적인 화해나 윤리적인 나눔에 대한 감각을 배우고 익히지 못한 탓이다. 악습의 대물림이자, 원죄를 씻지 못한 사회적 업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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