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번에 남자친구랑 어쩌고저쩌고 했는데, 너네도 그래?”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섹스 잡담. 꼭 누군가 응큼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처럼 20대 초반에는 친구들과의 수다에서 주로 등장하는 주제에 '섹스'가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대화 주제 전반에 변화가 생기고 또래 친구보다 사회에서 사귄 지인들을 주로 만나다 보니 섹스 잡담이 줄어들거나 태도가 바뀌었다. 물론, 나는 아직도 소위 ‘섹드립’을 즐겨하고, 종종 섹스에 대해 잡담하곤 한다.
그러나 섹스 잡담 안에서도 예전과는 다른 주제를 말한다. 예전에는 애인과의 관계, 성행위 자체에 대해 상세한 고민과 구체적인 이야기가 많았다면, 이제는 성에 대한 모든 건, 다 ‘FUN’이다. 다 재미있게 즐기는 대화가 대부분이다. 이미 섹스 경험이 많고 고민과 생경함을 거쳐 온 닳고 닳은(?) 연륜을 지녔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고저쩌고해”라는 식의 대화가 많았다면, 점차 “~은 그런 면이 있구나. 그럴 수 있겠다”라는 조금 더 객관적인 태도로 변화된다.
이러한 섹스 잡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는 바로 나의 고민과 상황에 대한 ‘통찰’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섹스와 관계에 대해 늘어놓으면 생각이 정리되고 통찰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
섹스 잡담으로 몰랐던 정보를 알게 되거나, 편견이 사라지거나 하는 좋은 대화도 있다. 타인과 나의 다른 생각이나 다른 경험을 들으면서 간접 경험도 가능하고, 무엇보다 섹스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게 된다.
섹스 잡담은 야하지만, 철학적인 수다다. 흥미 위주의 섹스 주제가 펼쳐지다 보면 굉장히 철학적인 깨달음을 얻게 된다.
지난번 수다에서 ‘힘든 상황에서 열렬하게 사랑하는 커플’에 대해 지인 A씨가 의문을 품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나는 “그런 드라마틱한 상황에서 사랑하는 게 평범했던 때와 다른 색다른 맛이 있지 않을까?”라고 대답했다. A씨는 손뼉을 치며 동감했다.
어느 순간 섹스 잡담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판단하지 않는다. 누구든, 무슨 일이든 다 이유가 있는 법. 모든 섹스와 관계에는 철학이 있는 법이다.
이 밖에도 섹스와 관계에 대한 주제는 다양하다. ‘나’는 한정적일지라도, ‘우리’로 바라보면 삶과 삶에 대한 태도가 다양해지니까 말이다.
‘잡담’이라고 표현했지만, 섹스 관련 대화는 꼭 필요한 ‘필담(必談)’이다. 우리 삶의 태도를 알 수 있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섹스 잡담으로 경험을 공유하라는 게 아니다. 섹스라는 주제 앞에 각자의 태도를 공유하면서 인정할 건 인정을, 그 속에서 깨달음을 발견하는 필담을 나누기를.
섹스 잡담에서 더 많은 철학이 쌓일수록 나도, 너도 성장해가고 있다. 설레는 경험을 토대로 수다를 진행했다면 점차 서로 다른 섹스라이프를 존중하는 안정감이 생긴다. 서로 사랑하고 사랑스럽게 살고자 하는 건 모두의 관심사니까 말이다.
그런 섹스 잡담의 철학 속에 ‘판단’은 없다. 나는 이런 색깔, 너는 그런 모양, 나는 이쪽에, 너는 저쪽에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나를 잃지 않는 필담으로 성숙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