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득 ‘우리 인생이 성장하고 문명이 발달하는 이유는 모두 인간관계 때문이 아닐까? 너에게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너의 편안함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나도 모르게 성장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때로 ‘요즘은 낭만이 없다, 진정한 사랑도 없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에 대해 나도 일정 부분 공감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상에 진정한 사랑과 낭만이 사라졌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과 관계맺음에 있어 낭만과 진정성이 희미해졌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인간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사랑하고, 살아간다. 즉 우리는 관계를 통해 성장한다. 이런 것들에 희미함을 느낄 때, 어쩌면 그때가 우리의 성장이 가장 더딘 시기일지도 모른다.
나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에는 핵심적인 단계가 있다고 본다. 만남 초반은 육체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이를테면 서로의 생리적 활동을 이해하고, 상대의 삶 전반을 알아가는 거다.
이때, 우리는 육체를 알아가는 ‘수습 단계’를 겪는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상대의 참마음을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 수 있는’단계에 도달한다. 어떤 커플은 도달하기 어려운 단계까지 맞이한다. 바로 영혼을 알아가는 시간이다. 영혼을 알아가게 될 즈음부터는 상대를 대할 때 선한 마음과 그렇지 못한 마음을 적절하게 조절하며 진실을 담아내는, 보다 철학적이고 성숙한 단계로 돌입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육체, 마음, 영혼을 순차적으로 통달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진정한 마음과 영혼의 사랑에 닿기 전, 육체를 알아 가는 ‘수습 시간’을 먼저 거친다는 뜻이다.
동양사상에서 섹스는 남자와 여자의 양기와 음기가 서로 교통하며 기운을 북돋는 창조적인 행위라고 한다.
단순히 도파민 중독자처럼 욕구 해소를 위한 이기적인 섹스가 아닌, 서로를 생각하는 진정한 낭만적 섹스를 동양사상처럼 ‘에너지의 교류’로 바라본다면 이것도 일종의 상호보완적인 행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맞는 육체적 에너지가 있기 마련이다. 그 에너지를 언제, 어떻게 풀어내느냐는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에너지의 순환은 수직적이지 않고, 평원한 모양으로 이뤄지기에 혼자가 아니라 사랑과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육체를 알아가는 수습 단계를 거치고 있기에, 아직 이해보다 욕구가 앞서는 서툰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상호보완적인 섹스가 완성되면서 우리가 함께하는 이 관계는 더 성장한다. 육체를 알아가다 보면 저절로 상대의 마음과 교통하게 되는 게 섹스고, 관계다.
너를 더 좋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다 보니, 내가 먼저 좋은 사람으로 커가는 게 바로 ‘진정한 관계’가 아닐까? 함께 열심히 육체를, 마음을, 또 영혼까지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성숙해가는 과정. 진정한 사랑은 없다고, 낭만은 사라졌다고 느껴진다면 아직 섹스 수습 단계일 수도 있다고 한 번쯤 나를 되돌아보자. 그리고 열심히 이 시간을 상대와 함께하자. 모든 관계가 그렇듯 너를 좋게 만들면서 내가 좋아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