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칼럼] 역설적인 시대에서 ‘낯선 것’과 기꺼이 조우하기를 〈1116호〉
상태바
[명진칼럼] 역설적인 시대에서 ‘낯선 것’과 기꺼이 조우하기를 〈1116호〉
  • 이종선 국제통상학과 교수
  • 승인 2023.05.15 14: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종선 국제통상학과 교수 jongseon@mju.ac.kr
이종선 국제통상학과 교수 jongseon@mju.ac.kr

아침 출근길, 막히는 차 안에서 지루함을 달래고자 음악을 듣곤 한다. 얼마 전까지도 취향에 딱 들어맞는 노래를 검색하여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했었다. 그런데 자동 추천 기능을 통해 노래를 선곡해주는 신세계를 경험하면서부터는 알고리즘에 모든 것을 맡기게 되었다. 유튜브에서는 끊임없이 내가 좋아할 만한 영상이 추천되고, 넷플릭스 역시 나의 취향을 분석해서 영화를 추천해 준다. 참으로 편리한 시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려되는 마음이 들기도 하는 건 왜일까? 비슷한 노래들, 어딘가 닮은 듯한 영화들에만 둘러싸이게 되는 세상에 살아가다 보니 우연이라도 ‘낯선 것’들을 접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낯선 것’이 가지는 힘은 생각보다 위대하다. 익숙했던 영역을 벗어나 낯선 영역을 접하며 예상치 못한 아이디어가 싹트고 창의적인 결과물들이 만들어지곤 한다. 혁신에 주목한 수많은 학자들도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낯선 영역에 대한 탐색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왔다.

스티브 잡스 역시 이러한 낯선 것의 힘을 알고 있었다. 애플에서 해임되어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CEO로 일하게 되었을 당시의 일화이다. 당시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한참 본사 건물을 짓고 있었는데, 그는 새 건물의 화장실을 중앙 한 곳에만 위치하도록 설계하기를 요구하였다. 왜 화장실을 하나만 그것도 건물의 중앙에 설치하기를 원했을까? 누구나 반드시 이용해야만 하는 화장실을 중앙 한 곳에만 만듦으로써 직원들 사이에 우연한 ‘낯선 만남’을 경험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화장실을 오가며 다른 부서의 익숙지 않은 동료들과 인사를 나눌 수도 있고 이러한 마주침을 통해 교류를 시작하는 계기들을 만들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짧은 담소를 나누며 자연스레 서로의 업무 이야기들로 화제가 번져나갈 수도 있고, 풀리지 않던 부분의 실마리를 얻게 되는 행운이 생겨나기도 했을 것이다. 이는 하나의 단적인 예이지만, 무엇보다 창의적 역량이 뒷받침되어야만 하는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성공적 행보를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낯선 것’에 대한 경험을 강조했던 덕분일 것이다.

네트워크 이론의 권위자인 미국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는 ‘The strength of weak ties’라는 연구를 통해 약한 연결의 중요성을 소개하였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밀접하게 접촉하는 끈끈한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느슨하고 약한 관계는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마크 그라노베터는 이직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새로운 직장을 구하게 되었는지를 분석하여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하였다. 강한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직장을 구했을 것이라는 통념과는 다르게 가끔 만나는 관계인 약한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직장을 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람들은 이미 중복된 정보를 공유하고 있어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 오히려 서로 낯설다고 볼 수 있는 약한 네트워크 안에서는 중첩되지 않는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이러한 것이 예상치 못한 긍정적 결과를 가져다준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창의성과 혁신을 강조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 시대는 개인의 취향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한쪽으로 치우치도록 만들고 있기도 하다. 각종 개인화 추천 서비스들로 수고로움을 덜어주고 효율성을 높여주었지만, 세상의 폭을 좁게 만들고 더욱더 견고한 나만의 벽을 세우게 만들었다. 다른 시각과 주장을 우연이라도 접할 기회마저 줄어들게 하여 우리를 특정 시각에 갇히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높이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 우리는 작은 노력들을 시작해야만한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것’들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관심 없던 영역의 것들을 기웃거려 보고 나와 반대되는 의견들을 마음을 열고 접해보면 어떨까? 부디 낯선 것과 조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 출근길에는 듣지 않던 카테고리의 음악을 직접 찾아 들어볼까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인문캠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거북골로 34 (명지대학교) 학생회관 2층
  • 자연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명지로 116 학생회관 2층
  • 대표전화 : 02-300-1750~1(인문캠) 031-330-6111(자연캠)
  • 팩스 : 02-300-175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환
  • 제호 : 명대신문
  • 창간일 : 1954년 11월
  • 발행인 : 유병진
  • 편집인 : 송재일
  • 편집장 : 한지유(정외 21)
  • 디자인·인쇄 : 중앙일보M&P
  • - 명대신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명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jupress@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