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소비자, 체리슈머로〈11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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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소비자, 체리슈머로〈1115호〉
  • 김나영 사회문화부 정기자
  • 승인 2023.05.0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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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다고 지출하지 않기? 효율적으로 지출하자!

계속되는 물가 상승에 지출이 나날이 늘자 청년층 사이에서는 소비를 줄이는 방법으로 ‘지출하지 않는’ 방법이 떠올랐다. 2030세대에서 유행하고 있는 일명 ‘무지출 챌린지’다. 필자는 지난 1월, 일주일 동안 하루 지출이 만 원을 넘지 않는것을 목표로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했다. 결과적으로 본래 일주일 평균 약 20만 원을 소비했던 것에서 크게 절감한 8,480원으로 지출을 줄이는 효과를 봤다. 그러나 무작정 지출을 하지 않는 방법은 일시적으로 소비를 줄일 수 있을 뿐 장기적으로 볼 때 현명한 소비라고 할 수 없다. 그리하여 본지는 새롭게 등장한 절약형 트렌드 ‘체리슈머’에 관해 알아보고 이를 담아내려 한다.

▲사진은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한 필자의 지출 목록이다.
▲사진은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한 필자의 지출 목록이다.

플렉스는 이제 안녕
그동안 2030세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는 ‘욜로’나 ‘플렉스’였다. 욜로(YOLO)란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로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후회없이 살자’는 의미를 담아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소비 태도를 말한다. 오직 현재만을 고려해 결정하는 소비라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이지는 못하다. 이러한 소비 태도에서 더 나아가 ‘자신을 위한 아끼지 않는 투자’라는 명분으로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 형태인 플렉스(FLEX)가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현재 본인의 경제수준에서 쉽게 구매할 수 없는 고가의 상품이지만 ‘고생한 나를 위해 내가 주는 선물’이라는 의미가 2030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욜로나 플렉스는 자신에게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아끼는 소비행태로 볼 수도 있지만, 자신의 경제수준을 뛰어넘는 소비라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거침없는’ 소비만을 즐길 것 같던 2030세대들에게서도 소비를 줄이며 절약하는 모습이 관측됐다.
최근 감소하는 청년층 소비에 관한 물음에 대해 우리 대학 경제학과 김도형 교수는 본지와의인터뷰에서 “청년 소비 감소에는 금리 인상의 영향이 컸다”라면서 “코로나19에 대응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1% 미만으로 유지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때 대다수의 청년이 대출을 받아 투자를 시작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단기간에 크게 인상하자 문제가 터졌다. 고금리에 차입자들의 이자 상환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자연스레 청년층의 소비 감소로 이어진 것이다”라고 답했다.

체리슈머의 등장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청년층의 소비 감소는 신조어와 소비 트렌드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소비와 관련해 생겨난 대표적인 신조어로는 ‘짠테크’가 있다. 돈에 인색한 사람을 표현하는 단어인 ‘짜다’와 금융 거래에 의한 이득을 꾀하는 일인 ‘재테크’의 합성어인 짠테크는 단순히 소비하지 않는 방식으로 돈을 아끼기보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 낭비를 최소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울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이하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는 매년 새해를 이끌어나갈 트렌드를 발표한다. 토끼해를 맞은 올해 2023년에는 토끼의 힘찬 도약이라는 의미가 담긴 ‘RABBIT JUMP’가 발표됐다. 해당 키워드의 약자 중에서도 첫 번째 B에 해당하는 ‘Born picky, Cherry-sumers’ 즉, ‘체리슈머’는 소비에 대한 최근 소비자들의 태도를 명확히 설명하는 용어다.

▲위 표는 2023년 소비 트렌드 키워드 ‘RABBIT JUMP’의 약자를 풀이한 표다.
▲위 표는 2023년 소비 트렌드 키워드 ‘RABBIT JUMP’의 약자를 풀이한 표다.

체리슈머(Cherry-sumers)란 케이크에 올려진 체리만 골라 먹듯, 구매는 하지 않고 혜택만 챙기는 사람을 의미하는 ‘체리피커(cherry picker)’에 ‘소비자(consumers)’를 더한 합성어다. 혜택만 챙기려고 꼼수를 부리는 사람들이라는 부정적인 의미의 체리피커와 달리, 체리슈머는 전략적이고 계획적인 소비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다시 말해 체리슈머는 효율적인 소비, 이른바 ‘가성비’를 추구한다. 체리슈머가 추구하는 가성비는 자기가 원하던 ‘PLAN A’가 실현 불가능할 때 그 대체제로 ‘PLAN B’를 생각하는 식의 소비가 아니다. ‘PLAN A’를 원하는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PLAN a’를 찾아나선다. 본인의 경제수준에서는 구매하기 어려운 와인이 먹고 싶을 때 비슷한 맛이 나는 저가 와인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해당 와인을 잔 단위로 파는 매장을 찾는 식이다. 절약적인 소비를 하면서도 자신의 욕구까지 충족할 수 있는 합리적인 지출을 찾아내는 소비자가 바로 체리슈머다.

체리슈머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체리슈머는 자신의 경제수준과 주어진 환경에 맞춰 지출을 계획하기 때문에 중고거래나 공동구매 또는 소포장 제품과 같은 합리적인 소비를 선호한다. 이러한 구매를 선호하게 된 데에는 경제 불황이 지속된 여파도 있지만 1인 가구가 증가한 영향도 크다. 2021년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세대별 체감경제고통지수’ 분석에 따르면, 15~29세 청년들이 느끼는 경제적 고통지수는 △청년층(19세~29세) 25.1% △30대 14.4% △40대 12.5% △50대 13.3% △60대 16.1%로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그리고 20세 미만에서 29세까지의 청년들은 전국 연령별 1인 가구 중 가장 높은 비율(약 19%)을 차지하는 세대기도 하다. 청년들은 1인 가구로 자리 잡으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견뎌야 했기에 더더욱 합리적인 소비 상품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① 경제 불황 지속
체리슈머의 등장은 ‘불황관리형’ 소비자로의진화다. 불황관리형 소비자는 2009년 제일기획 「불황기 소비자 유형 보고서」에 제시돼있는 △불황주시형 △불황동조형 △불황복종형 △불황자존형 △불황무시형 5가지 유형에 속하기보다 각 유형의 전략을 때에 맞게 선택하거나 섞어서 구사하는 소비자를 의미한다. 경제 불황이 지속되고 금리 및 물가 상승률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쿠폰을 사용하거나 중고거래를 이용해 소비를 줄여나갔다.

▲표는 「불황기 소비자 유형 보고서」에 제시돼있는 5가지 유형을 정리한 표이다.
▲표는 「불황기 소비자 유형 보고서」에 제시돼있는 5가지 유형을 정리한 표이다.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쿠폰 관련 앱으로는 ‘니콘내콘’이 있다. 니콘내콘에서는 카페 · 디저트 △치킨 △패스트푸드 △여행 · 숙박 △편의점 · 마트 △영화 · 엔터 △상품권 △패션 · 뷰티 △주유 △백화점 등의 기프티콘을 시중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예전에 구매했지만 사용하지 않은 기프티콘을 직접 판매할 수 있다. 또한 판매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들은 더 낮은 금액으로 구매할 수 있어 청년층의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4일 기준, 원가 4,500원인 커피 기프티콘은 17% 할인된 가격인 3,750원에, 편의점 1천 원권 기프티콘은 8% 할인된 920원의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사진은 기프티콘 플리마켓 앱인 ‘니콘내콘’의 홈 화면 캡처본이다.(출처/ 니콘내콘)
▲사진은 기프티콘 플리마켓 앱인 ‘니콘내콘’의 홈 화면 캡처본이다.(출처/ 니콘내콘)

② 1인 가구 증가
물가상승 이전에도 생활 환경상 대용량 구매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던 1인 가구들은 물가상승이 겹치면서 대용량으로 포장된 상품을 구매하기 힘들어졌다. 이에 소비를 줄이면서도 구매하고 싶은 만큼만 구매할 수 있는 △소용량 · 소포장 △조각내기 △공동구매 제품을 활발히 소비하기 시작했다.
소용량 · 소포장 제품으로는 ‘편의점 장보기’가 인기다. 편의점 ‘CU’에서는 1인 가구들을 공략한 제품이 많다. 모둠쌈, 양배추, 감자 등 채소들을 1~2끼 양으로 작게 소분한 ‘싱싱생생’ 시리즈가 대표적이며 이외에도 집에서 식사하는 1인 가구를 겨냥해 출시한 ‘반찬한끼’ 시리즈, 그리고 1인용으로 조절된 데일리 와인도 판매 중에 있다. 배달앱인 ‘쿠팡이츠’와 ‘배달의 민족’에서는 각각 ‘친구 모아 함께 주문’과 ‘함께 주문’ 기능을 도입해 여러 명이 같이 주문할 수 있게 했다. 해당 기능을 통해 혼자서도 적은 배달비로 원하는 상품을 주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대표적인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 티빙 등은 동시에 여러 명이 접속할 수 있는 요금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이용하면 하나의 계정으로 요금을 나누어내 훨씬 적은 금액으로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다. 티빙의 경우 동시 시청이 4명까지 가능한 프리미엄 이용권을 함께 사용하면 한 사람당 3,475원의 가격으로 매달 해당 플랫폼을 이용할 수 있다.

▲사진은 배달의 민족의 ‘함께 주문’ 기능을 활용하는 화면 캡처본이다.(출처/ 배달의 민족)
▲사진은 배달의 민족의 ‘함께 주문’ 기능을 활용하는 화면 캡처본이다.(출처/ 배달의 민족)

일시적인 소비 생활? NO!
전문가들은 경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청년층의 소비가 줄어드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며 경기 불황이 끝나더라도 체리슈머가 계속해서 유지되거나, 그 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소품량 · 소용량 제품의 주 고객층인 1인 가구에서는 체리슈머가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최지혜 연구위원은 『중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체리슈머는 불황기 소비 특징이기도 하지만 늘어나는 1인 가구도 중요한 원인”이라며 “경제가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소용량 · 소포장 구매 트렌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현세대의 절약이 기성세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조건적인 절약을 지향해 욕구를 절제하기보다 한정된 자원으로 자신의 욕구를 효율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는 점이다. 짠테크에서의 ‘짜다’와 체리슈머의 어원인 ‘체리피커’처럼 단순히 부정적인 의미로 소비를 줄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단어들에서 새롭게 탄생한 짠테크와 체리슈머로서의 합리적이고 현명한 지출을 도모한다.
더 이상 2030세대를 플렉스의 대표주자라고 볼 수 없다. 소비를 줄이는 것이 청년층만의 변화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고물가와 고금리가 지속되고 1인 가구로 거듭나는 청년층이 많은 상황에서 청년층이 새로운 소비의 길을 개척하는 선두주자인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단순히 소비를 줄여나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합리적이고 현명한 소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더욱 주목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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