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식성 인문학자의 세상읽기] ChatGPT에 MZ 끼얹기 〈1111호(개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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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성 인문학자의 세상읽기] ChatGPT에 MZ 끼얹기 〈1111호(개강호)〉
  • 강부원 인문학협동조합원
  • 승인 2023.02.27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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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원 인문학협동조합원steel-apin@hanmail.net
강부원 인문학협동조합원
steel-apin@hanmail.net

대학교 개강과 함께 단연 화제는 ChatGPT이다. 원하는 내용을 주문하면 뚝딱하고 글 한 편이 만들어지는 세상이 됐으니 그럴 만하다. 똑같이 명령해도 시차를 두면 다른 글이 나온다. 키워드를 넣어 검색하고 정보를 찾아 직접 글을 조립해야 했던 시대는 이제 과거의 이야기가 됐다. 누군가의 것을 몰래 가져다 베끼는 표절과도 달라 윤리적인 죄책감도 적다. 인공 지능(AI)이 실시간으로 새롭게 만들어낸 글이기 때문에 왠지 오리지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혁명이다. 이제 리포트에서 해방됐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많다. 신입생도 AI와 함께라면 새로 시작하는 대학 생활이 두렵지 않다. 과제를 평가해야 하는 교수들도 이전의 '표절의 시대'는 한 차원 다른 세계의 등장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인공지능이 쓴 글을 적발하는 프로그램이 나왔다고 하는데, 곧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속이는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제 글쓰기 형태의 리포트가 아니라 퀴즈나 다른 방식의 평가 방법을 모색하겠다는 교수들이 늘고 있는 이유다. 무언가 전혀 새로운 형식의 과제가 등장할지도 모를 일 이다.

교수들은 환경이 달라지면 새로 준비해야 할 거리가 늘어난다. 코로나가 갑작스럽게 유행하던 시기 온라인 강의가 익숙지 않았던 교수들이 고군분투했던 기억을 상기해보자. 그런 일을 겪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또 급진적 변화가 일어나니 교수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나올 법하다. 발전된 글쓰기 기술의 출현이 누군가에게는 편리한 도구로 인지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상을 습격하는 파괴 행위로 느껴지기도 한다.

다시 화살은 MZ에게 꽂힌다. 윤리적인 고민 없이 새로 등장한 기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써먹기에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거대한 IT 플랫폼 공룡들이 쳐놓은 덫에 포획된 MZ세대들이 몽매하단 시각이다. 철학적 성찰이니, 인문학적 반성이니 하는 말은 그저 양념이다. 반복되는 "요즘 세대는 어쩌고저쩌고" 타령이다.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기술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MZ세대의 발 빠른 적응력이 두려운 까닭이다.

AI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새로운 글쓰기 의 시대가 시작된 것을 ‘MZ세대 탓하기’로 만 푸념을 늘어놓으면 해결책이 나올 리 없다. ChatGPT가 아직 만능일 리 없고, 모든 학생들이 무조건 그것만 믿고 대학 생활을 영위하는 건 아닐 게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이 우리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의 삶 전체를 온통 장악하지는 않는다. ChatGPT는 대학 생활의 일부를 구성하는 글쓰기, 또 그것을 수행하는 하나의 기술적 방편이자 편리한 도구일 뿐이다.

ChatGPT는 글쓰기에 있어 일종의 참조이자, 하나의 모델이다. 더욱 인간다운, 혹은 인공 지능이 선뵈는 글쓰기와는 사뭇 다른 인간만의 글쓰기는 계속 이어질 테다. 인간이 알파고에 바둑을 이기지 못한다고 해도 바둑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 이치다. ChatGPT와 인간 중에 누가 더 뛰어나고, 잘 쓴 글인지를 따질 게 아니다. ChatGPT의 정보력, 창의력, 조직력과는 다른 인간만의 섬세한 특징과 개성을 발휘하는 글쓰기를 발명하고 생산해 낼 때이다.

ChatGPT는 물론 인터넷도 없었던 지난 세기 학술사회에 오히려 지금보다 표절 문제가 심각했다. 약탈하듯 서로를 베끼고, 외국의 것을 남몰래 들여와 통째로 번역해 제 것으로 만드는 일이 난무했다. 사명감을 가지고 표절해 오던 그 시절 유명 학자들의 이름을 굳이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기술적으로 베끼기 쉬운 환경이 되니 오히려 표절의 문제가 공론화됐고, 누구나 쉽게 비교해보고 찾아볼 수 있으니 글쓰기의 윤리성이 더욱 강화됐다.

ChatGPT 때문에 표절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인간의 글쓰기가 더 이상 의미 없어지는 게 아니다. ChatGPT 시대가 본격화되면 그에 따른 윤리 기준이 마련되고, 또 다른 글쓰기 문화가 생겨날 것이다. ChatGPT와 함께 살아가며 새로운 글쓰기 시대를 맞이할 채비를 해야 할 때이다. ChatGPT 때문에 지금 당장 '멘붕'이 와도 더 이상 'MZ 끼얹기'는 그만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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