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시끌벅적한 골목 사이 자리 잡은 조용한 카페에서 뮤지컬 배우 강혜인을 인터뷰했다. 그날 인터뷰에서는 ‘기자’라기보다는 ‘후배’로서 대화를 나눴다. 그렇기에 인터뷰였지만 필자에게는 스스로의 삶을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강혜인 배우는 현재 잠시 쉬어가는 과정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본인은 이 일을 오래 해야 하는데 이렇게 끊임없이 달리면 좋아하는 일이 힘들어질까 봐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작품을 하면서 늘 본인의 삶을 돌아본다고 했다. 이어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이라 했다. 뮤지컬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은 인간의 깊은 내면, 철학적인 의미 등을 내포하기에 어쩌면 배우라는 직업은 평생 삶을 돌아보는 과정일 것이다.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어렵다. 아마 평생 못 찾을지도 모른다. 정체성은 찾기 어렵고, 이걸로 힘들 바에는 이 여러 개의 정체성을 이용하여 이득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필자는 배우라는 직업을 꿈꿔 본 적도 있다. 극 중에서 연기할 때는 적어도 내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은 자신의 페르소나를 이용하는 일이다. 그런데 배우의 공연 경험을 들어보니 오히려 이 페르소나를 매일 연기하는 일은 고통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연기를 하면서 가면 속 내 민낯을 직면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자기 민낯을 보는 경험은 생각보다 괴롭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배우라는 직업은 이 아이러니를 뚜렷하게 경험하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괴로운데 행복한 연기를 한다면, 내 괴로운 감정은 내 안에서 더욱 부각될 것이다. 연기에 대한 회의감이 들지도 모른다.
이러한 측면에서 배우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더 대단하다. 연기하는 나 자신, 내가 연기하는 작품, 내가 서 있는 무대 혹은 카메라 앞에서 페르소나를 이용하면서도 나의 뚜렷한 정체성을 경험한다. 그래서 강혜인 배우도 자신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한 것 아닐까. 그리고 배우가 아닌 우리도 사회라는 무대 앞에서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어떠한 경계선에서 고뇌한다. 이성과 감성, 현실과 미래, 남들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 우리는 이 경계선 위에서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평생 갖는 삶의 의미가 될 것이다. 과정은 괴롭지만 결국, 과정이 우리를 성장시킨다.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완성한다.
쉽게 말하자면, 삶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변수를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것이다. 삶이란 경계선 위에 서 있기에 우리는 정답을 알 수 없다. 그리고 누군가는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거, 그게 정답이야”라고.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이고 그 경계선에서 각자가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