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자에게 또다시 가해지는 폭력, ‘2차 피해’ 〈11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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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피해자에게 또다시 가해지는 폭력, ‘2차 피해’ 〈1106호〉
  • 김나영 기자
  • 승인 2022.09.26 2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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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피해에 가담하는 언론.. 개선 방향은?

지난 2017년, 미국에서 ‘당신은 무엇을 입고 있었나요?’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개최됐다. 전시회에서는 성 폭행 피해 여성 18명이 사건 발생 당시에 입었던 속옷 및 겉옷과 그들의 증언이 함께 게재됐다. 성폭행 피해자들이 받는 사회적 비난에 대응하기 위해 기획된 해당 전시회는 피해자들의 옷차림을 지적하며 사건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넘기는 사회적 여론을 반박하기에 충분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사건 피해자에게 사건 발생 당시의 옷차림을 지적하는 행위는 사건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넘기는 ‘2차 피해’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성폭력 범죄 사건의 2차 피해 유형에는 피해자를 향한 성적 발언과 피해자 신상털기 등도 포함되며 피해자에게 극심한 정신적 · 심리적 피해를 입히기에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문제다. 그런데 보도를 통해 사건을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수행하는 언론이 2차 피해에 가담해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매체의 발달로 정보 확산 속도가 급속히 빨라지며 성폭력 범죄의 2차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피해자 보호가 이뤄지지 않는 보도 유형은 2차 피해를 극대화하기 때문에 신속히 해결되어야 한다.

 

2차 피해란?

‘2차 피해’는 현재까지도 논란이 이어지는 연구 대상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규정된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성폭력 범죄 사건에서 2차 피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만큼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하 「여성폭력방지 법」)에서는 2차 피해의 개념을 정의하고 있다. 「여성 폭력방지법」 제3조제1항제3호에 따르면, 2차 피해란 여성폭력 피해자가 아래의 조항 중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르면 2차 피해는 ‘범죄 피해 이후부터 전 시기 동안 범죄사건 피해자에게 발생하는 정신적 고통이나 사회적 불이익’으로 정의된다. 

▲표는 2차 피해를 정의하고 있는 「여성폭력방지법」 제3조제1항제3호의 내용이다.
▲표는 2차 피해를 정의하고 있는 「여성폭력방지법」 제3조제1항제3호의 내용이다.

 

「여성폭력방지법」을 제외하면 법률상에서 2차 피해를 언급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없지만 판례에서 는 ‘이른바’를 붙여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성폭력 범죄 사건의 2차 피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만큼 다양한 개념적 정의는 존재한다. 그 예로 「성폭력 방지법」 제8조에서는 피해 시기를 ‘범죄 피해 이후 전 시기’, 가해의 주체를 ‘피해자를 고용하고 있는 자’, 피해 원인을 ‘성폭력’, 피해 결과는 ‘해고 등의 불이익’으로 지정해 2차 피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2차 피해의 개념을 드러내고 있다.

대중에게는 ‘2차 피해’보다 ‘2차 가해’가 친숙한 용어지만, ‘2차 가해’라고 하지 않고 ‘2차 피해’라고 하는 이유는 피해자가 받는 2차적 피해의 행위 주체가 범죄 사건의 가해자뿐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해자 외의 제3자인 △가족 △지인 △직장 동료 △언론 기관 △수사 기관 △재판 기관 등 광범위한 범위 내의 다양한 부류가 가하는 가해 행위 전부를 포함하기 위해서는 ‘2차 피해’가 적합하다. 즉, 2차 피해는 행위주체가 가해행위를 반복하는 현상이 아니라 행위객체가 다양한 부류의 피해를 반복해서 입는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성범죄에 가해지는 2차 피해

성폭력 범죄 사건 피해자의 2차 피해는 여러 범죄 사건에서 나타나지만, 성폭력 사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언론인권센터 조아라 활동가(이하 조 활동가)는 성폭력 사건에 가해지는 2차 피해의 심각성에 대해 “성폭력 사건에서 발생하는 2차 피해는 그 가능성만으로도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고 해당 사건에 대한 문제제기와 피해 고발을 하기 어렵게 만들며, 이로 인한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 역시 깊다”라고 밝혔다. 성범죄에 가해지는 2차 피해의 유형은 매체가 발달하며 점점 더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피해자를 향한 성적 발언과 피해자에게 범죄의 책임을 전가하는 ‘피해자다움’ 찾기가 가장 대표적이다.

지난 7월 15일에 발생한 ‘인하대 성폭력 · 사망 사건’(이하 인하대 사건)은 성폭력 범죄 사건의 2차 피해 의 전형을 보여준다. 인하대 사건은 피해자의 발견 상황을 중점으로 보도되어 사건의 전말보다 피해자 자체에 시선이 쏠렸다. 에브리타임에는 “내가 발견했어야 했는데, 최초 발견자 부럽다”, “피해자 인스타 아는 사람” 등의 반응이 올라왔으며, 지난 21일 기준 구글 검색 창에는 인하대 피해자의 관련 검색어로 △인하대 피해자 얼굴 △인하대 피해자 신상 △인하대 피해자 인스타 등이 뜨고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해당 사건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글도 올라왔다. 범행 발생 시각이 새벽이었고 남학생과 술을 마셨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피해자의 평소 행실을 의심하거나, 범죄를 유발했다는 억지 주장을 펼치는 등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진은 인하대 사건 보도 이후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온 반응이 다. (출처/ 서울경제)
▲사진은 인하대 사건 보도 이후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온 반응이 다. (출처/ 서울경제)

언론, 2차 피해에 가담하다

인하대 사건 보도는 언론의 2차 피해를 보여주는 전형이기도 하다. 언론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성폭력 범죄사건을 보도해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유발한다. 해당 사건 보도 제목들은 인하대 사건 피해자가 발견된 당시 상황을 중점으로 하여 대부분의 기사 제목에 ‘나체로’, ‘알몸으로’라는 표현을 포함했다. 인하대 사건처럼 범죄 상황을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범죄사실조차 명확하게 적시하지 않고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범죄 상황만을 제목에 묘사한 기사도 존재한다. 지난달 23일 발생한 성추행 사건 보도에서는 ‘추행’이라고 범죄사실을 명확하게 적시한 기사도 존재했지만, 범죄 상황을 자극적으로 묘사한 기사가 주를 이뤄 2차 피해의 여지를 남겼다. 이처럼 언론은 성범죄 보도 기사 제목에 ‘더듬더듬’, ‘몹쓸짓’, ‘손버릇 나쁜’이라는 표현을 기재함으로써 범죄 사실이 아니라 범죄 상황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고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집중하게 한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박진솔 활동가(이하 박 활동가)는 언론의 2차 피해가 지속되는 이유에 대해 “언론인 스스로 성범죄 보도 관련 요강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 언론인들은 언론인이 되기 위해 이른바 ‘언론고시’를 준비하지만 언론 고시에 각종 보도 가이드라인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 다고 가이드라인 교육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혔다.

또한, 잘못된 언론환경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먼저 박 활동가는 “우리나라 언론환경은 정확성보다는 신속성을 중시하며 잘못된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기사의 문제점을 돌아볼 시간조차 제대로 주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조 활동가는 “더 많은 기사를 내기 위해서는 취재 및 작성 시간이 짧아질 수밖에 없는 등 언론사의 운영 구조와도 연결되어 있다. 이 때문에 더욱 개선이 쉽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언론의 구조적 쇄신 역시 수반되어야 한다”라며 언론 환경을 비판했다.

 

언론의 2차 피해, 권고 사항 존재하나?

성범죄 관련 보도 가이드라인은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지속적으로 개정되는 등 언론의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움직임이 꾸준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 △한국기자협회 △여성가족부가 제시하는 보도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에서는 신문윤리강령을 시행하기 위해 ‘신문윤리실천요강’을 채택했다. 신문윤리 실천요강 제3조제6항에서는 “범죄 · 폭력 · 동물학대 등 위법적이거나 비윤리적 행위를 보도할 때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저속하게 다뤄서도 안 된다”라는 조항이 존재한다. 해당 조항은 언론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채택한 것으로, 언론의 2차 피해가 지적될 때마다 언급되는 대표적인 기준이다. 위에서 언급한 ‘나체로’, ‘알몸으로’ 그리고 ‘더듬더듬’이라는 표현은 해당 보도 가이드라인에 위배되는 표현이다.

한국기자협회에서는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과 ‘성폭력 · 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을 함께 게시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12년 12월 12일에 제정한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에서는 언론이 범죄 사건을 보도하는 이유로 범죄 예방과 예방을 위한 사회정책적인 대책 마련이라는 공익적 목적달성을 꼽는다. 범죄사건 보도의 특성상 특정인의 인격권 등의 헌법상 기본권에 위반되는 보도로 다양한 인권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은 데, 그중에서도 성폭력 범죄 보도는 사건 특성상 피해자와 그 가족이 2차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신중히 다뤄야 함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성폭력 · 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에서는 성폭력 · 성희롱 사건 보도 시 기자가 가져야 할 태도와 지킬 의무를 제시하며 취재 시 유의사항 과 기사작성 및 보도 시 유의사항을 분 리해 기재했다. 이처럼 언론의 보도 기준이 마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끊임없이 2차 피해를 가하는 이유에 대해 조 활동가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성폭력 사건 보도를 개선하려는 시도들이 있고 관련 보도준칙들도 끊임없이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가이드라인에 머물고 있다 보니 언론사와 기자 본인의 의지에 기대는 부분이 많다”라고 전했다.

 

개선이 필요해

지난 7월 28일, 『머니투데이』에 「반성하며 다시 쓴, ‘인하대 성폭력 · 사망 사건’ 기사」라는 제목의 기사 가 올라왔다. 해당 기사는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2018년에 마련한 성폭력 · 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에 따라 2차 피해를 유발하는 피해 사실에 대한 자세한 보도를 금지하고 ‘피해자 책임’으로 인식되지 않게 유의하여 다시 작성됐다. 기사를 작성한 남형도 기자는 인하대 사건 보도를 향한 비판을 보고 자신의 지난 기자 생활을 돌아보게 됐다면서 보도 기준을 인식한 계기가 된 만큼 앞으로의 보도에 주의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이 나온 지 약 10년이 지났지만, 인하대 사건 이후 발생한 성폭력 범죄 사건에서도 언론의 2차 피해가 지속된 사실을 미루어 봤을 때, 개선의 움직임이 명확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댓글창을 폐쇄한 『한겨레』 와 자신의 기사를 돌아보고 고쳐 쓴 남형도 기자의 경우처럼, 언론이 스스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개선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박 활동가는 언론의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개선 방안으로 3가지를 제시했다. 첫 번째로는 언론인이라면 성범죄 보도 관련 요강을 포함한 언론 가이드라인을 기초부터 교육받아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언론이 잘못된 언론을 꾸짖는 보도가 가감없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신문윤리위원회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잘못된 언론에 강력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2차 피해 유형의 보도를 내보낸 기자 개인을 처벌하기보다 언론사에 대한 처벌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박 활동가는 “기자 개인에 대한 처벌보다 잘못된 보도를 배포한 언론사를 처벌해야 언론사 스스로 잘못된 보도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주의할 수 있다. 현존하는 윤리위원회와 심의위원회만 잘 작동해도 언론사에 타격을 주는 처벌이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전했다.

 

피해자의 옷차림도, 피해자의 평소 행실도 성폭력 범죄 사건을 유발한 원인이 될 수 없다. 언론은 피해자가 두려워하는 2차 피해의 불씨를 지피는 역할이 아니라, 어떤 범죄 사실이 있었는지, 사건 이후 피해의 회복이나 치유 과정, 제도의 개선 노력 등을 지속적으로 보도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우리 사회와 언론 모두 성폭력 범죄 사건의 2차 피해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범죄 사건을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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