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의 어떤 시선] 폭죽, 놀이일까 폭력일까 〈11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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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펭귄의 어떤 시선] 폭죽, 놀이일까 폭력일까 〈1105호〉
  • 남주원 뉴스펭귄 기자
  • 승인 2022.09.05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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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원 뉴스펭귄 기자 serennam@newspenguin.com
남주원 뉴스펭귄 기자 serennam@newspenguin.com

나의 이십 대 시절, 아름다운 기억 너머 저편에는 늘 불꽃놀이가 있었다. 풋풋하고 어렸던 그때의 나는 한강공원에서, 네가 데려간 어느 비밀 옥상에서, 부산 앞바다에서 그렇게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폭죽이 터지는 그 순간,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온갖 현실 문제들은 내게서 사라졌다. 쏘아 올린 불꽃에 늘 소원 비슷한 무언가를 빌었던 것도 같다.

그땐 결코 알지 못했다. 나에겐 애틋한 추억이 다른 존재에게는 끔찍한 상흔으로 남았을 것이란 사실을. 인간에겐 놀이요, 지구에겐 폭력인 ‘폭죽의 두 얼굴’을 참 늦게도 알게 됐다. 행복이고 희망이었던 불꽃놀이는 동시에 죽음이기도 했다.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이 이름을 남기듯, 불꽃놀이는 폭죽의 잔해를 고스란히 남긴다. 불꽃은 사라져도 폭죽은 무기와 쓰레기로 남아 땅과 바다, 그곳에 사는 야생동물의 삶을 어그러뜨린다.

비극은 새해 첫날부터 시작된다. 한 해를 매듭짓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가장 기념하는 날 중 하루인 만큼 비극의 규모는 더욱 커진다. 실제로 지난해 1월 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새 수백 마리가 떼죽음을 맞은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여론에는 새들이 새해맞이 불꽃놀이로 인해 죽었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큰 소음에 약한 새들이 공포를 느낀 나머지 서로 부딪히거나 유리창과 전깃줄에 충돌했을 수 있으며, 심장마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하룻밤 사이 길바닥에 흩어진 채 발견된 새 사체 대부분은 계절에 따라 북유럽부터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일부 지역까지 오가는 유럽찌르레기로 밝혀졌다. 인간에겐 축제, 새에겐 참사의 현장이었다.

폭죽은 폭탄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일부 인도 주민들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야생동물 접근을 막기 위해 동물이 좋아하는 음식에 폭죽을 넣어 놓는다. 마을 근처에 일명 ‘음식 폭탄’을 설치해 놓는 것이다. 동물이 음식 폭탄을 먹이로 착각하고 무는 순간 안에 있던 폭죽이 터진다. 2020년 5월 인도에서 임신한 코끼리가 파인애플 폭탄을 물었다가 입과 턱, 코, 혀를 크게 다쳐 죽고 말았다. 코끼리는 상처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하루 종일 강물에 몸을 담그고만 있었다. 너무 아픈 나머지 상처를 찬물로 식히거나 벌레가 꼬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임신 3개월 차였던 이 코끼리는 결국 물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뱃속에 있던 태아도 어미와 함께 죽었다.

폭죽은 대표적인 해양 쓰레기 품목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국내 해양보호단체 ‘시셰퍼드 코리아’(이하 단체)가 최근 인천 을왕리해수욕장에서 벌인 해변청소 활동 결과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고작 2시간 반 남짓 사이 수거한 폭죽탄피는 총 5,476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 불꽃놀이 이후 현장에는 무수한 플라스틱 파편과 유해 폐기물이 발견된다.

단체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이름 붙이기에 폭죽놀이는 너무도 파괴적이다. 폭죽을 쏠 때 모래밭에 떨어지는 플라스틱 탄피는 장기적으로 해양생태계를 파괴한다”라고 경고했다. 바다로 흘러간 폭죽 탄피는 해양생물의 식생활을 교란하고, 영양실조와 소화불량 등을 야기해 죽음으로 이끈다. 결국에는 미세 플라스틱으로 쪼개져 인간에게 되돌아온다.

끝이 아니다. 미국 소방협회에 따르면 미국 독립기념일인 매년 7월 4일쯤이면 불꽃놀이로 평균 1만 8,500건에 달하는 산불이 발생한다. 불꽃놀이에 쓰이는 많은 전문 장비가 중국에서 생산돼 운송되므로 이에 따른 탄소 배출량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불꽃놀이에서 발생하는 중금속과 유독성 화학물질 등 문제도 대두된다. 올봄 국내 한 아이돌 그룹의 노래 중 “꽃가루를 날려, 폭죽을 더 크게 터트려”라는 가사 파트가 안무와 함께 히트를 쳤었다. 하지만 폭죽은 이제 그만 터뜨려야 한다. 밤하늘에 쏘아 올린 불꽃이 크고 화려할수록 지구에 새겨지는 상처는 깊어진다. 우리가 폭죽놀이를 즐기는 사이 지구의 숨은 점점 거칠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마지막 순서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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