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용준의 허허실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지성을 위협하는 자유에 관하여 〈11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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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용준의 허허실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지성을 위협하는 자유에 관하여 〈1102호〉
  • 민용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5.16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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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용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mingun@nate.com
민용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mingun@nate.com

‘SNS는 인생의 낭비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장으로 꼽히는 알렉스 퍼거슨이 발음했다고 알려진 이 말이 실제로 발언한 적이 없는 것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퍼거슨은 실제로 이런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감독 재임 시절 기자회견장에서 팀의 에이스였던 웨인루니가 트위터 상에서 어느 팬과 설전을 벌인 것과 관련한 질문을 받았고, 이에 답변했던 멘트의 일부였다. 보다 정확하게는 “차라리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십시오. 진심으로, 그것은 시간 낭비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여기서 지칭하는 그것이 바로 SNS였다.

세상은 늘 아이러니하다. SNS에 중독된 세태를 비판하는 퍼거슨의 언어는 SNS를 돌고 돌며 그 세태를 조롱하는 밈이 됐다니 씹던 껌을 뱉고 기함을 토하는 퍼거슨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SNS는 인생의 낭비일지 몰라도 때때로 세상에는 유용한 무엇이 될 때도 있다. 퍼거슨의 말처럼 이 시간 낭비에 몰두하는 어떤 이들은 SNS를 뜻밖의 고백의 터전으로 삼을 때가 있다. 자신의 잘못된 인식이나 그릇된 사고를 일찍이 표명하고 기록함으로써 만인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인사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자기 고백을 박제해버리는 것이다.

‘나는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신병의 일종으로 생각한다.’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으로 내정된 김성회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남겼다는 문장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 그가 의심할 여지없이 부적격한 인사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이런 인식을 적절히 조절하면 자신의 잘못된 인식과 그릇된 사고를 무시하고 중용할까 겁이 났는지 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보상금을 ‘밀린 화대’에 빗대는 댓글까지 달며 언쟁을 벌임으로써 자신의 역사관마저 얼마나 엉망인지 열렬히 증명한 바 있다.

그러니까 정말 의아한 일이다. 여러모로 ‘종교다문화비서관’이라는 직책을 맡기에는 심각하게 부족한 인사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낸 이를 애써 발굴해 임명한 이번 정부의 의도를 모르겠다. 어쩌면 일찍이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애쓴 김성회의 노력을 긍휼히 여겨 이를 보다 널리 알리고자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심지어 종교다문화비서관이라는 직책에 임명한 것이 아닐까 그 높은 뜻을 추측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지난 대선 때부터 공정과 상식을 끊임없이 강조해온 현 정부의 선택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있겠는가.

단언컨대, 자신이 속한 집단이 타 집단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이들은 실로 위험한 자들이다. 그야말로 인류가 시간을 들여 애써 증명해온 역사를 부정하는 반문명적인 족속이다. 다 떠나서 동성애자가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는것은 설명해야 하는 문제도 아니다. 그건 마치 마트로 장을 보러 간다는 옆집 사람을 치료해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아침에 출근하는 동네 사람을 붙잡고 병원에 끌고 가려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지극히 정상적인 삶을 치료의 대상으로 본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동성애라는 것이 치료의 대상이라는 주장이 진실로 수렴하려면 동성애가 누군가의 삶에 피해를 입히는 질병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질병과 치료는 과학의 영역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거의 모든 종의 동물에게서 동성애 성향이 10% 가까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혹시라도 소설 쓰지 말라고 하는 작자가 있을까 싶어서 말하건대 <유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한 바 있는 최재천 박사의 유튜브만 찾아봐도 알 수 있는 이야기다.

대통령실에서는 김성회 비서관에 대해 ‘조금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식 당일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렸다”라고 발언했다. 그리고 서른다섯 번에 걸쳐 ‘자유’를 발음했다. 그렇다면 김성회 비서관의 문제적 견해에 대한 대통령실의 신중함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는 반지성에 대한 자유를 존중하기 위한 것일까? 그 와중에 김성회는 SNS를 통해 해명을 빙자하며 여전히 문제적인 의식 수준을 셀프 폭로하는 살신성인의 수고를 이어가고 있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이제 그만 그가 인생 낭비를 멈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좋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지성의 주체가 누구인지 의심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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