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용준의 허허실실] 흑역사라도 괜찮아 〈1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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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용준의 허허실실] 흑역사라도 괜찮아 〈1101호〉
  • 민용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5.02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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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용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mingun@nate.com
민용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mingun@nate.com

‘추억은 가슴에 묻고 지나간 버스에는 미련을 버려’라고 했건만 싸이월드가 돌아왔다. 청천벽력이었다. 차단하고 싶은 흑역사의 보고가 죄다 복원될 것이라는 소식 앞에서 손톱을 깨물고 있는 이가 나만은 아닐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래서 싸이월드가 열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내 미니홈피를 찾아 비공개로 전환했다. 나의 흑역사는 내 거니까. 그렇게 흑역사를 봉인하는데 성공한 뒤 가벼운 마음으로 나의 과거를 둘러봤다. 그러다가 사진첩의 빈 폴더 하나를 발견했고, 잠시 기분이 이상했다.

내 미니홈피 업로드는 2011년경에 멈췄는데 아마 그 이후에는 주로 페이스북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페이스북 계정을 처음 개설한 건 2010년 11월에 개봉한 데이비드 핀처의 <소셜 네트워크>를 본 직후였다. <소셜 네트워크>는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의 페이스북 창업기를 그린 영화다. 그 무렵에는 국내에서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처음 접속했을 때에는 ‘이게 뭥미?’하는 마음으로 계정만 팠던 것 같다. 하지만 2012년에 싸이월드를 사용한 흔적이 일절 없는 것으로 보아 2011년이 싸이월드를 사용한 마지막 해였던 것이다. 덕분에 지난 10년간 SNS 생태계에 정말 굉장한 변화가 밀어닥쳤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10여 년 만에 접속한 미니홈피 사진첩을 보니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많았다. 오늘까지 흘러오지 못한 수많은 인연들이 사진첩 곳곳에 삼각주를 이루듯 퇴적한 모습을 보며 묘한 애수를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전 여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전용으로 만들었던 폴더를 발견했다. ‘Me and You and Everyone’이라는 폴더명은 아마 미란다 줄라이 감독의 영화 <미앤 유 앤 에브리원>에서 빌려온 것 같은데 영화와 연관은 없고 그냥 그 어감이 좋아서 빌려온 것 같다. 아마 사진은 예전에 지웠는지 폴더는 비어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차피 그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일 텐데 왜 지웠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마 그래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기도 하겠지만 그때는 그래야 했고, 지금은 그래야했던 그때를 그저 기억하는 것이다.

나이 서른이 어색했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나에게 40대란 생경해서 올려다볼 겨를도 없었던 어떤 시간이었을 텐데 막상 그 시간에 도달하고 보니 지나온 시절이 되레 생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절을 반갑게 돌아볼 수 있는 지금의 삶이 어제를 귀하게 여길 수 있는 시간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참 귀한 일이다. 어제의 내가 내일의 나를 다짐하도록 손을 내미는 악수처럼 다가오는 오늘이 있다는 건 지금을 살아가는 나에게는 분명 값진 선물인 것이다.

만에 하나 지금의 내가 누군가를 마주하기조차 민망한 삶을 살고 있다면 내 미니홈피 속의 나를 보는 심정은 지금 같지 않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나의 과거를 흑역사라고 스스로 놀릴 수 있는 건 다행히도 지금의 시간이 적어도 흑역사는 아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과거의 인연과 연인 모두를 추억처럼 떠올릴 수 있는 건 지금의 인연과 연인 모두를 언젠가 추억으로 삼을 수 있으리라는 낭만을 부추기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삶이란 거창한 성취와 거대한 상찬을 통해 분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의 감각을 온전히 느끼고 그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는 안도감 속에서 보다 선명해지는 것이다. 지금의 나보다 젊은 10여 년 전의 나를 보는 지금의 나를 보는 10년 후의 내가 있다면 부디 그 모든 얼굴이 반가운 오늘을 사는 나였으면 좋겠다. 만에 하나 10년 뒤의 내가 보는 10년 전의 나, 그러니까 오늘의 내 모습이 그때에는 흑역사일지라도 그 흑역사를 보고 낄낄거릴 수 있는 내가 10년 뒤에 존재하길 바란다.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릴 수 있겠지만, 그때도, 지금도 그럭저럭 제 삶을 살았고, 살고 있길 바란다. 어제의 나로 오늘의 나를 연민하지도, 오늘의 나로 어제의 나를 그리워하지도, 오늘의 나로 내일의 나를 저버리지도 않을 수 있도록. 매 순간 오늘을 사는 나로서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지금은 내일일 그날의 나도 모두 나라는 사람으로서 온전하게 이어지는 삶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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