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캐스터 허형범(정외 06) 동문을 만나다 〈10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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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캐스터 허형범(정외 06) 동문을 만나다 〈1099호〉
  • 김나영 수습기자 / 송민석 수습기자
  • 승인 2022.03.28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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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속 시원하게 뚫어주는 샤우팅

“말씀드리는 순간 담장을 넘어갑니다~!!” 프로야구 중계의 묘미는 타자가 친 공이 담장을 넘어갈 때의 짜릿함이 아닐까. 스포츠 캐스터를 자신의 꿈이자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구나’라는 믿음을 가지게 해준 직업으로 여기는 KNN(부산 · 경남 SBS) 허형범 캐스터를 만나봤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꿈을 키우다 

Q.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거창한 다짐보다는 막연한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시절에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됐고, 정치학을 전공해서 그쪽 분야로 진로를 잡으면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죠.

 

Q. 대학생으로 보낸 시간이 가치관이나 삶에 있어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A. 학과 수업에서 배운 것 못지않게, 학과 사람들과 교류하고 토론하면서 사회관을 쌓을 수 있었어요. 특히, 우리 대학 정치외교학과 안에 축구 소모임이 있어요. ‘요동을 정벌하자’해서 이름이 ‘요동정벌’인데요. 제가 거기서 회장을 4~5년 정도 오래 했는데, 그러면서 스포츠에 애착을 갖기 시작했어요.

 

Q. 스포츠 캐스터라는 꿈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 제가 2006년에 입학해서 남들보다 늦게 졸업했어요. 그 이유가 4학년 때까지도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서거든요. 막연하게 ‘대기업에 들어가야지’라는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혼자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공책에 쭉 써 내려갔어요. 좋아하는 걸 생각해 보니 스포츠와 말하는 것이었고, 스포츠 중계를 들으며 따라 하는 것도 좋더라고요. 잘하는 것은 스포츠의 역사, 규칙에 대해 잘 알고 말도 재밌게 하는 거였어요. 또 나름대로 얼굴도 괜찮은 것 같고요. 그런 것들을 종합해 보니까 스포츠 캐스터라는 직업이 나왔어요. 이후에 스포츠 캐스터를 하려면 아나운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때부터 아나운서 준비를 시작했죠.

 

Q. 아나운서를 준비하면서 좌절감이 들거나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으신가요?
A. 매일매일 포기하고 싶었죠. 거의 매일 좌절했던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시작한 분야였는데 막상 뛰어들고 보니까 저보다 잘나고 멋진 친구들, 이미 경력을 많이 쌓은 친구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하루하루 울면서 일어나서, 울면서 잠들고, 독기로 살았던 것 같아요.

 

Q.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A. 좌우명이 있어요. 미국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이 한 말인데 “나는 실패하는 건 인정할 수 있다. 왜냐면 인간은 누구나 실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이 글을 특수 제작해서 제 연희동 원룸 방에 붙여놓고 매일 읽었어요. 힘들 때마다 “야 허형범, 네가 실패는 할지언정 포기하지 마라. 포기하면 정말 너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못 하는 인간이다(부산 사투리 억양으로)”라는 주문과 함께요. 이런 주문 덕분에 버틸 수 있었어요.

 


부산 · 경남 야구팬들과 호흡하는 캐스터가 되다

Q. 대학교 시절에는 축구를 즐겼는데, 캐스터 전담 종목으로 야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제 고향이 부산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한창 어렸을 때부터 지금 중계하는 KNN의 야구 중계를 듣고 자랐어요. 그렇게 야구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라는 팀을 사랑하게 됐죠. 또 우연히 사직구장 근처에 있는 사직고등학교를 나왔고요. 그게 이어져서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야구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Q. 2015년 자이언츠 TV에 합격해 첫 중계를 마쳤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A. 그때는 솔직히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자신감은 있었지만 나 같이 모자란 사람이 이런 중요한 일을 맡아도 되나 하는 걱정이 들었거든요. 그렇지만 “너 잘될 거야”라고 열심히 저를 응원해 주셨던 분들께 좋은 결과를 보여준 것 같아 기분이 좋았고 정말 행복했습니다.

 

Q. 전 경기 생방송으로 준비하면서 제일 신경 써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A. 아무래도 청취자들의 99% 이상이 롯데 팬분들이다 보니 편파적인 중계를 하는 것이 특징이에요. 그래서 롯데 팬분들이 제 중계를 들으면서 ‘어떻게 더 재밌게 야구를 즐기실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롯데가 잘할 때 같이 환호하고, 또 못할 때 같이 아쉬움을 나눌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을 가장 신경 쓰는 것 같아요.

 

Q. 그간 중계하신 것들을 보면, 시원하게 샤우팅을 지르다가도 점수를 못 내면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진하게 묻어나는데요. 그런 것들이 전부 청취자들과의 호흡 또는 유대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신 거군요?
A. 네.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물론 캐스터로서 기본적인 원칙은 중립을 지켜야 하지만, 지금 저희 채널의 색깔로 봤을 때 팬분들이 원하시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전문성은 있어야겠지만, 저는 부산에서 나고 자란 뼛속까지 롯데 팬이니까 더 진정성 있게 전달해 드리는 것에 초점을 맞췄죠.

 

Q. 가장 아쉬웠던 순간이나 짜릿했던 순간이 있을까요?
A. 지금이요. 후배들에게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지금. 누군가에게 조명을 받는 것도 좋지만,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짜릿하네요. 덧붙이자면, 저는 성격이 단순해서 이기면 항상 짜릿하고, 지면 항상 아쉬운 것 같아요. 팬분들이 ‘허형범 목소리만 들어도 롯데 점수를 알 수 있다. 환호하면 이기고 있는 것, 풀 죽어 있으면 지고 있는 것’이라고 많이들 말씀해 주시죠. 사실 그런 부분을 좀 더 전문적으로 풀어야 하는데, 점차 해결해 나가야 할 숙제인 것 같습니다.

 

Q. KNN에서 라디오 중계로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TV와 달리 라디오에서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A. 일단 라디오 중계를 할 때는 ‘상황 묘사’가 가장 중요해요. 현장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게끔 하는 거죠. 예를 들어, 그냥 “스트라이크”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어느 지점, 어떤 구질에 어떻게 스트라이크가 됐는지, 꽉 찬 볼인지 완벽하게 스트라이크인지, 애매한 볼인지 하나하나 상세하게 설명해야 하고요. 또, 스윙을 크게 했는지 작게 했는지, 아니면 어설프게 나갔는지와 같이 작은 것 하나까지 자세히 설명해야 해요. 귀로 듣는 중계방송이기 때문에 상황 묘사를 할 때도 재밌는 예시를 들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사진은 중계석에서 방송하는 허 캐스터(좌)와 KNN 이광길 해설위원(우)이다.
▲사진은 중계석에서 방송하는 허 캐스터(좌)와 KNN 이광길 해설위원(우)이다.

Q. 일부 열성 팬들은 라디오(음성)는 KNN을, 화면은 타 스포츠 채널로 틀면서 동시에 즐긴다고 합니다. 편파방송이 예전만큼 인기가 있다고 보나요?
A. 미국에 40년 넘게 LA다저스 경기만 중계했던 빈 스컬리라는 오래된 해설위원도 있어요. 저는 2015년도 스포티비의 클럽 미디어 파트에 있을 때부터 야구 편파방송이 본격적으로 틀을 갖추고 시작했다고 생각하는데, 계속 그런 쪽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한다면 매 경기를 월드컵, 올림픽처럼 더 재밌게 즐기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허형범에게 야구란 어떤 존재인가요?
A. 야구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이 있는 스포츠예요. 아버지랑 매일 사직구장에 가서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야구도 보면서, 아버지와 저를 이어줬던 추억이 많이 깃든 매개체입니다. 또 세상을 많이 배우게끔 알려주는 선생님 같아요. 야구는 세상 사는 것과도 같아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고, 마찬가지로 인생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야구는 단순한 공놀이가 아니라 큰 의미를 지니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야구는 롯데죠. ‘롯데 자이언츠’. 이 한마디로 정리가 될 것 같네요.

 


넓혀가는 커리어, 그 중심엔 ‘말하기’가 있다

Q. 최근에는 스피치 학원도 차리셨습니다. ‘스피치’ 분야에 신경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사실 ‘스피치’는 우리 삶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은 답답하고 힘든 일이죠. 그래서 그런 쪽으로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께 도움을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고요. 사실 서울에는 스피치 관련 분야 교육이 굉장히 활성화돼 있는데, 아직 부산에서는 스피치라는 분야가 매우 생소하고 저변 확대가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부산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Q. ‘눈밭 위 발자국’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신다고요. 구단 채널 중계, 라디오 중계, 비수도권에 기반한 사업 등 남들이 하지 않은 길을 걸어오신 것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게 있을까요?
A. 자부심이라기보다는 그냥 자기 주문인 것 같아요. 우리가 정말 새하얀 눈밭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발자국이 많이 찍힌 곳으로 갈 수밖에 없잖아요. 그게 사람의 심리고요. 그런데, 저는 정치외교학과를 나와서 뜬금없이 스포츠 캐스터가 되더니, 스피치 학원을 내고, 또 마라탕 가게를 개업했어요. 남들의 생각과는 좀 다르게 살았죠. 사실 실패할까 두려웠지만 그러한 불안을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길을 걸으려고 할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존재가 돼 보자’라는 생각으로 바꿔나갔어요. 그러한 마음가짐을 표현한 말이 ‘눈밭 위 발자국’이에요.

 


허형범이 후배들에게 남기는 솔직한 조언

Q.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한 말씀해 주시겠어요?
A. 사회에 나와 보니까 학력보다 더 중요한 게 ‘맨 파워’더라고요.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얼마나 단단한 사람이고, 얼마나 책임감이 있고, 얼마나 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인내심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학벌보다도 말이죠. 후배 여러분들이 단단하게 자신을 붙잡고 자기가 이루려고 하는 꿈이 있다면 언제든 도전하면서 그런 주체적인 삶을 사셨으면 좋겠어요. ‘잭 웰치’라는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너의 인생을 통제해라. 아니면 남들이 통제하게 될 거다.” 여러분들도 자신의 인생을 통제할 수 있는 그런 분들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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