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인의 인문학 이야기] ‘서낭당’과 버들꽃 아가씨 〈10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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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인의 인문학 이야기] ‘서낭당’과 버들꽃 아가씨 〈1093호〉
  • 권상인 예술학 박사
  • 승인 2021.10.1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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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인 예술학 박사 sikuwn@ks.ac.kr
권상인 예술학 박사 sikuwn@ks.ac.kr

유년 시절 엄마와 손을 잡고 외가를 찾아가던 기억이 새삼 그리워진다. 가을 햇살이 뉘엿 뉘엿 서산에 걸릴 때 개울가에 도착해 엄마는 공깃돌 3개를 주워서 내게 주었다. 산모퉁이를 돌아 황톳길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거기엔 천년 묵은 고목이 하나 서 있었다. 그 나무에 둘러매진 새끼줄에 꿰어진 오색의 헝겊 조각들이 팔락이고 있었다. 엄마는 무어라 중얼거리며 내손안의 공깃돌 3개를 차례로 돌무덤 위에 던졌 다. 아! 그토록 스산하고 외경스럽던 그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서낭당’이란 무엇인가? BC 50년경 우리 조상들은 만주벌판에서 부족국가를 이루고 살고 있었는데 이때 하늘에 제사 지내는 곳이었다. 주로 풍년을 기원하고 질병과 전쟁, 길흉 등 그 부족의 무사고와 안녕을 기원하는 장소였다. 부족의 우두머리는 부족을 다스리는 일과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일을 겸하고 있었는데 이를 가리켜 당시에는 천왕(天王) · 천군(天君) · 천왕랑(天王郞) 등으로 호칭했다. 우리말로 바꾸면 모두 ‘하느님’이란 뜻이다.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장소가 흔히 산 위 혹은 산기슭이었음으로 산왕당, 선왕당 등으로 불렸는데 세월이 가면서 발음이 변해 일반적으로 서낭당이 되었다. 보다 세월이 흘러 서낭당은 민속신앙으로 일반화되었으므로 1960년대 나의 유년 시절엔 우리나라 시골 곳곳의 웬만한 마을에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BC 1세기경 만주의 광활한 벌판의 중심부 (장춘에서 남쪽으로 압록강 일대)와 한반도에 걸쳐 웅거했던 우리의 조상 예맥족들도 ‘서낭 당’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삼국사기』 동명성왕에 관한 기록에 '천제 (天帝)의 아들 해모수(解慕漱)'가 등장한다. 여기서 천제라는 말을 분석해보면 사실상 천왕 · 천군 · 천왕랑이며 예맥족의 부족장으로 부족의 안녕을 위하여 제사를 주관했던 존재였다. 즉 해모수의 아버지는 인간인 예맥족의 부족장 이었다.

동명성왕의 고구려 건국내용은 우리 민족의 여러 건국 이야기 가운데 가장 사실적으로 연대 · 지역 · 인물들이 묘사돼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의 건국역사 중 가장 역동적이며 로맨틱하게 구성돼있다. 동명성왕에 관한 내용을 종합해 편년체로 정리해보면, 해모수라는 예맥족 부족장이 나타나 북부여의 해부루 왕을 동부여로 쫓아냈다. 그곳에 해모수가 부족들을 이끌고 입성한 연대는 BC 60년이다.

그해 5월 동부여와 낙랑군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압록강 하류 북쪽에 순찰 왔던 해모수는 하백의 버들꽃, 원추리꽃, 갈대꽃이라는 이름의 세 딸을 만나게 된다. 그중 첫째 딸인 버들꽃 아가씨와 로맨틱한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사랑을 약속하고 헤어진다. 이후 해모수는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지상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몇 달 후 임신한 것을 알게 된 버들 아가씨는 해모수를 찾아 헤매던 중 백두산 남쪽 압록강의 한 지류인 강변에서 우연히 동부여의 금와왕을 만난다. 미모가 출중했던 버들아 가씨는 금와왕의 궁전에 초대돼 왕비가 되었고, BC 59년 해모수의 아들인 주몽을 출산했다.

상고시대 우리 민족의 건국역사를 고찰하면 사실적 내용이 모두 삭제되고 허황한 내용으로만 꾸며져 있으며 중국에 대한 사대사상에 함몰되어 그 연대가 매우 과장돼있다. 이를테면 고조선의 건국연대가 BC 2,000년경인 중국의 요(堯)임금 또는 순(舜)임금 시대라거나 BC 1,000년에 개국한 주(周)나라의 무왕이 기자 (箕子)라는 사람을 조선에 파견해 기자조선을 세웠다는 황당한 기록들뿐이다.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 된 이후부터는 불교적 교리에 매몰돼 버렸다. 국교가 불교였던 고려시대에 기록된 『삼국유사』 고조선 조(條)에는 하느님인 환인을 불교적 용어인 제석천(인도 말로 인드라)으로 기록하면서 우리의 토속신 앙인 서낭당의 소박한 종교개념의 본질을 불교의 개념으로 탈바꿈시켰다.

저 요원한 우리 민족의 상고시대! 만주벌판에서 말을 달리며 이룩한 건국의 역사 중 고구려 본기 동명성왕조에 '천제의 아들'이라 자칭한 해모수를, 서낭당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예맥의 한 부족의 족장 아들로 되돌려놓으면 우리 역사의 실체가 고스란히 되살려진다. 한국 고대사의 권위자인 이병도 박사도 북부여의 해모수가 천왕랑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또한 해모수의 애인이었던 하백의 딸 버들 아가씨를 단군의 어머니인 웅녀(熊女)라는 견해도 가지고 있었다. 하백이라는 말이 예맥과 같은 말이므로 즉 버들아가씨는 예맥족(곰(熊) 족)의 딸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즉 예맥의 딸이 아들 주몽을 금와왕 궁전에서 출산한 것이 된다.

‘서낭당’에서 제사 지내던 예맥의 천왕랑 아들인 해모수와 버들꽃 아가씨가 낳은 해주몽 (解朱蒙)이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만주를 호령하던 고구려를 건국했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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