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칼럼] 아마르티아 센의 『정체성과 폭력』시각으로 본 아프간 난민 문제 〈10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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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칼럼] 아마르티아 센의 『정체성과 폭력』시각으로 본 아프간 난민 문제 〈1090호〉
  • 김정명 교수
  • 승인 2021.08.30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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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명 아랍지역학과 교수
김정명 아랍지역학과 교수

지난 8월 15일 모두가 우려를 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났다. 미국이 2001년부터 점령해 왔던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주둔군을 철수시키자,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기다렸다는 듯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했다. 탈레반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는 동안 엄격한 이슬람법(샤리아)을 내세워 시민과 여성의 권리를 억압했던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미국이 떠나고 탈레반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과거의 악몽을 회상하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떻게든 외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려고 카불 국제공항에 몰려들었다. 일부는 다급한 나머지 비행기에 매달렸다가 공중에서 추락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려는 시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자 “누가 난민을 얼마만큼 수용할 것인가”를 놓고 국제사회의 의견이 분분했다. 우리나라는 한국 정부에 협력했던 아프가니 스탄 조력자와 그 가족 391명을 ‘특별공로자’ 자격으로 국내로 재빨리 수송했다. 과거에 비해 우리나라 정부와 시민이 난민을 대하는 태도가 한층 성숙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사회 일각에서는 아직도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단일 민족의 전통을 유지해 온 우리나라는 언어, 풍습, 종교, 피부색 등이 다른 먼 나라 이방인을 선뜻 수용하기가 정서적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이유가 단순히 '종교가 달라서', '테러가 증가해서', '범죄의 온상이 되어서' 등과 같은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심각하게 우려를 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같은 단순 이분법적 논리는 우리가 상대방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이미 정해진 굴곡진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결국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적인 갈등만 조장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아마르티아 센의 저서 『정 체성과 폭력(Identity and Violence)』은 우리가 지구촌 공동체에서 함께 숨 쉬며 살아가고 있는 타자를 어떻게 바라봐야 좋을지 안내해 줄 수 있는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르티아 센은 인도 벵골 출신으로 후생경제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1998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저서 『정체폭력』에서 “모든 본질적으로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라고 강조하며, 어떤 집단이나 개인을 한 가지 정체성의 잣대만으로 획일화시켜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지적한다.

아마르티아 센에 따르면, 집단과 개인을 규정할 수 있는 정체성은 종교나 인종 외에도 시민권, 주거 소재, 젠더, 계급, 정치관, 직업, 식습관, 취미, 사회참여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이 가운데 어느 하나의 정체성에 과도하게 집착할 때 갈등이 조장되고 타자에 대한 폭력이 쉽게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슬림=테러주의자=전근대=인권 억압’이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는 사회에서 어떤 개인이 그냥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으로 획일화되면 그가 갖고 있을지 모르는 자유, 평등, 인권, 페미니즘 등과 관련된 정체성과 가치는 무시되어 사라지게 된다. 그는 이 같은 현상을 ‘인간의 축소화’라고 부른다.

수년 전 발생한 시리아와 예멘의 난민 사태에 이어 이번에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문제가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의 선도 국가로서 더 많은 역할을 하면 할수록 이와 유사한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하고 있는 자들은 전쟁, 가난, 테러로부터 목숨을 위협받는 무고한 시민이라는 것이다. 그들 대부분이 무슬림인 것은 맞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슬람 무장 보복이 두려워 한국에 구원의 손길을 요청한 자들이다. 아마르티아 센의 충고대로 이들을 단지 ‘무슬림’이란 획일적 정체성의 잣대로만 판단하고, 규정하고, 외면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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