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차지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미국이 아프간 철군을 발표한 지 4개월 만이라 국제사회가 경악하고 있다. 구소련과 미국과 같은 강대국들의 침탈과 개입이 한 국가의 운명을 어떻게 뒤바꿔 놓고 있는지 목도 하고 있는 것이다. 탈레반이 빠른 속도로 정권을 되찾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이 수도 카불 함락 직후 해외로 도피한 데서 극명하게 드러났듯, 아프간의 부패한 권력층은 이 나라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고자 하는 꿈도 의지도 없었다.
아프간 시민 다수의 동조 내지는 방조가 없었다면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무력으로 되찾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프간 정부군, 더 넓게는 아프간 시민들에게 부패한 친미 정권을 지킬 어떤 의미도 없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이슬람 극단주의 탈레반 폭정을 이미 경험했던 시민들이 정부에 등을 돌리고 미국을 침탈자로 여기게 됐는지 지난 20년의 과정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조국을 탈출하려는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지는 이유를 탈레반이 모를 리 없다. 국제 사회가 탈레반에 호소하고 있는 것은 단지 아프간 시민들의 보편적 인권을 침해하는 어떠한 일도 하지 말 것과, 절대로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것이다.
탈레반 지도부가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이슬람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약속했고, 여성 앵커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일부 유화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탈레반 대변인은 지난 17일 첫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반 탈레반 세력과의 화해, 반대자에 대한 보복 금지, 여성의 취업과 교육 권리 보장, 언론 자유 허용, 외국과 평화적 관계 유지 등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약속에 ‘이슬람법 샤리아에 기반을 둘 것’, ‘국가의 가치에 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건을 둠으로써 자신 들의 이슬람 원리주의 정신을 굳건히 해갈 것임을 천명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이래서는 절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정상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기능하기 위한 탈레반의 노력이 뚜렷하게 나타나기를 간곡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