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혜탁의 트렌드 관찰기] 윤석열과 민초 〈10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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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혜탁의 트렌드 관찰기] 윤석열과 민초 〈1089호〉
  • 석혜탁 경제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8.23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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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혜탁 경영 칼럼니스트 sbizconomy@daum.net
석혜탁 경영 칼럼니스트 sbizconomy@daum.net

제32회 도쿄올림픽이 폐막했다. 다시 정치 뉴스가 주요 일간지의 지면을 채우고 있다. 물론 곧 제16회 도쿄 패럴림픽이 열릴 예정이지만, 그간 국내 언론의 보도 행태를 복기해보면 패럴림픽 뉴스가 정치 콘텐츠를 밀어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그렇지. 신성한 학보에 대놓고 주요 대선 후보의 이름을 거명하다니. 불경하기 그지없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이달 초 인스타그램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영상을 올렸다. 아이스크림의 색깔은 민트색이었고, ‘민초단 모여라’라는 해시태그가 달려 있었다. 그는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민초단(민트초코를 좋아하는 사람)’임을 수줍게 고백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윤 전 총장 관련 기사에 으레 달리는 민감한 정치적 현안에 대한 격론이나 대결적인 언어들은 힘을 받지 못했다. 네티즌들은 그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민트초코에 대한 호불호에 따라 자유로이 댓글을 달았다.

‘민초(民草)’가 아니라 ‘민초(민트초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대선을 몇 개월 앞두고 유력 후보의 공보팀에서 SNS 콘텐츠 아이템으로 민초를 선정했다는 것. ‘민초’가 후보의 이미지를 더욱 친근하게 만들 수 있으며, 특히 젊은 세대와의 접촉면을 늘리는 데 ‘민초 vs 반민초’라는 일종의 밈(meme)이 호소력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리라.

딱딱한 정치권에서 식료품 업계로 눈을 돌려보자. △초코파이 △초코송이 △다이제 씬 등에 민트를 입힌 한정판 스낵이 출시됐다. 민초단의 거듭된 요청에 부응한 결과물이다. 오리온은 이 희소한 제품을 알리는 체험단을 모집했다. 한 지원자의 비장한 댓글이 눈에 들어온다. “반민초단도 사진과 글을 보고 민며들게 하고 싶습니다!” ‘민며들게’라니. 민초로 스며든다는 의미인 만큼, 반민초단에게는 잔혹한 형벌과 다름없다. 민초단과 반민초단의 갈등 구도는 그 자체로 재미 요소로 기능한다. 그런 맥락 아래 민초단은 민트초코 셀프 홍보대사를 자처한다.

올 초 배스킨라빈스(이하 배라)의 민트 초콜릿칩의 출하가 일시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수입 원료 수급이 지연되면서 벌어진 해프닝인데, 혹자는 이 사건을 ‘민초의 난’으로 명명했다. 이런 뉴스 자체가 배라에게는 마케팅이 됐던 것일까? 배라는 몇 달 뒤 ‘민트 초콜릿 칩’과 ‘엄마는 외계인’의 변증법적 산물인 ‘민트초코봉봉’을 선보였고, 출시 20일 만에 200만 개를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취향 공동체의 결집을 촉구하는 뮤직비디오도 이 아이스크림의 인기를 견인했다. ‘민초대세선언’이라는 흥겨운 노래는 민초국 시민들의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 였다. “그새 좀 서러웠지 이제는 달라졌어 민초의 대세 선언”이라며 소수의 취향으로 내몰렸던 민초단을 위무하는가 하면, “민초와 반민초의 평화의 시간”을 말하며 포용과 화합의 길을 제시하기도 했다. 배라는 민초의, 민초에 의한, 민초를 위한 콘텐츠를 내놓는 데 성공하였다. 아이스크림판 게티즈버그 연설이다.

애경산업은 배라와 협업해 민초 치약칫솔세트를 내놓았다. 반민초단이 민초를 치약 맛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한 유쾌한 반란이었다.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색적인 디자인은 눈길을 끌었고, 식품류가 아닌 제3의 상품군으로 확장했다는 것 또한 특기할 만했다. 단순히 웃음만 유발하려고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러면 역효과가 나기 십상이다. 2080 특유의 치약 제형에 민트 · 초코 배색을 입히는 두 줄 무늬 기술을 적용했고, 상쾌한 민트향도 첨가했다.

지금도 민초단과 반민초단의 익살스러운 상호비방이 이어지고 있다. 호불호가 갈리는 아이템을 그저 외면하기보다는 그 자체가 스토리텔링이 되고 자연스러운 바이럴 마케팅 효과를 일으키게 유도하는 것, 그러면서도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면서 차별화된 재화를 완성하는 것이 긴요하다. 한정판 제품에서는 기존 제품의 특성과의 연결이 작위적이어서는 안 되며, 출시 시점의 어떤 사회적인 맥락과 조응되면 더욱 폭발력이 있을 것이다. 민초와 반민초, 당신은 어느 쪽인가? 가까운 마트에 들어가서 신나는 ‘사상검증’의 매력에 빠져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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