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락의 인문학 공동체] 문제는 삶이야, 바보야! 〈1088호(종강호)〉
상태바
[김종락의 인문학 공동체] 문제는 삶이야, 바보야! 〈1088호(종강호)〉
  •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 승인 2021.06.07 08: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paideia21@gmail.com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paideia21@gmail.com

자전거로 집과 공동체를 오가는 자전거 출퇴근, 이른바 ‘자출’을 몇 년 만에 재개했다. 건강과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다. 대부분 한강과 지천의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는 '자출'의 왕복 거리는 약 50km. 매일 자전거를 타고 다니 기엔 버거운 거리여서 날씨나 컨디션에 따라 대중교통도 자주 이용한다. 오늘도 후텁지근한 초여름 날씨여서 몇 번 망설이다 자전거를 탔다. 물통을 채워 케이지에 끼우고 헬멧을 쓰며 혼자 몇 차례 다짐했다. 이번엔 너무 달리지 말자, 천천히 가면서 즐기자, 누군가 날 추월하더라도 흔들리지 말자.

늦은 밤, 자전거를 타고 귀가할 때는 이런 다짐을 할 필요가 없다. 힘에 맞춰, 컨디션대로 페달을 밟으면 된다. 한밤, 자동차가 붐비는 도로를 지나 한강 자전거 도로로 접어들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성산대교. 가양대교, 방화 대교와 건너편 올림픽대로를 따라가며 아름답게 빛나는 조명은 낮에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색색의 조명을 받아 출렁대는 한강 물도 낮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낮엔 사람들로 체증을 빚던 길도 늦은 밤에는 한산하다. 어떨 땐 자전거 타는 이를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할 때도 있다. 이런 고적하고 아름다운 길을 급하게 달려갈 이유는 없다. 천천히 가다 벤치에 앉아 야경을 감상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 지인들에게 전송하기도 한다. 인적이 드문 밤,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는 길은 자주 시인의 길, 철학자의 길로 바뀐다.

낮에는 다르다. 공동체에 가서 할 일이 있으니 우선 마음이 바쁘기도 하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지 않은 지천의 자전거 도로를 달릴 때는 평정을 유지하는 편이다. 길섶에 피어난 애기똥풀이나 민들레도 보고 푸르름을 더해가는 갈대와 버드나무 사진도 찍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붐비는 한강 자전거 도로에 진입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값비싼 자전거를 타고 몸에 착붙은 저지를 입은 사람들이 자주 출몰하는 것부터 그렇다. 줄지어 단체 라이딩을 하는 이들도 눈에 띈다. 이들 중에서 나를 추월하는 사람도 생겨난다. ‘먼저들 가슈…’ 나도 처음엔 추월 당하는 것에 흔들리지 않고 내 페이스를 유지 한다.

하지만 이것이 반복되면 슬금슬금 달라진다. 내면 어딘가에 숨어있던 경쟁심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오늘도 비슷한 상황이 재연됐다. 한강 자전거 도로에 접어든 직후 값비싼 로드 자전거를 탄 남녀가 슬쩍 나를 추월했다. 나도 마침 속도를 올리려던 참이었으니, 이 정도면 따라갈 수 있겠다 싶었다. 페달 밟는 속도를 높였다. 그런데 이들은 중년의 자전거 초보가 자신들을 따라가는 것이 싫었나 보다. 속도를 확 올렸다. 나도 지기 싫어 속도를 높였다. 이들은 더 빨리 달렸다. 나 또한 헉헉대며 이들을 따라갔다.

이렇게 달리다 보니 많은 이들이 우리에게 추월당했다. 간혹 추월당하기 싫어하는 이들 몇몇은 내가 속한 일행을 따라붙었다. 고속으로 달리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났다. 제한 속도 20km인 한강 자전거 도로가 일순 자전거 경주 장으로 바뀌었다. 노란 꽃잎을 달고 아름다움을 뽐내는 창포도, 하얀 꽃잎을 떨구기 시작한 찔레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앞사람 꽁무니만 보며 페달을 밟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급커브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곡예하듯 돌았다. 허벅지가 뻐근해지고 숨이 차고 온몸에서 땀이 흘렀다.

속도를 늦춘 건 월드컵 공원 가까이에 온 뒤였다. 맞은 편에서 단체 라이딩을 하는 이들이 몰려오는데 내가 따라가는 이들은 앞 자전거를 추월하기 위해 거침없이 중앙선을 넘었다. 위험해 보였다. 이들을 놓고 속도를 늦추었다. 그사이에 사라졌던 한강이, 한강공원에 가득한 싱그러운 초여름이 비로소 다시 눈에 들어왔다. 이런 경쟁,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이렇게 달리다 사고가 난 것도 몇 차례나 목격했다. 평생에 걸쳐 체질화한 못난 경쟁심으로 건강을 위협하며 자전거 타기의 평화를 놓치는 것이다.

남과 경쟁하며 헉헉대다 중요한 것을 놓치곤 하는 일이 자전거 타기에만 있을까? 한 시간 남짓 자전거를 타도 이러한데,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채 살아가면 그 삶은 얼마나 힘들고 황량할까? 학생들도 그럴 것이다. 이들에게 학점과 스펙을 위한 경쟁, 그리고 취업이나 진학 등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최종 목적일 수는 없다. 과정이요, 수단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목적은 무엇이어야 할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인문캠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거북골로 34 (명지대학교) 학생회관 2층
  • 자연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명지로 116 학생회관 2층
  • 대표전화 : 02-300-1750~1(인문캠) 031-330-6111(자연캠)
  • 팩스 : 02-300-175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환
  • 제호 : 명대신문
  • 창간일 : 1954년 11월
  • 발행인 : 유병진
  • 편집인 : 송재일
  • 편집장 : 한지유(정외 21)
  • 디자인·인쇄 : 중앙일보M&P
  • - 명대신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명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jupress@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