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청자 감상 〈1088호(종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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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청자 감상 〈1088호(종강호)〉
  • 박정민 미술사학과 교수
  • 승인 2021.06.07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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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인문대학 미술사학과 교수
박정민 인문대학 미술사학과 교수

곧 방학(放學)이다. 여름과 겨울에 공부를 잠깐 쉬는 것은 재충전을 위함이며, 너무 덥거나 추울 때는 사실 공부의 효과도 낮아진다. 최근 지구 온난화는 실제로 공부를 잠시 놓고 싶을 정도로 습하고 더운 여름을 가져왔다.

조금 있으면 열대야가 연일 계속된다는 뉴스도 접할 것이다. 밤까지도 낮처럼 더운 날에는 쉽게 잠을 청하기 어렵다. 물론 에어컨 등 전자제품의 도움을 받는다면 한결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어떠했을까? 고려나 조선 시대 사람들도 지금 우리처럼 무더운 여름을 보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지금보다 더 두꺼운 여러 겹의 옷을 입고 여름을 보냈다. 더위에도 예의는 지켜야 했고, 격식도 차려야 했다.

이런 더운 여름에 사용하면 딱 좋을 만한 청자가 있다. <청자 모란 구름 학무늬 베개>는 베고 누우면 시원한 감촉이 목 뒤를 타고 흐를 것 같다. 물론 청자 베개를 여름에만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여름에 쓰기 좋은 건 사실이다.

 

〈청자 모란 구름 학무늬 베개〉, 높이 12.7㎝, 길이 23.3㎝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청자 모란 구름 학무늬 베개〉, 높이 12.7㎝, 길이 23.3㎝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반 뼘 정도 낮은 높이로 목과 뒤통수를 받치는 청자 베개를 실제 써보면 딱딱함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쉽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청자는 재질 특성상 어느 정도 선선한 감촉도 선사한다. 땀도 배지 않으니 매우 위생적인 베개다.

<청자 모란 구름 학무늬 베개>는 몸통의 측면에서 중앙부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곡선이 인상적이다. 베개에는 상감기법으로 활짝 핀 한 쌍의 모란꽃과 구름 속을 나는 학을 번갈아 장식했다. 화려하고 탐스러운 모란은 품위 있고 당당한 모습이 특징이다. 활짝 핀 모란꽃을 보고 있으면 옛사람들이 이 꽃을 두고 화중왕(花中王)이라 칭송한 이유를 알 듯하다. 고려 시대 여러 귀족 집안이 앞다투어 모란을 심고 가꾼 것은 모란이 상징하는 권위와 부를 계속해서 누리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다.

그 옆에 자리한 학 또한 고려인들이 무척 사랑했던 문양 소재다. 운학문(雲鶴紋)은 잔과 접시 같은 반상기부터 매병과 항아리까지 다양한 고려청자를 장식했다. 불교와 함께 도교가 일상생활에 널리 펴져 들었던 고려 사회에서 신선을 태우고 창공을 누빈다고 알려진 학은 상서로운 짐승이었다.

모란과 학의 주변은 유려하게 굽이치는 잎사귀들로 가득 채웠고 베개의 양 끝단은 연꽃잎을 형상화한 문양대로 꾸미고 그 꽃잎마다 국화꽃을 한 송이씩 배치했다. 이 청자 베게는 베갯모에까지 문양이 가득 찬 화려한 작품이다.

<청자 모란 구름 학무늬 베개>를 만든 13세기는 고려 시대 도자문화(陶瓷文化)의 핵심인 상감 청자의 전성기였다. 청자는 고려를 대표하는 그릇이자 공예품으로 10세기 후반 처음 만들기 시작했다. 고려 사람들은 당시 중국의 기술을 도입해 청자를 제작했고, 처음 만든 고려청자는 대부분 차를 따라 마시는 다완(茶碗)이나 일부 왕실이 사용한 제기(祭器)였다.

영롱한 비취색의 청자는 차츰 고려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12세기를 지나며 비색청자(翡 色靑瓷)는 고려 귀족들에게 중요한 그릇이 되었다. 당시 중국 사람들도 고려의 청자는 천하제일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름다운 색을 품은 고려청자는 13세기에 선명한 흑백의 문양과 만나, 상감청자로 거듭났다.

상감청자는 다른 나라의 도자기들과 확연히 구분할 수 있는 고려청자만의 개성이다. 그릇에 희고 검은 흙을 새겨 넣고 비색의 유약을 덮었으니 색과 문양을 모두 취한 셈이다.

고려의 왕실과 귀족들은 그들이 사용하는 그릇에서부터 문방구와 화분 같은 공예품까지 모두 상감청자로 만들길 원했다. 일상의 고급 물건 들이 상감청자로 거듭나던 시기 <청자 모란 구름 학무늬 베개>도 등장했다.

오늘날 고려 상감청자가 세계적으로 뛰어난 예술품으로 평가받는 것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함께 청자의 바탕흙과 검은 흙, 흰 흙 등 여러 원료를 능숙하게 다루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도자기는 시대의 문화와 기술력이 만든 그릇이다. 오늘 소개한 매끈하고 상쾌한 느낌의 청자 베개 또한 고려 귀족문화의 화려함과 당대 공예품 제작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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