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민의 하버드씽킹] 3세대 CEO의 하버드씽킹 〈10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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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민의 하버드씽킹] 3세대 CEO의 하버드씽킹 〈1082호〉
  • 장기민
  • 승인 2021.03.0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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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대학교 경영대학의 백기복 교수는 어느날 강의에서 ‘만약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다면, 대통령과 대기업 회장 중에서 누가 되고 싶으 냐’라고 학생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대다수의 학생이 대기업 회장을 택했다. 학생들이 이처럼 대기업 회장을 더욱 매력적으로 여기는 이유를 살펴보면, 5년이라는 제한적 임기의 대통령과 달리 본인이 하고 싶을 때 까지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평생 자리에 앉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세습이 불가능한 대통령직과 달리 대기업 회장 직은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가능하다는 점 등 권력의 깊이가 대통령보다 훨씬 크다고 백 교수는 설명한다.
  어느 순간부터 국내 기업 경영자들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로 대표되는 1세대 CEO들은 불가능을 딛고 각각 삼성과 현대, LG를 창업한 장본인들이다. 그들의 질주 본능이 이건희, 정몽구, 구본무 등 카리스 마형 2세대 CEO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덕분에 우리 기업들은 세계무대에 안착할 수 있었다. 그 시절까지의 회장님 이미지는 늘 높은 곳에 있었으며, 회장님 말씀이 곧 법으로 통용되곤 했었다. 그러나 2세대까지 지켜오던 회장님 카리스마는 더이상 온데간데없고, 이젠 보통 사람들과 친구를 자청하는 3세대 CEO들이 등장했다.
  대표적 3세대 CEO이자 신세계그룹의 실질적 오너인 정용진 부회장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반려견과 가족의 모습, 그리고 새로운 맛집 소개 등을 담는다.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상을 전해주는 정용진 부회장은 SNS에서 ‘용진이 형’으로 불리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그는 재래시장에 방문한 사진과 직접 요리하는 모습 등을 올리기도 하는데, 소통하는 팬들은 그의 인간미 넘치는 모습에 더욱 매력을 느끼며 4만 개가 넘는 ‘좋아요’를 달았다. 인스타그램 피드속 정용진 부회장이 입고 있는 청바지가 뭐냐는 댓글 질문에 그는 직접 브랜드를 밝히며 관련 홈페이지를 공유해 주는 등 친근한 인간의 모습을 보였다.
  3세대 CEO들과 같은 시대 선상에 있는 엔씨 소프트의 창업주 김택진 대표는 팬들에게 ‘택진이 형’으로 불린다. 평상시에도 소탈한 보통 사람의 이미지가 강한 김택진 대표는 여전히 친근한 동네 형 이미지로 엔씨소프트를 이끌고 있다. 3세대 CEO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역시 고객과 직접적으로 소통한다. 그는 본인이 출장 중인 경우만큼은 CEO 방에 직원들이 출입할 수 있도록 했고, 직원들이 CEO 자리에 앉아 마치 사장인 것처럼 자유롭게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재치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버드대학의 협상 전문가인 오스틴 로프트는 ‘대화하려 하지 않는’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여 ‘대화를 하고 싶은’ 상황으로 바꿔주는 일을 했다. 우리는 보통 마주 앉아 서로 자신의 이야기하는 것이 대화라고 생각하지만, 진짜 대화는 쌍방의 교류가 반드시 발생한다. 오스틴의 이론에 따르면 1세대, 2세대까지의 CEO들은 ‘말’을 했던 것이고, 3세대부터는 ‘대화’를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버드대학 심리학자인 센딜 멀레이너선은 감정과 관계의 깊이가 비례해야만, 교류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수년간 진행해온 인간 관계에 대한 연구를 종합해 자기 노출에 대한 4단계를 정리했다. 자기 노출의 1단계는 “요즘 잘 지내요?”와 같은 의례적인 질문이며, 2단계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기본 정보를 드러내는 과정이다. 자기 노출의 3단계는 친구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습인데 자신의 관심, 태도, 가치관 등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그 주제에 대해 공유하고 적극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4단계는 절친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습이며 민감한 문제와 사생활을 털어놓고 감정 적인 교류를 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3세대 CEO 들은 하버드에서 말하는 자기 노출의 3단계 과정을 통해 대중들과 교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감한 내용의 소통이라는 점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에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4단계를 제외한다면 가장 높은 단계의 소통을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하버드의 언어학자인 스티븐 핑거는 ‘듣는 과정에서 우리가 범하는 가장 큰 오류는 우리가 우리에게 의미 있는 말만 듣고, 다른 사람에게 의미 있는 말은 듣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말하기’를 중시했던 지난 세대의 경영자들과 달리 지금 세대의 경영자들은 오히려 ‘듣기’에 더 집중하는 듯하다. 지금 우리는 듣기에 노력하고 있는지, 아니면 한마디라도 더 말하기에 급급하는 건 아닌지 자신을 한번 점검 해봐야 할 때다.

 

 

장기민 디자인경제연구소장
장기민 디자인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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