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내가 살아오지 않은 세상에서 나를 이해하는 일" (청지 12 김훈호) 〈11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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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내가 살아오지 않은 세상에서 나를 이해하는 일" (청지 12 김훈호) 〈1121호〉
  • 이혁진 대학보도부 정기자
  • 승인 2023.10.10 0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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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이 ‘내가 살아오지 않은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해하지 못할 것 같던 것들도 마침내 이해하게 되는 과정인 거죠."

(제공/ 김훈호 동문)
(제공/ 김훈호 동문)

 

‘바나나 팔아 세계일주’를 떠났던 ‘명지대 바나남’을 기억하는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학교 정문에서 바나나를 팔아 여행을 떠났다는 그의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다. 무모해 보이던 도전을 시작한 그는 마침내 아메리카 대륙 북쪽 끝인 알래스카부터 남쪽 끝인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까지 약 20,000km에 달하는 거리를 자전거로 종단했고, 자신의 특별한 여행기를 책과 강연 등으로 사람들과 공유했다. 바로 김훈호(청지 12) 동문의 이야기다. 6년 전 아메리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또 다른 여행’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던 그는 여전히 예상하지 못했던 여행들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었다. 현재 호주에 거주 중인 그를, 지난달 27일 화상으로 만났다.

졸업 후 학교를 떠나신 지 약 7년 정도가 되었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졸업을 하고 1년 동안 제가 꿈꿔오던 자전거 여행을 했고, 돌아와서도 여러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다시 여행을 떠났어요. 제 전공이 청소년지도학과잖아요. 그래서 청소년 4명과 함께 몽골을 자전거로 횡단하는 여행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책도 쓰고, 강연도 하면서 2년 반 정도를 한국에서 보냈죠. 그리고 워킹홀리데이 막차를 타고 호주로 왔고, 그 후로 호주에 정착해서 지금은 퀸즐랜드주에 있는 골드코스트에서 지내고 있어요.

수많은 여행지 중에서 호주에 정착하기로 한 이유 가 있을까요?

예전에 여행하면서 목공을 즐기고 직접 집을 짓기도 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래서 호주에 오기 전에 저도 한국에서 목공을 배웠어요. 호주가 목공으로 워낙 유명하니까 여기에 와서 제대로 배워 보고 싶어 선택한 것도 있어요. 무엇보다 호주가 비자를 받기 쉽기도 했거든요. 호주에 거주한 지는 4년이 조금 넘은 것 같고, 목공을 일로 삼은 지는 2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인생은 항상 계획과 다르게 흐른다

대학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하셨는데, 맨 처음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대학 시절에 친구가 처음 ‘워크캠프’라는 해외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소개해 줘서 신청하게 됐죠. 그렇게 스페인에 가게 됐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어울리고 봉사활동도 하며 배낭여행의 매력을 많이 느꼈어요. 내가 누굴 만날지도, 어떤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르는 여행의 매력에 푹 빠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학교 4학년이 되던 그다음 해에는 친구들과 유럽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났던 거고요.

여행지에선 변덕스러운 날씨나 문 닫은 식당같이 예상치 못한 일이 많잖아요. 여행지에서의 실패나 불안을 낙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팁이 있나요?

보통 여행할 때 ‘꼭 가봐야 할 곳’, ‘꼭 먹어야 할 것’ 이런 리스트를 세우잖아요. 그런데 이건 그냥 리스트일 뿐이라는 걸 생각해요. 사람이 제일 좋은 포만감을 느낄 때가 적당하게 먹었을 때라고 하더라고요. 음식도 오히려 너무 많이 먹으면 배불러 힘들고, 조금 아쉽게 먹었을 때 뭔가 더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무언가 아쉬움이 남았다면 그게 ‘다시 와야 할 이유’가 되는 거죠. 그렇게 조바심을 내지 않고 다음을 위해 남겨두는 것이 다음 여행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실패한 여행도 있었나요?

글쎄요. 여행에서 ‘실패’는 없는 것 같아요. 너무 많은 해프닝을 겪다 보니 계획이 변경되거나 취소돼도 그 또한 여행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려 해요. 저는 그걸 ‘여행자의 시선’이라고 표현하거든요. 여행지에서 ‘여기는 왜 다를까?’, ‘저 사람은 왜 저런 행동을 할까?’ 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낯선 환경을 바라보면서, 그것 나름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는 재미를 느껴요.

저는 여행이 ‘내가 살아오지 않은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해하지 못할 것 같던 것들도 마침내 이해하게 되는 과정인 거죠. 새롭게 세상을 이해해 나가는 시선을 일상에 적용했을 때, 일상도 여행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진은 대학 재학 당시 김훈호 동문의 모습이다. (제공/ 김훈호 동문)
▲사진은 대학 재학 당시 김훈호 동문의 모습이다. (제공/ 김훈호 동문)

 

여행은 천천히 나를 알아가는 과정

졸업 후, 모두 취업을 준비하는 분위기 속에서 현실에 대한 압박이나 걱정은 없으셨나요?

물론 있었죠. 주변을 보면 자기 커리어를 잘 쌓아 회사를 차리거나,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진 친구들도 많아요. 근데 그건 내가 아니에요. 그게 가장 중요한 사실인 것 같아요. 그건 그 친구니까 할 수 있었던 일이고, 나는 나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어요.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니 그냥 내가 한 경험들을 믿게 되는 순간이 온 것 같아요. 장기하와 얼굴들 노래 가사 중에 그런 것도 있잖아요. “네가 나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결국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거고, 나만 살 수 있는 거니까. 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 내가 만나는 상황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선택하기가 굉장히 쉬워지는 것 같아요.

여행을 통해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자신에 대한 확신을 얻어서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여행은 ‘충돌’인 것 같아요. 새로운 것들과 부딪혀 가면서 내가 믿고 있는 것들과 익숙한 것들이 깨지기도 하고, 내가 정답이라고 믿던 것들이 과연 정답일까 질문을 던지기도 하죠. 그렇게 점점 자신만의 정답을 찾을 수 있는 단계로 가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특히 대학 시절은 정말 충돌하기 좋은 시기인 것 같아요. 뭐가 됐든 부딪혀 보며 점점 견고해지는 거죠.

▲사진은 김훈호 동문이 여행 중 직접 촬영한 것이다.(제공/ 김훈호 동문)
▲사진은 김훈호 동문이 여행 중 직접 촬영한 것이다.(제공/ 김훈호 동문)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 꾸려가는 현재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에서 학생들에게 강연할 땐 “좋아하는 ‘일’을 해라”라고 많이 얘기했어요. 그런데 호주에 오고 나서 ‘일’과 ‘좋아하는 것’은 철저히 분리하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잘하는 걸 일로 삼고 좋아하는 건 그냥 즐겨라”라고 말하고 싶어요. 잘하는 일로 돈을 벌어 좋아하는 걸 실컷 하세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다 일이 되지 않도록, 취미로 남겨두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 본인에게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라고 하면, 여행과 목공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지금 제가 잘하는 건 목공인 것 같아요. 물론 목공을 좋아하지만 그건 직업적인 일이죠. 반면 제가 좋아하는 취미는 요가이기도 하고, 테니스도 있고, 사진을 찍는 일이 있고, 다가오는 10월부터는 서핑을 시작할 거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해요. 호주에 오고 느낀 건 사람들이 정말 많은 취미를 갖고 그것들을 꾸준히 즐긴다는 거예요. 일을 마치면 정말 다른 사람이 되는 거죠.

호주는 정말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직접 지내시며 느낀 호주 생활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역시 일과 여가 시간의 구분이 굉장히 명확한 게 장점 같아요. 호주는 아침을 굉장히 빨리 시작하고 빨리 마쳐요. 저 같은 기술직의 경우는 6시에 일을 시작해서 2시 반에 마치니까 뭔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한 거죠. 그런 사람들이 많은 만큼, 공원에 가면 무료 바비큐 시설도 있고, 스포츠 시설도 굉장히 저렴해요. 호주 사람들은 정말 놀려고 일하는 것 같아요. (웃음)

반대로 해외에서 거주하는 어려움도 많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첫째는 언어에요. 우리말처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직업적인 부분에서 제한이 생기기도 하고, 집을 구하거나 보험을 들 때도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써야 해요.

둘째로는 아내와 저 둘 다 한식을 너무 좋아해요. (웃음) 요즘엔 한식당이 많다고 하더라도 한국에서 만큼 다양하지 않고 맛도 못 따라오죠.

세 번째는 역시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 아내와 함께 있기도 하고, 점점 시간이 지나다 보니 외로움보다는 그리움이 커지는 것 같아요. 특히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에 찾아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커요. 그래도 그건 여기서 살기로 한 이상, 내 선택에 대한 대가이지 않을까 싶어요.

▲사진은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당시, 김훈호 동문의 모습이다.(제공/ 김훈호 동문)
▲사진은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당시, 김훈호 동문의 모습이다.(제공/ 김훈호 동문)

 

‘여행의 초입’에서 여전히 도전을 꿈꾸다

6년 전 인터뷰에선 본인을 ‘열정 여행가’라고 칭하셨더라고요. 지금의 본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지금의 저는 무언가를 또 새롭게 배우는 중이에요. 한 나라에 정착하는 과정 중 4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대학 시절처럼 여전히 모든 게 새롭고, 부딪히고 충돌하고 도전하는 중이에요. 내가 바라는 미래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봤을 때, 저는 아직 새로운 여행의 초입에 서 있는 기분이에요.

도전과 실패에 두려움이 없는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도전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결과에 집중하면 그게 실패냐 성공이냐를 얘기하겠지만, 저는 그걸 ‘경험의 유무’로 판단해요. 해봤냐 안 해봤냐는 천지 차이거든요. 예전에는 저도 ‘꼭 좋은 결과를 얻어야 해’라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그게 잘 되길 바라면서도 무엇보다 한번 경험해 보자는 마음이 도전의 원동력인 것 같아요. 어쩔 땐 좀 가볍게 생각하는 게 도움이 돼요. “그냥 한번 해보지 뭐”하고 하는 거죠.

‘명지대 바나남’도 그런 식으로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제가 바나나를 팔아서 돈을 벌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게 목적은 그게 아니었거든요. 실제로 바나나를 팔아서 모인 돈은 많지 않았지만, 전 이야기를 얻었고, 외부 강연을 하기도 했고, 협찬 후원도 받았어요. 어떤 일을 할 때 여러 가지 목적을 염두에 두어 그중에 하나라도 얻어걸리면, 저는 그게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생 때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지만, 돈이나 언어, 시간 등 각자의 사정으로 여행을 미루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요. 아직 ‘여행의 이유’를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행의 이유를 말해준다면요?

지금 하는 일이 정말 재밌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방학에 들어야 하는 계절학기나, 아르바이트처럼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일을 꼭 지금 하지 않아도 괜찮다면 떠나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 시절만큼 자유로울 때가 없는 것 같아요. 사회로 나갈수록 점점 책임은 늘잖아요. 그러니까 온전히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을 쥐고 있을 때, 새로운 선택지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선택지가 꼭 취업이 아닐 수도 있어요. 그때 해보지 않으면 살아가면서 내가 진짜 해보고 싶은 일을 할 기회가 점점 적어지는 것 같아요. 졸업 이후에 확실한 일자리를 얻기 위해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내 인생의 선택지를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이 대학 생활의 가장 큰 혜택이 아닐까 싶어요.

(출처/ 김훈호 동문 인스타그램)
(출처/ 김훈호 동문 인스타그램)

 

“나는 앞으로도 변화를 갈망하며 여행을 떠날 것이다.” (『젊음, 무엇이 있다』中)

주변 환경은 많이 변했지만, 그는 5년 전 자신이 적은 문장대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 앞으로도 그는 여행을 이어갈 것이다. 그에게 실(失)패란, 또 다른 도전을 위한 열매(實)를 맺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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