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야기] 정이품송, 배필을 맞다 〈11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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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야기] 정이품송, 배필을 맞다 〈1158호〉
  •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 승인 2026.09.13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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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소나무가 우리 전통 방식으로 혼례를 치렀다. 2001년 5월 8일의 일이다. 주례는 산림청장이 맡았고, 신랑 쪽 혼주는 보은군수, 신부 쪽 혼주는 삼척시장이 맡았다.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뿌리내리고 있어 혼례식장에 함께 설 수 없었던 나무를 대신해서 두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가 각각 신랑과 신부의 대역을 맡았다. 신랑은 충북 보은 속리산의 정이품송, 신부는 '미인송'이라고 불리던 강원 삼척 준경묘의 금강소나무다.

나무에게 전통혼례를 치러준다는 일은 얼핏 기이하게 들린다. 그러나 정이품송에게는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사람의 세계 안으로 들어와 사람과 더불어 사람처럼 살아온 나무인 때문이다. '정이품'이라는 이름부터 사람의 벼슬이다. 오늘날로 치면 '장관급'에 해당하는 높은 벼슬이다.
조선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가는 길에 이 나무 아래를 지나다가 벼슬을 내렸다는 이야기는 사실 여부를 떠나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사람들은 가까운 보은 서원리의 훌륭한 소나무 한 그루를 '정부인송'이라 부르며 정이품송의 짝으로 삼아 왔다. 뿌리로 이어진 적도, 가지를 맞댄 적도 없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어엿한 한 쌍의 부부였다.

세월 흐르면서 정이품송은 늙고 쇠약해졌다. 솔잎혹파리의 피해를 입었고, 큰바람과 폭설을 견디는 동안 굵은 가지를 여럿 잃었다. 사방으로 가지를 고르게 펼쳐 한때 단정하고 위엄 있던 모습도 흐트러졌다. 사람들은 이토록 아름다운 나무를 더 오래 보고 싶었지만, 나무도 살아있는 생명인 이상 '생로병사'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안타까운 마음에 사람들은 정이품송의 흔적을 이어갈 묘책을 떠올렸다.
정이품송의 후계목을 얻자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배필로 정이품송처럼 줄기가 곧고 건강한 소나무를 전국에 수소문했다. 마침내 삼척 준경묘의 금강소나무숲에서 그때까지 '미인송'으로 불리던 소나무가 간택됐다. 당시 나무나이 97년, 나무높이 약 30미터의 소나무였다. 이 소나무가 정이품송의 유전자를 이을 자손을 얻기 위한 새로운 어미나무로 낙점됐다.

혼례 날짜가 다가오자, 먼저 보은 정이품송의 꽃가루를 받아 함에 고이 담았다. 신랑 대역을 맡은 어린이가 함을 들고 삼척으로 가서 신부 대역의 어린이에게 건넸다. 함 안에 든 꽃가루를 미인송의 암꽃에 닿게 하기 위해 '아보리스트'로 불리는 나무 오르기 전문가가 줄기를 타고 올라 정이품송의 꽃가루를 암꽃머리에 묻혀주었다. 사람의 혼례 절차와 식물의 꽃가루받이가 한 자리에서 겹쳐진 순간이었다. 이태 뒤, 미인송에서 솔방울을 거두어 후계목을 길러냈다. 혹시 다른 꽃가루가 섞였을 가능성을 가려내기 위해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DNA 분석까지 실시했다. 사람으로 치면 친자 확인에 해당하는 절차였다. 전통 혼례 뒤에 현대 유전학이 이어진 셈이다.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까닭은 단지 나무에게 결혼식을 치러주었다는 데 있지 않다. 더 오래 바라볼 대목은 사람들이 한 그루의 나무를 어떤 존재로 받아들였는가 하는 데 있다. 우리는 정이품송에게 벼슬을 붙였고, 짝을 정해주었고, 늙어가는 나무를 보며 대를 이을 자손까지 걱정했다. 나무를 경관의 한 부분이나 목재의 재료로만 보았다면 생겨나기 어려운 마음이다.

정이품송은 한 그루의 오래된 소나무이기 전에, 사람들이 오랫동안 말을 걸어온 나무였다. 벼슬을 내렸다는 전설을 만들고, 정부인이라는 짝을 세우고, 마침내 실제 꽃가루를 주고받는 혼례까지 치렀다. 나무를 사람의 질서 안으로 불러들인 이 긴 과정은 우리에게 소나무가 얼마나 가까운 존재였는지를 보여준다. 달리 이야기하자면 나무를 민족문화의 중요한 요인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물론 정이품송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후계목이 자라서 반드시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무의 생김새는 유전자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어느 땅에 뿌리내리는지, 어떤 바람을 맞고 어떤 햇살을 받는지에 따라 한 그루의 모습은 달라진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생명의 흔적을 이어놓으려 했다. 
정이품송의 혼례는 한 그루 소나무를 위한 의식이면서, 우리 소나무 문화가 빚어낸 하나의 상징적 장면이다. 오래 살아온 나무 한 그루를 사람처럼 대하고, 그의 늙음을 안타까워하고, 다음 세대를 마련해주려 했던 마음이 정이품송 혼례식에 담겨 있다. 소나무는 그렇게 우리 곁에서 사람의 기억과 이야기를 품은 문화의 나무로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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