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전 숨 가쁘게 회사를 다닐 때는 가을이 찾아와도 길가 벤치에 가만히 앉아 계절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아침엔 빽빽한 버스에 몸을 싣고, 낮에는 쏟아지는 업무와 회의에 치이다 보면 창밖의 잎들이 언제 붉게 물들었는지조차 모른 채 겨울을 맞이하곤 했다. 학교로 자리를 옮긴 뒤, 내 일상에서 가장 소중한 변화 중 하나는 볕 좋은 날 잠시 교정 벤치에 앉아 깊어가는 가을을 누릴 수 있는 작은 틈이 생겼다는 점이다.
문득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까마득한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국어 시간에 읽었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수필들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때의 나는 문장에 담긴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시험 문제를 맞히기 위해 주제와 표현법에 기계적으로 밑줄을 긋는 데 익숙했다. `참 팔자 좋게 나무나 쳐다보며 글을 쓰는구나.' 그렇게 투덜거리며 그저 시험 범위를 외우기에 바빴다.
그런데 참 묘한 일이다. 이제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며 교정의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보니, 그때는 한가롭게만 느껴졌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바쁜 하루 중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계절을 느끼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벤치 곁을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내 대학 시절도 함께 떠오른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돌아보면 오래도록 마음에 남은 것은 친구들과 잔디밭에 앉아 별일 없이 웃고 떠들던 시간들이다.
취업을 준비하고 학점을 챙기며 불안한 미래를 향해 달리는 학생들에게 여유를 이야기하는 일이 조심스럽다. 그래도 그 분주함 속에서 잠시 계절을 바라보고 친구와 웃을 시간까지 모두 미뤄두지는 않았으면 한다. 대학이 스펙을 쌓아 사회로 나가기 위해 거치는 환승역만은 아니었으면 한다. 계절의 변화에 감탄하고, 벤치에서 친구와 별것 아닌 수다를 떨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곳이기도 했으면 한다.
강의실에서는 늘 자원의 희소성과 효율성, 기회비용을 가르치는 경제학 교수이지만, 교정 벤치에 앉아 있을 때만큼은 여러분이 조금쯤 `비효율적인 시간'을 누려보기를 바란다. 가을바람을 맞으며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일, 친구와 나누는 실없는 농담은 취업 시장의 이력서 한 줄로 환산되지 않는다. 하지만 계절의 온도를 피부로 느끼고 스스로 숨 고를 틈을 마련할 줄 아는 능력은, 긴 삶을 살아가는 데 든든한 내면의 자본이 될 수 있다.
물론 지금 이 글을 읽는 학생들 중에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 수필을 읽으며 투덜거렸듯 “취업 준비로 이렇게 바쁜데, 교수님도 참 한가로운 말씀을 하신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는 사람에게는 잠시 쉬라는 말조차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니 해야 할 일을 내려놓고 청춘을 만끽하라는 거창한 당부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숨 가쁜 직장 생활 속에서 계절을 놓치고 살았던 한 사람으로서, 여유를 모든 일이 끝난 뒤로만 미루지는 않았으면 한다. 내 경험으로는 일을 다 마치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날이 좀처럼 오지 않았다. 오히려 바쁜 와중에도 잠깐씩 내어놓은 시간이 다음 하루를 살아갈 힘이 되어주었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보낸 평범한 오후의 기억 역시, 지친 날이면 문득 떠올라 마음을 쉬게 해주곤 했다.
화려하고 넓은 캠퍼스는 아니지만, 우리 명지 교정에는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 더 짙게 배어드는 온기가 있다. 오늘 수업이 끝나면 서둘러 옮기던 걸음을 잠깐 멈춰보면 어떨까. 벤치에 가만히 기대어 물들어가는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좋겠다. 그 몇 분이 당장의 걱정을 해결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오늘 하루를 해야 할 일들로만 채우지 않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잠깐의 여유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마음이, 앞으로 마주할 바쁜 날들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