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로 길을 잃다, 인셀은 어떻게 테러리스트가 되었나 〈1124호(개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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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로 길을 잃다, 인셀은 어떻게 테러리스트가 되었나 〈1124호(개강호)〉
  • 이서하 편집장
  • 승인 2024.02.26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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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인셀, 이제는 사회적 문제로 인식해야

캐나다 토론토에서부터 한국의 강남역까지, ‘인셀’의 범죄는 전 세계적인 문제 현상이다. 2023년에는 국내에서도 인셀들의 이상동기 범죄는 물론 게임업계를 중심으로 페미니스트 색출 및 사상검증이 일어나는 등 다양한 형태의 테러가 빈번히 발생했다. 사회가 인셀을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동안 개중 일부는 여성과 사회에 대한 적개심으로 타인을 해치거나 생계에 위협을 끼치는 존재가 된 것이다. 무시할 수 없는 수치의 혐오범죄가 인셀이라는 이름을 빌려 누적된 지금, 국내 수사기관도 여성에 대한 혐오범죄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강남역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임을 부정했던 2016년 5월과 사뭇 다른 자세는 ‘인셀’과 여성혐오 범죄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임을 방증한다. 이에 본지는 인셀에 대해 알아봄과 동시에 그들과 함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해보고자 했다.

 

인셀이라는 이름, 자조에서 혐오자로

‘인셀’이란 비자발적 독신주의자(Involuntary Celibate)의 줄임말로, 1993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한 대학생에 의해 만들어진 신조어다. 초창기에는 여성과 성관계를 맺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남성들을 일컫는 단어였으나 집단의 성질이 변화하며 의미가 확장돼 이제는 극단적인 여성혐오를 생산 · 공유하는 이들까지 포함한다. 영국 BBC는 인셀에 대해 “이들은 세상이 매력적이지 않은 남성을 부당하게 대우한다고 믿으며, 이성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현실을 사회와 여성 탓으로 돌린다”고 분석했다.

▲그림은 인셀의 사고관을 요약한 마인드맵이다. (출처/ Annie Jones, 센트럴 플로리다 대학교 석사학위논문(2020))
▲그림은 인셀의 사고관을 요약한 마인드맵이다. (출처/ Annie Jones, 센트럴 플로리다 대학교 석사학위논문(2020))

그러나 인셀은 ‘모태 솔로’나 남성우월주의자와는 조금 다른 특성을 보인다. 모태 솔로는 연인이 없는 상태에 초점을 맞춰 홀로 지내는 외로움을 자조한다. 남성우월주의자는 여성의 사회적 권리 획득을 반대하는 데 주력한다. 이에 비해 인셀의 담론은 주로 성행위에 치중됐다. 인셀은 파레토의 법칙*을 인용해 20%의 ‘채드’**가80%의 여성들을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채드만큼 뛰어나지 못한 인셀은 여성과 성행위를 할 기회가 사라진다.

이런 사고는 인셀 집단의 뒤틀린 사고방식, '설거지론'을 등장시켰다. 연애 경험이 적거나 없는 남성과 성적 경험이 많은 여성의 결혼은 남성 쪽이 더러워진 그릇을 설거지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를 지닌 말로서, 이에 동의하는 인셀만큼이나 외부에서 비판하는 목소리 역시도 크다. 여성과 깊이 사귀지 못한 인셀이 여성에 대해 이상한 가치관을 가졌기에 생긴 문제라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인셀의 사고방식은 마치 자신과 성행위를 해주지 않는 여성에게 일종의 피해의식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본의 비평가이자 남성학자인 스기타 슌스케는 이에 대해 “남성에게는 약함을 인정 못하는 약함이 있다”고 말한다. 남성들은 보통 무능력함을 받아들이기보다 그 사실을 부인하고 스스로 억압하는 취약점이 있다는 의미다. 즉 인셀의 여성에 대한 적대감은 일종의 굴절혐오라는 것이다. 그들은 애인 유무와 성경험을 능력으로 치부하고, 스스로의 무능력함에 대한 자괴감과 자신보다 강자인 ‘능력 있는 남성’에 대한 증오를 상대적 약자인 여성을 향해 투사한다. 이런 굴절혐오는 곧 사회 자체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기도 한다.

*파레토의 법칙: 80%의 결과가 20%의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는 법칙. 80:20 법칙이라고도 불린다.
**채드(Chad): 성적 매력이 있는 남성을 가리키는 인셀 은어.

 

페미니즘을 남성혐오로 인식하는 사람들

‘백인의 취약성’이란 백인이 자신의 인종 위치에 대한 도전을 받을 때 의식적 · 무의식적으로 보이는 방어적 반응을 의미한다. 인종차별의 역사 속에서 예로부터 타 인종보다 우위를 점했던 백인들은 현대 사회의 평등이 자신의 특권을 빼앗는 역차별이라 여겨 인종차별 문제를 회피하거나 소극적으로 대하게 된다. 인셀을 위시한 청년 남성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찾을 수 있다. 페미니즘을 ‘남성혐오’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페미니즘은 젠더 불평등이 형성되는 사회적 맥락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학문이자 운동이다. 젠더 불평등이란 특정한 성에 속하므로 강요되는 규제를 의미한다. 따라서 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차별 적 사고에 저항함과 동시에 남자에 대한 고정관념 역시 깨고자 한다. 트랜스젠더와 같은 젠더퀴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운동가 벨 훅스(bell hooks)등 다양한 운동가들이 페미니즘이란 생물학적 성별에 따라 차별이 이뤄지는 사회구조에 맞서는 것으로, 성별 간의 대결이 아님을 강조해 왔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오해를 풀 마음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왜곡 재생산되는 일도 빈번하다. 이는 굴절된 혐오와 맞물려 다양한사회 문제를 불러오기도 한다.


① 혐오범죄와 이상동기 범죄
2023년 7월 6일, 경기도 의왕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서 A씨가 이웃 여성에게 강간상해 등 피해를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공판에서 피고자의 변호인은 “군대에 가지 않는 여성에 대한 불만을 평소 가지고 있다가 범행을 저질러야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심신미약 상태를 주장했다. 이어 △7월 21일 칼부림 사건(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 발생) △8월 3일 전철역사 차량난동 및 칼부림 사건(경기 성남시 서현역 인근 발생) △8월 17일 등산로 성폭행 살인사건(서울 관악구 삼성산 초입 부근 발생)등이 연달아 일어났다. 경남 진주 편의점에서는 머리 모양이 숏컷이라는 이유로 직원이 폭행당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테러에 동조하는 반응이나 범행 예고가 다수 게시되며 일련의 행위들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고, 재판부에서도 혐오범죄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여성에 대한 혐오감과 증오심으로 가득 찬 혐오범죄"
-2023년 8월 서울중앙지검


“쇼트커트 헤어스타일의 피해자가 페미니스트 외모에 해당한다고 생각해 피해자를 상대로 혐오감을 표출한 전형적인 혐오범죄”
-2023년 11월 창원지검 진주지청

상기 범죄 피의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에 몰두하는 성향이 있었고, 커뮤니티에서 확립하거나 강화한 여성혐오 가치관을 토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한편 언론은 기사의 조회수를 늘리고자 자극적인 지점을 부각하며 인셀과 일종의 공생을 이어갔다. '여성은 군대를 가지 않아 범행했다'는 A씨의 주장을 헤드라인으로 사용해 젠더 갈등을 유도한 것이 대표적이다. 언론이나 인셀은 A씨가 과거 강간미수 전적으로 소년보호처분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군대에 대한 언급을 중요시했다. 인셀은 해당 사건이 군 복무를 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형벌이라고 주장했다.

 

② 피해의식에서 기인한 억지 논란

▲그림은 인셀 유저들이 문제시한 장면들로, ‘림버스 컴퍼니’ 캐릭터 이스마엘(위)과 ‘메이플스토리’ 캐릭터 엔젤릭 버스터(아래)다.
▲그림은 인셀 유저들이 문제시한 장면들로, ‘림버스 컴퍼니’ 캐릭터 이스마엘(위)과 ‘메이플스토리’ 캐릭터 엔젤릭 버스터(아래)다.
▲그림은 인셀 유저들이 문제시한 장면들로, ‘림버스 컴퍼니’ 캐릭터 이스마엘(위)과 ‘메이플스토리’ 캐릭터 엔젤릭 버스터(아래)다.
▲그림은 인셀 유저들이 문제시한 장면들로, ‘림버스 컴퍼니’ 캐릭터 이스마엘(위)과 ‘메이플스토리’ 캐릭터 엔젤릭 버스터(아래)다.

 

인셀의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대우받지 못하고’, 성행위 등 연애 경험을 갖지 못하며 ‘뒤처지게’ 된다는 피해의식과 페미니즘에 대한 경계는 게임업계를 둘러싸고도 분출됐다. 2016년, 게임 ‘클로저스’의 성우 김자연 씨는 개인 SNS 계정에 ‘여자는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글귀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렸다. 일부 유저가 이에 반발하자 게임사 측에서는 해당 성우를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사건을 시작으로 인셀 유저들은 페미니즘과 관계가 있다고 판단되는 성우, 일러스트레이터, 게임사 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2023년 7월, 게임 ‘림버스 컴퍼니’는 여성 캐릭터의 수영복 일러스트에 노출이 없다는 이유로 일부 유저들의 항의에 직면했다. 이들 유저는 일러스트레이터 중 페미니스트가 있다고 확신했고, 일러스트레이터의 개인 SNS를 사찰해 페미니스트라는 증거를 찾으려 하는 등 집요한 온라인 스토킹을 펼쳤다. ‘메이플스토리’ 역시 사상 검증에 시달렸다. 인셀 유저층은 애니메이션 속에서 캐릭터가 손을 움직이는 과정 중 짧게 등장한 엄지와 검지가 가깝게 붙은 손모양을 문제시했다. 해당 손동작이 한국 남성에 대한 혐오표현이라는 이유였다.

두 게임은 유저의 항의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된 작가들과의 계약을 종료하는 등 노동권에 반하는 행보를 보여 비판을 받았다. 언론은 해당 사건을 ‘여혐’과 ‘남혐’의 대결로 보도했다. 왜 인셀은 이런 피해의식을 가지게 되었으며 억지에 가까운 트집 잡기를 이어가는지, 인셀 자체에 대한 논의는 뒷전이 된 것이다.

 

 

성과주의와 정상성, 당연함의 함정

▲그림은 공부 자극 멘트로 꾸며진 연습장의 표지다.
▲그림은 공부 자극 멘트로 꾸며진 연습장의 표지다.

굴절혐오와 자기방어 외에도 성공 신화가 문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스스로 인셀임을 주장한 박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공부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고, 돈을 벌면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지만, 사람을 대하는 건 다르다”며 “인간관계는 노력한다고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다. 내게 문제가 있어서 애인 하나 못 사귀나 자괴감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주변 사람들이 애인을 사귀고 결혼 이야기를 나눌 때, 번듯한 대학에 다니고 있음에도 여자 친구가 없는 자신의 처지는 어릴 적 들었던 “좋은 대학만 가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말과 달라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있다는 것이다.

연애를 위한 노력과 개인의 성공을 위한 노력은 다르다. 그러나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위해 여가 시간을 희생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는 성공에 대한 보상을 갈망하게 만든다. ‘공부하면 아내와 남편의 얼굴이 바뀐다’, ‘지금 놀면 평생 솔로’라는 말은 학업 성취에 따르는 보상이 연애인 것처럼 믿게끔 한다. 또한 여러 매체에서 등장하는 유흥업소 장면은 돈과 지위가 있는 남성이 여러 여성 사이에서 대접받는 모습을 그려, 여성을 성적 객체로 타자화하는 것은 물론 남성의 성취에 따른 보상처럼 느껴지게 한다.

한편, 한국은 정상성에 대한 압박이 큰 국가이기도 하다. 비혼 선언이 흔해진 시대지만 중장년층 사이에서는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아직 견고하다. 박씨는 결혼에 대한 압박이 부담스러웠다는 말과 함께 “남들은 다 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분노를 먼저 느꼈고, 다음에는 내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상대가 미웠다”고 전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로라 베이츠는 저서 『인셀 테러』에서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남성들은 자신의 남자다움을 확인할 수 있는 전통적인 수단들을 잃었다”며 유해한 남성이 아니라 유해한 남성성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남자는 가장과 보호자의 역할을 맡아 자신의 여성 배우자와 아이를 나약한 이차적 부양자로 대해야 하고, 힘과 성적인 능력을 과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통적 남성성을 배척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남성성을 마련하지 못한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전통적 남성성은 다른 성별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피해를 가져온다. 연애 및 성경험은 인생의 성공을 좌우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이 지적하는 남성성은 남성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럼에도 구시대적 남성성이 사실을 흐리고, 온라인 커뮤니티가 생각의 왜곡에 기여한다. 2021년 BBC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인셀 당사자는 “(인셀 커뮤니티에 들어오면)당신보다 훨씬 더 급진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며 그래서 작은 일쯤은 용납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말을 전했다. 범죄 예고, 왜곡과 혐오를 주고받는 동안 점점 더 과격한 부류에게 동화된다는 것이다.

로라 베이츠는 “우리는 특정 테러리즘에는 과도하게 예민하다. 하지만 수만 명에 달하는 남성이 온라인에서 골몰하는, 무기화되고 폭력적인 여성혐오와 이런 생각을 윤색해 정상적으로 여기도록 젊은 남성들을 그루밍*하는 과정은 의제로 오르지도 않는다”며 인셀의 행각을 혐오범죄로 생각하지 않는 상황을 지적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살인’이라며 개인 차원의 범죄로 일축하려던 경찰의 태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인셀은 사회적 문제인 동시에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이웃이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에 대한 대응이다. 커뮤니티에서 혐오를 공유하며 강력범죄를 충동하는 행위를 저지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인셀의 범죄가 더 이상 그들의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여성혐오와 성과주의가 만연한 사회가 먼저 변해야 개인이 잘못된 생각을 유지할 명분 역시 사라질 것이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이제는 사회 자체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그루밍(Grooming): 친분 등을 활용해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행위를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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