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힘들었다. 필자는 문헌정보학과라 법과 경제는 거의 모른다. 아마 문헌정보학과가 아니었어도 잘 몰랐을 거다. 이번 명지학원과 회생계획안 기사를 쓰는 데는 공부가 많이 필요했다. 법원에도 가야 했다. 생애 처음 간 법원이었다. 뛰어서인지 그날 비도 오고 습해서 그랬는지 축축한 상태로 재판장에 도착했다. 타이핑은 안된다 해서 못난 글씨로 재판을 받아 적고, 근처 카페로 가 쫓기듯 속보 기사를 써야 했다.
너무 막막했다. 필자는 지난 학기에 명대신문에 입사했다. 수습기자 신분으로 열심히 해보겠다는 글을 쓴지 얼마 되지도 않아 부장기자가 되어버렸다. 열심히 해보겠다고 하긴 했지만 이건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필자가 진 짐이 좀 무거운 것 같았다. 그래도 별수 없었다. 그냥 힘 빡 주고 무거운 짐을 들어 올렸다.
걱정되기도 했다. 오락가락한 충전기로 애써 충전한 카메라로 인터뷰를 갔다가 하얀 화면만 찍혀 실망한 동료 기자의 표정을 봤을 때, 별 것도 아닌 내가 부장기자가 됐을 때, 선배 기자들이 모두 신문사를 떠날 때, 이거 괜찮은 건가 싶었다.
하지만 해볼 만하다. 대학보도부 동료 기자들의 다짐이나 고민을 들을 때마다, 애써 작성한 기사를 볼 때마다, 열정 어린 모습을 볼 때마다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편집장과 사회문화부장님도 참 든든하고 말이다. 그래서 일이 좀 힘들어도 할 만하다.
명대신문은 2년만 지나도 기존 구성원 모두가 떠난다. 그럼에도 신문사가 유지될 수 있는 건 시간이 지나도 남아있는 '무언가' 때문인 듯하다. 선배 기자의 기사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생각이 든다. 어떤 마음이었는지, 왜 이렇게 썼는지, 얼마나 고생했는지 말이다. 그들도 필자와 똑같은 장소에서 기사를 쓰고 마감을 하고 투덜거리기도, 시덥잖은 얘기를 하기도 했을 것이다. 신문사에도, 신문에도, 기사에도 그 '무언가'가 남아있다.
이번 개강호 발행으로 필자와 63기 동료 기자들의 본격적인 명대신문 활동이 시작된다. 다들 걱정 반 설렘 반 생각이 많겠다. 물론 걱정이 더 많을 거다. 하지만 앞으로의 일들이 힘들어도 그만큼 의미 있고, 노력한만큼 뿌듯했으면 한다. 돌아봤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 됐으면 한다. 우리가 만들어갈 일상과 신문, 기사도 선배 기자들의 '무언가'처럼 신문사에 남아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