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보는 명대신문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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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보는 명대신문의 변화
  • 박정환
  • 승인 2010.03.29 0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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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와 지면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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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대신문 제호 변화


16 명대신문의 제호는 총 16번 바뀌었다. 변화는 크게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뉠 수 있다. 상반기는 1호부터 75호까지 진행된 제호의 명칭 변화이다. 우선 명대신문은 1954년 11월, 근화학보(1호부터 2호까지)로 창간된 것을 시작으로 △3호부터 37호까지는 문리사대학보 △38호는 문리실대학보 △39호부터 51호까지는 문리실과대학보 △52호부터 74호까지는 명지대학보로 바뀌었으며, 75호부터 현재(900호)까지 ‘명대신문’의 제호를 쓰고 있다. 당시 우리대학이 1952년 근화여자초급대학을 설립하고 이후 서울문리사범대학, 명지대학으로 개편됨에 따라 제호도 학교의 역사와 함께 변화했다.

하반기는 87호(1967년)부터 시작된 제호의 형태와 형식 등의 변화이다. 87호부터 제호는 기존의 한문표기에서 한글표기로 바뀌었다. 그동안 ‘누구나 손쉽게 쓰고 읽을 수 있는 한글로 한글문화를 꽃피우자’라는 내용의 사설을 꾸준히 실었던 명대신문은 ‘한글전용론’의 바람을 타고 174호까지 한글표기를 유지했다. 이후 175호(1974년)부터 다시 제호를 한문표기로 바꿨고 이 모양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1969년 지면구성이 세로편집에서 가로편집으로 바뀜에 따라 101호부터 제호도 세로에서 가로로 삽입됐고 이후 크기 및 모양의 꾸준한 변화를 거쳤다. 41대 편집장을 지냈던 김미중(경제 90) 동문은 “당시 전국대학생신문기자연합 같은 단위와의 연대 사업을 통해 여러 혁신을 진행했다”며 “제호도 그러한 새로운 변화를 따라갔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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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사진이 실렸던 373호

5 지면 수의 변화는 ‘5’라는 숫자로 요약된다. 명대신문의 지면은 △4면 △8면 △12면 △16면△20면으로 다양하게 변해왔다. 대략 1호부터 203호까지는 4면으로 발행됐고 204호부터 515호까지는 4면, 8면이 번갈아 발행됐으며 517호부터 597호까지는 8면과 12면이 번갈아 발행됐다. 현재까지 유지되는 8면 발행의 고정은 598호부터 진행됐다. 명대신문은 창간기념호, 지령호 등 특별한 때에는 보통 12면 이상 발행을 했는데 그 중 지령 600호는 발행 최다 면수인 20면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면에 예외적으로 컬러가 들어가는 경우도 다섯 번 있었다. △186ㆍ187호 △지령 200호 △213호 △373호 △지령 600호가 그것이다. 특히 373호는 우리대학 진태하(국문학) 명예교수가 국내 최초로 찍은 백두산 사진을 탑사진으로 넣어야 했기 때문에 컬러 사용이 필수적이었다. 31대 편집장을 지낸 김동주(전기 82, 22기) 동문은 “명대신문에 실었던 백두산 사진은 기성 언론도 구하지 못한 것이기에 큰 이슈가 됐다”며 “당시 윤전기의 성능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컬러면을 손으로 일일이 신문에 끼우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후 660호부터는 지면 1면과 8면의 컬러 사용이 고정됐고 특별호의 경우 컬러 사용은 더욱 활성화 됐다.

 박정환 기자 kulkin85@mju.ac.kr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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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마음으로, 즐기면서 활동했으면"
김도종 교수를 만나다

78김도종(정치외교학) 교수는 2001년 8월 27일부터 2004년 12월 6일까지 명대신문 주간교수를 역임하며 총 78번의 신문 발행, 역대 주간교수 중 두 번째로 많은 발행 횟수를 기록했다. 김도종 교수를 만나 명대신문사에 대한 소회와 에피소드 등을 들어봤다.

* 신문 최다 발행(98회 발행) 주간 교수인 이범국(도시행정) 명예교수는 건강상의 이유로 인터뷰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점 양해바랍니다.

Q 명대신문사 주간교수로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소회가 어떠신가요?

2년의 임기를 채우고 한 학기 연임을 더 했지만 언제나 기자들과 얼굴 한 번 붉힌 적 없고 친근하게 지내왔기에 큰 무리 없이 주간교수직을 역임한 것 같습니다. 신문사가 향후 기자들의 진로 방향에 도움이 되는 훈련의 장이라는 생각을 갖고 기자들의 입장이나 작성한 기사에 대해 최대한 존중해 준 기억이 납니다.

Q 주간교수를 맡으면서 가장 생각나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학생들의 구독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생각하다가 만우절에 특별 이벤트를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모아 ‘만우절 특집호’를 제작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여러 기사 아이템이 나왔지만 결국 우리대학에 의과대학과 사범대학이 신설된다는 ‘제3캠퍼스 건립 확정’ 기사를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었습니다. 반응은 두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우리대학 학생들은 굉장히 좋아했지만 같은 재단인 관동대학교 학생들은 ‘왜 우리한테는 투자를 안하냐’며 항의전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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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1일에 발행된 만우절 특집호(756호)


Q 주간교수를 맡으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기자들이 항상 금요일 마감 때 밤을 샜음에도 토요일 조판도 늦게 끝나 피곤해하는 모습을 보며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주말을 반납하기가 쉽지 않은데 기자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생각해서 조판시간을 최대한 빨리 끝내보자고 건의한 적이 있습니다. 이후, 확실히 조판시간이 단축됐고 그만큼 기자들이 주말을 즐길 시간도 늘어난 것 같습니다.

Q 지령 900호를 맞은 명대신문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펜 끝으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곳이 바로 언론사입니다. 앞으로도 명대신문이 정확한 사실에 입각한 보도를 통해 신뢰감 있는 언론사가 되길 바랍니다. 또한, 기자들이 신문사 활동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억지로 고생하면서 하는 활동은 좋은 효과를 거두기 어렵습니다. 항상 기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즐기면서 신문사 활동을 하길 바랍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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