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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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
  • 이재희
  • 승인 2009.11.22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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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

올해도 어김이 없었다. 내 등록금으로 산 것이 분명한 USB. 이번엔 용량도 넉넉한 4G다. 안 받을 이유가 없다. 긴 줄의 꼬리가 돼 생각했다. “선거가 오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USB를 배부하던 남학우는 총학생회 정후보가 돼 교내 곳곳의 벽보에서 미소를 보낸다. “저 여기 있어요~” USB와 함께, 대학의 연례행사 선거가 온 것이다.

그렇다. 이맘때면 전 대학이 선거로 들썩인다. 학생 대표를 뽑는 일, 축제만큼 설레는 일이 분명할진대 학우들은 왠지 시큰둥하다. 매년 후보는 달라지나 공약은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인상을 지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생들의 당면 문제인 등록금 투쟁조차 공약의 한 줄이 되는 순간 가치 추락의 굴욕을 겪으니, 우리네 선거가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무리는 아니다.

이 의심은 공약 부문에서 확신이 된다. 인심성 공약 남발은 경계해야 하지만 매력적이지 않은 공약 또한 문제인데, 학교의 마스터플랜을 좇아 시행이 결정된 사안을 자신들의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은 특히 볼썽사납다. 이는 거의 매년 반복되는 일로 성과주의에 경도된 해당 선본에 대한 기대는 접는 것이 마땅하나, 여전히 눈먼 표가 존재키에 이 같은 행태는 반성 없이 되풀이된다.

학과 학생회 공약은 더 볼만하다. 학과 선거는 규모가 큰 학과가 아니면 대체로 단일 후보가 출마, 찬반 투표를 하는 것이 관례처럼 됐다. 해서 최악의 인물만 아니면 후보 등록과 동시에 당선이 확실시된다. 그러다 보니 후보들도 공약에 승부수를 띄울 마음은 애초에 없는 듯, 하나뿐인 전공 강의실에 여론 수렴을 위한 설문지 하나 돌지 않는다.

고민이 없으니 공약이 부실함은 당연지사. 모 학과, 모 후보의 공약 ‘과실 환경 미화’를 보면 대충 그 수준이 짐작된다. 복지 강박이 환경 미화로 물꼬를 튼 것이겠지만 명색이 대학생, 주요 공약으론 곤란하지 않겠는가. 4대강이나 세종시처럼 논란 많은 공약도 힘겹지만, 공박의 여지조차 없는 무능한 공약은 더 서글프다.

그러나 헛배 불리는 공약空約보다 유권자를 더 암담케 하는 것은 비전이 상실된 선거판. 유세 현장에는 공약 선전만 난무하지 그 공약을 추동케 하는 비전이 없다. 공약은 구체적 비전에서 파생됨이 마땅한데, 이 주춧돌을 제대로 세우지 않으니 건축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부실시공과 임시방편의 악순환. ‘이상은 높으나 현실은 시궁창’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2006년 11월, 우리는 그야말로 정권 교체를 경험했다. 반운동권을 기조로 새로운 명지를 만들겠다 부르짖은 최유리선본은, 지성인으로서 대학생의 의무를 져버렸단 비난을 샀음에도, 최초의 반운동권 학생회를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그 주장의 가치 여하를 판단하기에 앞서, 눈물로써 명지의 변화를 주장하던 그때 그 선본의 패기를 기억한다.

잔치판은 무르익었지만, 여전히 배고픈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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