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의 경계를 허무는 젠더 뉴트럴(Gender - Neutral) <10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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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의 경계를 허무는 젠더 뉴트럴(Gender - Neutral) <1062호>
  • 김민우 기자
  • 승인 2019.10.1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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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을 거부하다

성 중립을 의미하는 젠더 뉴트럴.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개념으로, 젠더에 대한 논의가 일찍이 이뤄졌던 해외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향한 발걸음이 △뷰티업계 △패션업계 △문화예술업계 △언어사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남혐  여혐 이라는 씁쓸한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젠더갈등이 극화된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서 젠더 뉴트럴은 어쩌면 남녀갈등을 해소하는 하나의 방안이 될 지도 모른다. 이에 본지는 젠더 뉴트럴 개념과 젠더 뉴트럴이란 새로운 트렌드가 △뷰티업계 △패션업계 △문화예술업계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학우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젠더 뉴트럴이란?

트렌드 분석가이자 매해 한국의 라이프 트렌드를 집대성하고 있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의 김용섭 소장(이하 김 소장)은 지난해 10월 발간한「라이프 트렌드 2019」에서 2019년 대한민국 라이프 트렌드의 핵심 키워드로 ‘젠더 뉴트럴(Gender-Neutral)’을 꼽았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성 중립성을 뜻하는 젠더 뉴트럴은 젠더 자체가 없는, 즉 남성성과 여성성을 통합시켜 표현하거나 남성과 여성의 구분 자체를 지우고 중립성을 지향한다. 관련어로는 젠더리스, 젠더프리 등이 있다. 이는 얼핏 보면 1970년대 유행하던 유니섹스와 유사한 개념인 것 같지만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지난해 6월 KOTRA 미국 시카고 김수현 무역관의 ‘젠더리스, 성별의 경계를 뛰어넘은 미국 시장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유니섹스는 여성이 남성 패션을 따라하는 개념에 국한되기도 하지만 젠더리스는 소비자를 대할 때 성별을 아예 특정하지 않고 배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장학재단에서 진행한 리더십 콘서트에 참여한 김 소장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젠더 뉴트럴은 중요한 트렌드 이슈로 라이프 스타일과 소비, 비즈니스 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젠더 뉴트럴은 오래된 역사적 관성으로 자리 잡은 남녀구별, 남녀차별을 없애려는 근본적인 개혁을 의미한다. 특히 한국 사회가 그동안 가장 외면하던 이슈인 젠더 뉴트럴을 비롯한 2019년 대한민국의 라이프 트렌드 핵심 키워드들은 단기적 이슈가 아닌 하나의 컬처로서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을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꾸미는 데 남녀라니요?"

'나는 나'를 가꾼다, 젠더리스(Genderless)

젠더리스 화장품

시장조사기관 민텔(Mintel)은 2018년 글로벌 트렌드 중 하나로 ‘젠더 뉴트럴 뷰티’를 제시했다. 전통적인 성 고정관념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기 때문에 소비자들을 겨냥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신제품 개발과 마케팅에 젠더 뉴트럴의 메시지를 담아야한다는 것이다. 이에 발맞춰 뷰티업계 시장도 변화하고 있다. 남성용  여성용으로 엄밀히 나뉘었던 화장품들이 이제는 남녀공용으로 출시되고 있고, 나아가 여성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색조 화장품을 구매하는 남성들도 늘어난 것이다. 익명의 20대 남성 안 씨는 “평소 첫 인상을 중요시 생각해 타인을 마주할 때 내가 어떻게 보일지 걱정이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관리하는데 열심이다”며 “스킨, 로션도 기능을 꼼꼼히 살펴보고 에센스나 비비크림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눈썹을 다듬거나 색깔이 있는 립밤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실제 헬스앤뷰티(이하 H&B) 스토어 올리브영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국내 남성용 색조화장품 부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0% 이상 성장해 같은 기간 스킨케어 성장률인 24%를 크게 상회했다. 또한 제품 종류 역시 다양해졌다고 설명한다. 피부톤을 보정하는 BB크림 · 쿠션 팩트를 비롯해 아이 브로우 펜슬의 판매가 늘었고, 남성용 눈썹 칼이나 다리털 제거용 정리기 등도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는 것이다. 이는 올리브영만의 얘기가 아니다. 시장조사 기업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은 2013년 1조원을 돌파한 이후 지난해 약 1조 2,000억 원대로 지속 성장 중이다. 그리고 2년 후인 2020년에는 1조 4,000억 원대로 시장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뷰티업계는 ‘남성’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다양한 남성전용 기능성 제품출시 등 저마다 개성 있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국내 젠더 뉴트럴 메이크업 브랜드 ‘LAKA’는 색조 화장품 모델로 남녀 모두를 내세웠다. ‘LAKA’는 남녀 구분 없는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12월부터 올리브영 등 국내 H&B 스토어에 입점했다. 뿐만 아니라 타 H&B 스토어들도 ‘그루밍존’ 등을 별도 운영하며 ‘대세’를 따르는 중이다.

▲젠더 뉴트럴 브랜드 ‘LAKA’의 립 제품 소개 (출처/ ‘LAKA’ 홈페이지)

젠더리스 패션

실제 패션업계에서 “남자는 바지, 여자는 치마”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전 세계로 확산된 성평등 이슈와 성 소수자까지 구분 짓지 않는 젠더뉴트럴 개념이 패션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핑크컬러의 스웨터와 셔츠, 액세사리, 클런치백으로 자신을 꾸미는 반면 여성들은 남성 포멀 슈트 스타일의 재킷이나 오버사이즈 형태의 코트, 로퍼형태의 신발 구매가 늘고 있는 것이다. 종합 온라인 쇼핑몰 ‘AK몰’이 지난 1년간 회원 매출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젠더리스룩 관련 패션 아이템 매출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특히, 남성 포멀 팬츠 스타일의 여성 슬랙스 매출이 두 배, 핑크 톤 라운드티와 셔츠 등 남성 의류 매출은 세 배 가량 늘어났다. 동아대에 재학 중인 박장신(24) 학생은 “젠더리스 패션은 단순히 남자가 여자의 옷을 입고 여자가 남자의 옷을 입는 게 아닌 젠더리스 패션을 통해 성과 나이 등을 예측하기 어렵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무릎위로 오는 짧은 기장의 청반바지를 입고 손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소매의 셔츠를 입는 등 성 고정관념을 깨기 위한 패션을 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끝으로 “단순히 내가 입고 있는 옷 스타일만으로 이건 남자, 저건 여자라고 한정짓는 사실이 우스웠다”며 젠더리스 패션을 추구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이번 19S/S 해외컬렉션을 보면 원피스에 레깅스를 입은 남성 모델이 등장하거나 포마드 헤어에 포멀 슈트를 착용한 여성 모델이 런웨이를 활보하는 등 한 눈에 성별 구분이 어려운 스타일이 다수 나타났다.(출처/ ‘하무’ 홈페이지)

젠더프리, 성 역할을 벗어던지다

젠더 뉴트럴은 앞선 업계뿐 아니라 문화예술계에서도 화두다. 배역의 성별과 관계없이 캐릭터를 무성의 존재로 바라보고 성과 관계없이 배우를 캐스팅하는 ‘젠더 프리(Gender-Free) 캐스팅’이 트렌드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막을 내린 주크박스 창작뮤지컬 <광화문 연가>의 ‘월하’ 역(役)에 남성인 김호영, 이석훈 배우와 여성인 구원영 배우가 동시에 캐스팅 되며 화제가 됐고 이후 <록키호러쇼>, <더데빌> 등에서도 남성과 여성 구분 없는 배역이 등장했다. 젠더 프리 캐스팅은 과거 남성 배우 중심의 작품으로 인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여성 배우들에게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효과와 사회적 인식으로 고정돼있는 남녀의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는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공연의 재미를 선사한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젠더프리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뮤지컬 <광화문 연가> 월화역.출처/ <광화문 연가>

공연예술 현장에서 20년 이상 종사한 ‘에스제이비보이즈㈜' 국진혁 사장은 “한국 뮤지컬 혹은 문화예술 공연의 경우 관객의 절대다수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남성 배우들의 시장성이 더 높게 평가됐었다. 하지만 최근 젠더 프리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며 이전에 대중화되지 않았던 ‘젠더’, ‘젠더프리’, ‘젠더 벤딩(성별 바꾸기)’ 캐스팅이 일종의 콘텐츠 변화처럼 공연계에 번져가고 있다”며 “최근 관객들은 여성배우와 남성배우가 같은 배역을 번갈아 연기하는 걸 점차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끝으로 “젠더 프리 캐스팅은 더 이상 전통적인 성별 개념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관객뿐 아니라 제작사를 포함한 창작진들도 인지해야 할 것이다”고 전했다.

성별 구분 이전에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

‘라이프 트렌드 2019’는 ‘이제 성을 구분 짓는 것은 낡은 방식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고 소개한다. 젠더 뉴트럴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남성, 여성, 성소수자 등의 전통적인 성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모두를 같은 ‘사람’으로 대하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젠더 뉴트럴에 한계도 존재했다. 우리 대학에서 여성, 소수자, 공동체 과목을 강의하는 김엘리 교수는 “최근 젠더 뉴트럴을 향한 발걸음이 뷰티업계, 패션업계, 문화예술업계에서 나타나는 것은 포스트모던의 경향이 크다.
기존의 성 고정 관념을 탈피하는 것은 꽤 의미가 있지만, 개인의 선호, 패션, 개인의 취향이라는 생활 스타일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소비문화 마케팅 현상일뿐, 구조화된 젠더 권력을 변화시키거나 개입하는 차원까지는 아니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끝으로 김 교수는 “지금의 젠더 뉴트럴은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급진성은 가지지 못 한다. 하지만 젠더 뉴트럴이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나름 의미가 있으리라 본다”며 입장을 전했다.

이제껏 우리나라에서는 성의 구분을 넘어 차별을 부르고 남녀 대결구도까지 만들어가는 모습이 곧 잘 목격됐다. 하지만 밀레니엄 세대와 그 후 세대를 중심으로 번져나가고 있는 젠더 뉴트럴 인식은 성의 구분 자체를 지우고 차별을 걷어내 인간 자체에 주목하려는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

#H&B 스토어를 가보다

본지는 신촌에 위치한 H&B 스토어 올리브영을 찾았다. 본 기자가 진열대에 즐비한 남성 화장품을 둘러보고 있던 와중 한 남자직원이 다가왔다. “찾는 제품이 있으신가요”라며 다양하게 진열된 화장품들을 기능과 사용목적에 따라 하나씩 소개했다. 종류만큼 효능도 다양했다. 딱히 선호하는 남성 화장품이 없다는 본지의 말에 그는 “기능을 꼼꼼하게 따지고 제품을 구매하는 남자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요즘엔 색조 화장품을 찾는 남성고객들도 늘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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