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정상인데? <10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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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정상인데? <1062호>
  •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0.1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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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앙상블>

“뭐가 정상인데? 어떤 게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누가 결정하냐고? ‘이건 정상, 저건 비정상’ 뭐 이렇게 표시된 장부라도 있니? 집 나가서 소식 한번 전하지 않는 넌, 정상이고? 엄마가 자기 딸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게 혹시 정상이니? 통신회사에 근무하면서 10년 동안 전화 한 통 안 한 게 정상이야? 다른 거 다 떠나서, 자기 가족이랑 친오빠를 창피하게 생각하는 게 정상이냐고!”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아무도 보지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했다. 여기 그 일을 실행한 이가 있다. 소극장 산울림에서 20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앙상블>의 산드라는 친오빠를 아무도 모르게 장애인 특수시설로 보내버린다. 사연인즉 이렇다.

신체나이는 서른다섯 살이나, 정신연령은 네살인 미켈레. 연극은 미켈레가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변두리 작은 아파트로 동생 산드라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10년 전 집을 나가 가족과 인연을 끊고 살았던 산드라가 집을 방문한 건, 결혼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산드라는 약혼자에게 미켈레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며, 미켈레 없이 엄마 혼자 결혼식에 참석해 달라고 부탁한다. 인용한 대사는 이 장면에서 딸을 나무라면서 엄마가 하는 말이다.

연극의 핵심은 저 대사에 이미 나온 바나 다름없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가?

그리고 며칠 후. 미켈레가 행방불명되는 일이 발생한다. 아들 걱정에 잠 한숨 이루지 못하던 엄마는 아들을 찾다가 길거리에서 기절까지 하지만, 산드라는 앓던 이라도 빠진 마냥 태평해 보인다. 사실 산드라가 태연자약할 수 있었던 건, 가출한 미켈레를 데리고 있던 이가 산드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드라는 그 사실을 엄마에게 알리지 않는다. 산드라는 미켈레를 장애인 특수시설에 보낸 후에야, 그 사실을 엄마에게 알린다. 뒤늦게 모든 사정을 알게 된 엄마는 아들을 되찾으려 장애인 특수시설을 향한다.

이탈리아 작가 파비오 마라의 연극 <앙상블>은 지적장애인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 줄로 주제를 요약하면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을 위해 작가는 산드라에게 악역을 맡긴다. 미켈레에게 한 행위에 대해서라면 산드라는 기소되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산드라는 자해나 타해 등의 위협이 없는 미켈레를 특수시설에 강제 입원시켰으며, 그 과정에서 보호자 동의를 받기 위해 엄마를 기망하여 서명을 받아냈다. 이는 사기죄에 해당된다. 물론, 산드라의 변론권도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산드라의 주장에 의하면, 홀어머니 아래서 태어난 그는 태어날 때부터 늘 뒷전이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도 산드라는 늘 혼자였다. 엄마의 관심이 늘 미켈레에게 쏠려 있었기에 산드라에게는 아플 자격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이렇듯 엄마에 대한 원망이 미켈레의 강제 입원에 대한 첫 번째 이유라면, 두 번째 이유는 그 반대다.

산드라는 미켈레를 돌보느라 정작 자신의 건강은 챙기지 않고 우울증 약을 달고 사는 엄마가 안쓰럽다. 미켈레가 입원한다면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조금 더 여유로울 수 있을 텐데, 그걸 거부하는 엄마가 못마땅하기도 하다. 산드라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그러나 산드라에 대한 선고는 이 연극의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관객의 선택이다.

연극의 핵심은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질문에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가 공감하는 정답이 있을 것이다. 작가의 대답 역시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유의미한 질문이기는 하지만, 장애인 복지제도의 허점을 지적하거나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철학적 담론으로 이어지지 않는 점은 이 작품의 한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은 산드라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볼 시간을 준다.

당신이라면, 당신이 장애인 가족의 일원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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